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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 석굴암 모형관 건립 논란
[문화재] : 석굴암 모형관 건립 논란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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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1 13:52:04

“부드러운 살결이 만지면 따뜻한 것 같고 혈관이 뛰는 것 같고 그 속에 장대한 근골이 숨어있는 것 같아서, 이 석불은 조각이란 이름을 붙였으되 완전한 한 인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것 같다”라고 한 월북 미학자 김용준의 표현대로, 다만 화강암이란 외투를 입었을 뿐 인성과 불성이 살아 숨쉬는 듯한 석굴암. 불교예술의 극치로 손꼽히는 석굴암이 요즘 ‘복제’ 문제로 시끄럽다.

지난해 10월 석굴암을 거느린 큰절 불국사는 문화재위원회에서 제2 석굴암 건립 허가를 받았다. ‘석굴암 성보박물관’이란 이름을 달게 될 이 모형관 건립계획은 지금의 석굴암 자리에서 1백m 아래쪽 토함산 계곡에 석굴암을 실물 크기 그대로 재현하고 지상 1층, 지하 1층을 갖춘 3백여 평짜리 유물전시관을 세우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석굴암 모형관 문제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지난 12일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찬반론자들을 모아 실시한 현장설명회였다. 학계와 문화재 관련인사, 환경단체 회원 등 2백여 명이 참석한 이날 설명회에서는 모형관 건립을 주도하고 있는 불국사와 문화재청, 이에 반대하는 관련인사들간의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고 각 방송사 뉴스에 보도돼서 석굴암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을 짐작케 했다.

석굴암 모형관, 불국사의 오랜 숙원?

불국사에서 석굴암 모형관 건립을 추진해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1998년 불국사는 석굴암 남쪽 요사채 옆 구릉지에 제2 석굴암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공사비 1백 60억 원을 들여 2000년 완공 목표로 문화재위원회의 허가가 나기를 기다렸으나, 제2 석굴암 건립 계획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차례 진통을 겪은 적이 있다. 한동안 모형관 논의가 잠잠한 듯 싶다가 지난해 문화재청이 건립 허가를 내주면서 본격적으로 제2 석굴암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불국사가 굳이 ‘가짜 석굴암’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국사가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관람객들에게 석굴암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1976년 이후 석굴암을 찾은 이들은 석굴암의 참모습을 가까이에서 제대로 볼 수 없다. 보온 방습을 위해 보호 유리막을 설치한 해가 1976년이니, 26년 동안 격리돼있었던 셈. 일반인들이 들어가 관람할 수 없게 된 석굴암을 같은 크기로 재현, 관광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며 만져보거나 참배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 그렇게 해서 ‘불교예술의 극치’를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관련 학계에서는 ‘석굴암·토함산 훼손저지대책위원회’를 꾸려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대책위원회가 꾸려진 것은 지난 3월로,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 김홍남 이화여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대책위 회장을 맡고 있는 이상해 성균관대 교수(건축공학과)는 “지금 문화재청의 입장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문을 열 뒤, “반대 서명이나 관련 학자들의 성명 등 추후 작업은 상황을 지켜보며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경관 훼손 불 보듯 뻔하고, ‘진짜’ 감동 못 준다

석굴암 모형관 건립에 반대하는 이들의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는 석굴암 경관 훼손과 산림 파괴에 대한 우려다. 떨어져 짓는다고는 하나 석굴암 경내에 인공 건물을 지으면 경관이 훼손될 뿐 아니라 1천여 평의 산림이 파괴된다는 것. 김홍남 이화여대 교수(미술사학)는 지난 12일 설명회에서 “신라인들이 토함산 깊숙이 석굴암을 만든 이유는 깊은 계곡에 숨겨 대규모 건축을 막아 고요한 불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대해 문화재청은 “경관 훼손을 막기 위해 모형관의 높이를 최대한 낮추고, 주위 환경과 건물의 조화를 이루겠다”라고 밝혔다. 불국사는 현재 ‘전시관의 건립은 석굴암 본존불 시야를 가리지 않고 주위경관과 조화되게 자연 친화적으로 추진한다’라는 위원회 의견에 따라 모형관 설계를 보완하고 있다.

두 번째 반대의견은 석굴암의 예술성을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관람객들이 어설픈 모형을 보고 오히려 석굴암의 예술성을 그릇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바로 이 지점이 문화재청과 학계의 반대 여론이 가장 강하게 부딪치는 지점이다. 김형국 서울대 교수(지역개발학)는 한 일간지 사설을 통해 “교육목적이라면 더더욱 진품을 보여줘야 한다. 진품이 예술교육의 왕도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주 현지의 여론은 어떨까. 이재근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지역은 조용하다”라고 말문을 연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경주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설사 반대 논리가 있더라도 조용할 수밖에 없다. 지역정서를 무시할 수 없고, 인간관계도 얽혀있다. 몇몇 운동가들만 나서고 있는 상황이고 실제로 반대 단체 하나도 결성된 곳이 없다.”관람객들의 편의와 교육보다 ‘관광수익’에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 또한 불거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불국사는 5월에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국고와 지방비 52억 원을 들여 3년 동안 이어질 대규모 공사로 토함산 일대는 당분간 몸살을 앓을 듯 하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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