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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 눈 먼 자식교육에서 눈을 뜨려면
[만파식적] : 눈 먼 자식교육에서 눈을 뜨려면
  • 교수신문
  • 승인 2002.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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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1 13:49:01
정윤영/조선대·해부학

지금은 그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한동안 ‘엽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괴이한 것에 흥미가 끌려 쫓아다니는 일’인 ‘엽기’라는 말을 실감나게 해준 기사가 생각난다. 한국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영어 발음을 잘 할 수 있도록 혀 밑을 절개하는 수술이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로, 외국에까지 보도됐다고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R’과 ‘L’ 발음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익히 다 아는 사실인데, 그 두 발음을 잘 하도록 ‘멀쩡한’ 아이의 혀밑 주름을 절개한다는 것이다. 서울 유명 성형외과에는 혀 밑을 잘라달라고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가 하루에도 열 명이 넘는다니 이야말로 ‘엽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의 혀 밑에는 설소대(lingual frenulum)라고 하는 주름이 있는데, 이를 절개하고 봉합하는 수술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다. 선천적으로 설소대가 짧고 넓어서 혀 끝 가까이 붙어 있어서 혀의 운동 장애를 초래하는 경우이다. 아이가 선천성 설소대단축증(tongue tie)이더라도 젖을 빨거나 밥 먹는 데는 별 지장이 없어서 1세 미만에는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고, 성장하면서 ‘라’ 구음 장애를 초래하게 되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수술은 혀가 절치를 넘어오지 못하는 등의 특별한 발육 장애가 있을 때 임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전문 정보를 아이의 멀쩡한 설소대에 적용시키는지 그 부모들의 ‘정보력’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아이가 영어 발음을 잘 구분하여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게 된다 해도 그것이 정말로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터라 명문대에 자녀를 진학시킨 선배 교수들이 자녀교육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면 저절로 귀가 기울여지곤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 중 하나가 자식 키우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식을 잘 키웠느냐 못 키웠느냐의 척도는 무엇보다도 명문대학에 보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면 부모는 주위 사람들 불러 한 턱 내기 일쑤이고, 인성과 소양을 갖춰 예절 바르게 키웠더라도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부모는 자식 자랑에서 뒷전으로 물러나 있게 된다.
부모들이 이렇듯 자식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의 미래가 매우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어릴 때부터 경쟁의식 속에 사는 우리 자녀들이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이 사회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다 해낼 수 있을 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또한 질 좋은 교육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부모의 소득이 있어야 하고, 부모의 고소득을 배경으로 과외를 많이 한 아이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그 다음 세대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부모가 소득이 낮아 자식에게 좋은 교육혜택을 주지 못해 대 물림 된다면 우리 사회는 평등하지 못한 사회가 될 것이며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부모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부모가 먼저 인성과 소양을 기르고 갖추어 자녀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믿음직한 후원자 정도로 물러나 있는 것은 또 어떨까. 아이의 결정으로 학원 열 군데를 다닌다면, 또한 스스로 설소대를 절개하기 원한다면 그 아이는 행복하겠지만, 판단력도 없는 아이를 부모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일종의 ‘학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때쯤 “엄마, 아빠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어? 결정해 줘”라고 한다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잘 따라 주어서 고맙기보다는, 동기부여를 제대로 못해 준 자신을 탓하게 되지 않을까. 이제는 부모로서 스스로의 삶에서 보람을 찾고 목적의식을 갖고 자식 교육에 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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