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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국 500여명 참석 … 베니스, 시각 이미지 분석에 빠지다
35개국 500여명 참석 … 베니스, 시각 이미지 분석에 빠지다
  •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 승인 2010.05.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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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호학대회 ‘보이는 것의 수사학’참관기

세계시각기호학회 (Association Internationale de Se´miotique Visuelle, 회장 클린켄베르그 Jean-Marie Klinkenberg)가 매 2년 마다 주최하는 정기학술대회가 이탈리아 수상 도시 베니스에서 4월 13일부터 17일까지 개최됐다. 전 세계 35개국에서 약 500여 명이 참석해 18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보이는 것의 수사학’이다. 시대와 역사를 가로질러 상이한 문화권과 다양한 시각 매체에 나타나는 시각 이미지 속의 논증과 설득의 양상을 기호학적 시각에서 짚어보는 야심만만한 연구 목표를 내걸었다.

세계기호학대회가 4월 13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렸다. 위 사진은 발표가 진행되고 있는  대회장 모습.  사진제공: 김성도 교수


기호학 전공자들 가운데 영상 언어와 이미지 분석의 고수들이 모여 시각 예술, 건축, 그래픽디자인, 영화, 패션, 광고 브랜드 등, 다양한 시각 언어 분야에서 얻은 성과들을 발표해 시각 이미지 분석의 최고의 지적 향연을 펼친 풍성한 잔치였다. 기조 발제의 면면을 보면 남미와 아프리카 등에서 수 백 명의 학자들이 모여드는 이유를 짐작하고 남는다. 그레마스 기호학을 비판하면서 주관의 기호학을 새롭게 열어놓은 코케 교수와 퐁타니 교수를 비롯해, 에코의 후계자로서 이탈리아 기호학계의 거장인 파브리 교수가 참석했다. 또한, 미국 미술사학계에서 고전적인 미술 이미지 개념의 해체를 비롯해 이미지의 새로운 물질성 차원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는 엘킨스 교수, 유럽 미술사에서 시각 기호학을 접목시켜 미술 연구의 새로운 분석틀을 제공한 투렐만 교수와 칼라브레스 교수 등 그 면면이 화려했다.

기호학·수사학의 방법론적 접점 찾기


이번 학회의 목표는 기호학과 수사학의 인식론적, 방법론적 접점을 구성하는 것이다. 모든 문화는 사용되는 매체, 사용 절차, 모티브의 차이를 넘어 특정 ‘토픽’을 조종하고 신념 체계를 변형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구상적 투자들에 호소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다. 이를테면 회화, 다이어그램, 디자인 등은 그 자체로 장식이 아니라, 힘, 설득, 논증이 지속되는 시각적 ‘장’이라 할 수 있다. 즉, 특정 사회의 행동 주체들 사이에서 야기되는 도전, 갈등, 공범성을 풀기 위해 구축되는 전략들이 시각 이미지 분야에서 어떤 양상을 띠는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기호학자 바르트가 이미 고대 수사학의 기원과 구조를 다루며  발표한 논문에서 비롯한다. 바르트는 수사학을 그 시초부터 사회적 몸짓(gestus social), 민중의 목소리(vox populi)로 통찰했다.

이런 취지는 학회의 논문 공모문에 나타난다. 즉 수사학은 언어 사용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역학 관계를 다루고, 따라서 수행적 차원을 지닌다는 점에서 모든 의사소통에 존재하는 화용론과 접맥된다. 따라서 시각 기호학은 이미지에서 발현된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담화 전략들의 분절 계제가 된 것이다. 다만, 전통적 수사학에서 다룬 비유법들과 문체들에 대한 연구는 자제하고, 시각 담론의 논증적 차원에 방점을 찍었다. 필자는 이 같은 학회 취지에 찬동해, 조선시대의 대표적 행실류로서 유교 이념의 전달과 유포에 있어 교육적, 설득적 기능을 맡았던 삼강행실도를 분석 자료로 선택했다. 사용된 매체, 개념적 내용, 구성이라는 세 가지 각도에서 다루는 논문을 「유교 삽화의 그래픽 수사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해 만족스러운 호응을 얻었다.

학회 개막 기조 강연에서 파브리 교수는 먼저 기존의 시각 기호학이 주로 이미지의 구조적 분석에 치중했던 한계를 지적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사용된  시각 이미지로 관심의 축을 이동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더불어 이미지를 다룰 때 분석자가 반드시 명심해야할 두 가지 사항으로 이미지의 복잡성과 유일무이성 내지는 특이성을 지적했다. 파브리 교수는 이미지의 존재론적 조건을 환기하면서 궁극적으로 모든 이미지 분석은 인류학적 학술 분야에 속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르크스주의와 퍼스 기호학을 접목시켜 사회 기호학 이론 체계를 구축했던 베롱 교수는 이 같은 이미지의 복잡성을 생생한 중남미 일간지의 레이아웃을 통해 정치인들의 이미지 관리 기술을 예시하고, 수많은 이미지들의 변이형을 언급했다. 또한 고전적 기호학에서 설정된 기호 범주들의 획일적 적용에 따르는 무리를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퍼두대의 블레이크슬리 교수는 「시각 수사학의 도해와 자기 정체성의 기호학’이라는 논문에서」 영상과 수사학의 접점을 시도한 20세기 지성사를 일별했다. 능동적인 수사학적 과정으로서 본다는 것을 세계에 대해 자아를 단언하는 서술행위로 봤다.  그는 ‘보는 행위의 한 가지 방식은 또한 보지 않는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역사학자 버크의 영상수사학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영상수사학은 이미지의 애매모호성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개진했다. 이미지의 애매모호성 문제를 코께 교수는 기조 논문을 통해 ‘시각 기호학은 현실 또는 실재에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는가’라는 직설적 물음을 던진다.

이란 감독 키에로스타미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예가 됐다. 보통 사람들이 설원을 바탕으로 나무가 늘어선 것으로 보는 한 장의 사진 이미지에 대해 정작 작가는 그것이 풍경 이미지가 아닌, 눈으로 그려진 여성의 가슴 곡선이라고 했다. 독자에게 하나의 볼거리가 아닌 촉각의 대상을 제공할 의도로 제작됐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일화를 통해 코께 교수는 인간의 두 가지 이미지 독법으로서 우리의 사고 타성인 로고스(사물에 대한 기술과 인지적 서술어에 호소하는 것)와 우리의 신체적 경험을 기록할 수 있는 퓌시스(phusis)의 세계를 구별한다.

여기서 그가 강조한 것은 인지적 차원에서 신체적 차원으로 이동하는 경험축의 이동으로 이 같은 경험은 이미 그레마스가 말년의 미적 전회에서 증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간 속에서 우리의 몸이 위치하는 것은 더 이상 사물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행위가 아니라 지각하는 신체의 과정을 따른다는 메릴로 퐁티의 현상학적 조건이 제시된다. 동시에 세잔이 자신의 회화 창작 과정에 대해 남긴 증언을 인용하고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세계는 나의 손아귀 속에서 나를 중심으로 틀이 짜여 진다. … 만약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생각한다면, 내가 어떤 개입을 한다면,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 되고, 모든 것은 나로부터 도망간다.”

선의 존재 방식 탐사한 논문 화제


시각 기호학의 섬세함과 묘미를 일깨운 또 다른 기조 논문은 베르트랑 교수의 「선의 수사학과 기호학」이었다. 자연 속에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자크와 보들레르의 진술로 시작된 논문은 선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탐사한 후 선의 섬세한 유형론을 제시한다. 그는 선의 조형적 유형론에 이어서 선의 긴장성, 상징성, 정서성, 가치론적 차원을 완성시킨다. 선을 보이는 것과 읽힐 수 있는 것 사이의 흔적, 보는 사람의 감응에 따라 이뤄지는 추론 형식의 흔적으로서 파악하면서 선의 기호학을 제시한다.

이 밖에도 월플린, 바르부르크, 말로 등이 「하이퍼이미지의 수사학」이라는 제목으로  예술 이미지가 수집, 재구성, 재배열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미술사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맥락화 되는 과정을 이미지의 미적 위계화를 합리화시키는 메타 담론 차원에서 분석한 투렐만 교수의 발표도 관심을 끌었다. 또한 건축과 도시 기호학의 권위자인 포르투갈의 마르코스가 프랑스 건축계를 상징하는 장 누벨의 파리 도시 갱생 담론을 수사학의 관점에서 예리하게 분석한 논문도 호평을 받았다. 타이포그래피의 미세한 서체가 가져다주는 조형적 변화를 기호학적 코드로 밝혀낸 논문과 민족학에서 사용된 사진 이미지의 수사학적 구조를 다룬 신진 인류학자들의 논문들도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필자는 파리 제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저서로 『현대기호학 강의』, 번역서로 『현대 기호학의 흐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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