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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진단 SCI] 교수평가 잣대 될 수 없는 이유
[집중진단 SCI] 교수평가 잣대 될 수 없는 이유
  • 교수신문
  • 승인 2002.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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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1 14:21:18

이덕환/서강대·화학과

교수 계약임용제의 시행에 따라 SCI를 이용한 교수의 연구업적 평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SCI를 연구비 지원과 업적 평가에 활용해왔던 이공계에서는 SCI에 등재만 되면 ‘국제 저명 학술지’로 대접을 받고, IF(impact factor)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만 하면 ‘우수한 과학자’로 인정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SCI는 영리를 추구하는 ISI라는 미국 회사가 1961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인용색인’이다. SCI는 자연과학과 공학분야 논문에 실린 ‘인용문헌’을 분석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로써 특정한 논문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알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매우 유용한 연구 도구다. 그런 SCI가 우리 사회에서는 본래의 용도를 까맣게 잊혀져 버리고, 학술지와 연구자의 수준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둔갑을 해버렸다.

고사하는 국내학술지의 현실

중요한 학술연구의 결과는 소수의 핵심 학술지를 통해 발표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용색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많은 학술지를 대상으로 분석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학문연구의 방향과 저변에서 이뤄지고 있는 연구활동의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ISI사에서는 1만6천여종의 학술지를 분석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물론 모든 학술지를 분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ISI사에서도 학술지를 선별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ISI사는 매년 2천여종의 새로운 학술지를 검토해 10~12%를 선택한다고 하니 비교적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ISI사의 학술지 선택기준은 게재된 논문의 학문적 수준이 아니라 발간 예정일과 국제적 학술지 편집 관행의 준수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ISI사에서는 발간 예정일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더욱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지역에서 발간되는 지역적 특성이 강한 학술지는 ‘국제적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분석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물론 국제적 관행에 따라 편집된 학술지가 학술적으로도 수준이 높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키가 큰 사람이 몸무게가 무거울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체중계로 농구 선수를 선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제화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우리 자신의 학문 세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일찍부터 세계화의 물결에 휩싸여 버린 이공계에서는 우리말로 쓴 학술 논문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50여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화학회의 전통적인 학술지인 ‘대한화학회지’가 영문 학술지에 밀려서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그런 사정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우리말 논문을 천대하면서 이제 우리말로 된 전문 용어의 개발도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래서 외국어로 된 전문용어에 우리말 접미사를 붙인 국적 불명의 언어가 과학자들의 일상 언어가 돼 버렸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제출하는 연구계획서가 영어와 한글이 엉망으로 뒤엉킨 잡탕이 돼버린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름지기 학문이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것일 터인데, 우리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학문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이공계 붕괴현상도 이공계의 이런 관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런 잘못된 관행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에까지 확산될 경우에는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SCI와 관련된 IF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도 문제다. IF는 ISI사가 SCI와 SSCI의 내용을 분석해 1975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것으로, 올해 발표된 논문들이 지난 2년 동안 발표된 논문을 인용하는 평균 빈도를 나타내는 지수다. ISI사가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처럼 IF는 학술지를 발간하는 출판사와 학술지를 구독하는 도서관에서 활용할 것을 목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연구자의 연구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같은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논문의 인용빈도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까 학술지의 IF로 연구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일은 일류 대학의 학생들은 모두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IF는 단기간에 걸친 인용 빈도만을 나타내기 때문에 학문의 성격에 따라서 크게 차이가 있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생명과학이나 정보과학의 경우에는 IF가 대단히 높지만, 변화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수학, 물리학, 화학의 경우에는 IF가 훨씬 낮다.
IF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은 무의미한 낭비를 초래한다. 우리 연구자들에게 SCI에 등재된 우리 학술지의 논문을 인용하도록 종용하는 것은 애교라고 하겠지만, 외국의 유명 학자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논문을 사오는 부끄러운 일은 웃어넘길 수가 없다.

토착화된 평가문화 조성이 먼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SCI의 홍보를 위하여 학회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ISI사가 몇몇 정책입안자와 여론 주도층의 짧은 생각 덕분에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됐다. 그러나 자신들이 애써 개발한 상품을 엉뚱한 용도로 활용해서 결국은 자신의 소비자들을 고사시키는 일은 ISI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는 좋은 정보를 가려내어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평가만을 위한 평가는 오히려 그 폐해가 더 클 뿐이다. 교육과 연구의 양면성을 가진 교수의 업적을 미인을 선발하듯이 획일적이고 계량화된 척도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진정한 평가는 합리성과 공정성을 인정받은 평가의 권위가 확보될 때에만 가능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합리적인 평가 문화의 정착을 위해 기초를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리를 추구하는 미국의 ISI사가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 합리적인 평가 수단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연륜과 전통이 담긴 ‘빛 바랜 노트’를 들고 어눌한 우리말로 하는 강의와 연구가 우리가 지금까지 이룩한 눈부신 발전의 원동력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학 사회의 도약을 위한 개혁은 꼭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이룩한 전통과 성과는 반드시 계승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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