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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진단 SCI] 무엇이 문제인가
[집중진단 SCI] 무엇이 문제인가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2.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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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1 14:08:27

사실 ‘경쟁력’이 대학과 학계를 휘젓고 있는 형편에 SCI를 도마에 올린다는 것은 대세를 따르지 않는 겁없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SCI는 이미 대학과 학계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점령군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리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더한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신문은 용기를 냈다. 과감하게 SCI를 문제삼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오용되고 있다는 비판여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비판은 SCI를 제작·운영하고 있는 ISI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가끔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신화에 시달린다. 신화는 신화로 그치지 않고 보편성으로 무장한 뒤 항구불변의 진리가 되고, 누구도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울타리를 만든다.

지금 우리 학계에서 SCI (Science Citation index)가 이러할 것이다. 90년대 초반 국내 학계에 모습을 드러낸 SCI는 10년 사이에 신화를 넘어 교수의 학문적 능력과 자질을 평가하는 절대적 준거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대학과 학계는 어디를 둘러보나 SCI 일색이다. 과학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연구과제를 받는 자격기준으로, 업적을 평가하는 잣대로, 부지불식간에 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를 무시하고 교수들이 연구활동을 벌인다는 것은 이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계약·연봉제까지 시행되는 마당에 SCI를 통하지 않는다면 교수들이 대학에서 쫓겨나는 일도 머지 않았다.

ISI의 한국학계 비판

그런데 항구불변의 진리는 가끔 전혀 엉뚱한 곳에서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안’에서 SCI를 한껏 떠받들고 있는 가운데 근본적인 비판은 오히려 ‘밖’에서 날아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주체는 SCI를 개발·운용하고 있는 ISI다. SCI 등재 저널 선정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제임스 테스타 ISI 편집이사, 그가 방한해 밝힌 문제지적은 SCI를 교수평가의 절대기준화하고 있는 국내 학계에 대한 일침이었다. 지난 17일 한양대에서 열린 ‘SCI 저널 선정기준 및 등재방법 세미나’에서 테스타 이사가 지적한 비판은 대략 다음과 같다.

“ISI는 지난 40년간 우수한 학술지를 평가해 논문들의 인용색인을 DB로 만들어 SCI를 고안했다. ISI가 SCI를 개발한 목적은 좋은 학술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연구자가 논문의 인용 및 피인용도 검색을 통해 관심 분야의 세계적 연구동향을 쉽고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평가가 목적이 아니라 정확한 학술정보 제공이 일차적인 목표인 것이다. 때문에 이를 교수들의 업적 평가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우리가 제공한 정보를 잘못 이용하는 것이다. ISI가 평가하는 것은 저널이지 저널에 수록된 논문이 아니다. 권위있는 저널에 실린 논문일지라 하더라도 모두 우수한 논문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 평가용으로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테스타 이사의 이 비판은 SCI를 절대적으로 신봉해온 국내 학계의 관행을 뒤집는 것이다. 실로 신화를 허무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SCI 그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SCI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연구도구이다. BD로 짜여진 이 분석 틀로 교수는 세계적 연구동향을 한눈에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주로 아시아권 대학에서 이를 연구도구가 아니라 평가도구로 활용하면서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 테스타 편집이사의 해석. SCI의 그릇된 신화는 한국의 학계 스스로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그간 SCI 활용에 관한 문제지적이 전혀 없었던가. 아니다. 몇몇 교수를 중심으로 절대적 평가잣대로 활용돼서는 곤란하다는 우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는 줄곧 테스타 이사가 밝힌 것처럼 “전혀 다른 용도로 개발된 도구를 평가잣대로 활용하고 있다”며 비판을 가해왔다. 이기종 국민대 교수(교육학과)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는 수년 전 “SCI가 동양권 대학의 학술지 분석도구로 부적합하다”는 입장을 ‘과학기술정책동향지’에 발표한 후 오히려 곤욕을 치러야 했다. 김원 이화여대 과학기술대학원장 역시 SCI 비판론자 중 한사람이다. SCI를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비판요지. 정보통신분야와 같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새로운 논문이 쏟아지는 분야에서는 학술대회에서 발표되는 논문이 더 우수하다는 것.

SCI에 대한 비판여론이 적지 않음에도 국내 학계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으며 교수평가의 잣대로 오용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까지 SCI를 대신할 만한 평가잣대가 없다는 대안부재론 때문이다. SCI를 평가도구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럼 다른 대안이 있는가 하는 역공세가 힘을 얻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SCI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군들은 SCI 등재 학술지들이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권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든다. 한민구 서울대 교수(전기·컴퓨터공학부)는 “SCI 등재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모두 우수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권위있는 학술지에는 우수한 논문이 실리는 것이 상례이다. 평균적으로 보면 그렇다. 학문연구가 국제적 수준으로 발돋움하려면 국제표준에 맞춰가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따라서 SCI를 평가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종욱 학술진흥재단 기획실장은 “SCI를 절대지표로 사용해선 안되지만 국제적 표준으로 볼 수는 있다. 문제는 대학과 학계가 SCI의 긍정적인 면을 이용하지 않고 부정적 요소를 더 활용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SCI순위와 학문적 능력은 무관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학계는 SCI의 마력에 휘둘리고 있다. 빗나간 활용인지 알면서도 SCI가 평가잣대로 그 위력을 더해가고 이유는 교육부, 과학기술부 등 정부당국이 이를 적극 권장하고, 일반 언론들 또한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두뇌한국(BK)21의 성과를 SCI 등재 학술지 논문 증가수로 설명하고 있고, 과학기술부 역시 대형 과학기술프로젝트의 성과를 알리는 도구로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노재환 ISI 한국지사장의 해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시아권의 후발 국가들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목표지향적 과학기술정책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당장 국제적 수준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계량화된 틀이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국제적 수준과 비교해서 현 위치를 점검한다. 한국이 SCI를 절대 평가기준으로 오용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보인다. 연구목적이 아니라 평가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국내 학계가 SCI의 개발목적과 달리 섣불리 그릇된 평가기준으로 잘못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이제 SCI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학계의 진지한 논의가 뒤따라야 할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한가지는 80년대 후반부터 SCI를 분석해온 포항공대 학술정보원의 최기숙씨의 전언에서 찾아진다. 다년간의 분석 노하우를 통해 그는 SCI의 두 가지 문제점을 꼬집었다. 하나는 등재된 학술지들이 대부분 영미권으로 심하게 편중돼 있다는 것. 세계적 학문수준을 자랑하는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국가의 학술저널들은 그 비중이 대체로 낮다는 결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게재 논문들이 생명공학, 의학 등 특정학문분야에 집중적으로 편중돼 있다는 것.

이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SCI 자체는 의미가 깊지만, SCI 등재 논문에 발표된 양적인 규모가 곧 해당 국가의 학문적 수준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SCI의 세계순위와 한 나라의 학문적 능력을 동격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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