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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비판적 대안 … 所有와 共有 관계도 조명 필요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비판적 대안 … 所有와 共有 관계도 조명 필요
  • 안재원 서울대·철학
  • 승인 2010.05.0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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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와 정치이론』&『공화국을 위하여 - 공화주의의 형성과정과 핵심사상』

『공화주의와 정치이론』세실 라보르드, 존 메이너 외 지음│곽 준혁·조계원·홍승헌 옮김│까치│2009

세실 라보르드, 존 메이너 외 지음│곽 준혁·조계원·홍승헌 옮김│까치│2009

『공화국을 위하여 - 공화주의의 형성과정과 핵심사상』조승래 지음│도서출판 길│2010

 

 

두 책의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환영한다. 『공화주의와 정치이론』(까치, 2009)을 번역한 곽준혁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팀의 노력과 『공화국을 위하여-공화주의의 형성과정과 핵심사상』(도서출판 길, 2010)의 저술을 위해서 ‘사반세기’에 걸친 인고의 세월을 책들과 씨름하며 서양의 사상가들과 맞대결한 조승래 청주대 교수(정치외교학)의 학자적 뚝심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 책들의 출판을 환영하는 이유는 다음에 있다.

단적으로 ‘공동체’와 ‘공화국’에 대해서 제대로 소개하는 우리말 저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책의 출판을 계기로 ‘공화주의’에 대한 많은 논쟁과 담론이 촉발되기를 희망한다. 공화주의 논의가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을 묶어주는 공통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는 일이 ‘더불어 사는 삶’을 가능케 하는 선결 요건이기 때문이다. 즉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관계 설정 문제와 관련해서 권리와 의무 설정 문제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 설정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와 동의 문제야말로 소위 지배와 예속에 의해서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의 핵심 요건이기 때문이다. 이 두 저술의 출판이 의미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더불어 사는 삶’의 문제와 관련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공화주의 담론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신 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앞에서 무기력한 개인으로 전락한 시민들의 삶, 비효율적이고 무능력하다고 낙인 찍힌 민주주의 그리고 여전히 집단적 안도와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와 반성이다.”(곽준혁, 역자서문, 14쪽)
“하이에크는-함께 검토한 벌린도-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해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을 허무는 우를 범했다.”(조승래, 321쪽)

그러니까 이 책들은 신자유주의에 의한 사회 양극화 시대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모색으로 제안된 새로운 형태의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정치-경제 기획 프로그램인 셈인데, 자유로운 개인의 독립성과 개체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모든 구성원의 공통성을 공화국의 기초로 간주하되 사회, 경제, 교육, 복지 등의 구체적인 차이와 격차가 발생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최소 공통성의 수립이라는 공화국의 이념에 대한 담론과 논의가 요청되는 시점에서 이 책들이 제기하는 문제 의식은 의미 있고 중요하다 하겠다.

그러면 이 두 저술이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공화주의 담론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소개해보자. 이와 관련해서 아마도 공화주의 담론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 두 저술이 자리한 위치를 살피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서양 역사에서 공화주의가 주목 받은 적은 크게 세 번 있었다. 먼저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 시대와 로마의 공화정 시대이다. 이 시대의 담론을 학자들은 소위 아리스토텔레스 공화주의라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 공화주의의 특징은 폴리스(공적인 것)와 오이코스(사적인 것)의 엄격한 분리에 있다(『형이상학』 IX장, 8, 1050 a 4~9). 공적인 것을 다루는 원리와 사적인 것을 다루는 원리는 서로 다른 것이며, 사적인 영역에 대해 공적인 영역이 인륜적인 우월성뿐만 아니라 존재론적 우월성도 가진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화주의의 현대적 대표자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를 들 수 있다.

『인간 조건(The Human Condition)』(1996)에 서 그녀는 신 로마 공화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두 영역의 엄격한 분리가 점차 해소됐고 공적인 것의 우위가 사라진 시대가 됐다고 개탄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공화주의의 특징은 공공적인 것의 우위 속에서 정치 사회와 경제 사회를 분리하고 정치 사회를 덕성 있는 시민들의 폴리스로 되돌리려는 시도로 연결된다.

共同體와 公同體의 관계 설정

나의 讀法이 맞다면 조승래 교수는 위의 인용에서도 보았듯이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우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고전적 공화주의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 교수의 『공화국을 위하여-공화주의의 형성과정과 핵심사상』은 논의의 출발을 키케로가 생각한 공동체와 공화정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공화주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공(public)적인 것과 사(private)적인 것의 구분에 대한 논의를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 플라톤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칼 포퍼가 플라톤을 비판했을지라도, 그의 비판은 플라톤의 ‘국가’의 논의가 共同體에서 公同體를 끌어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무제한적 욕망으로 부풀고 부어 오른 아테네 정치 共同體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공(public)의 영역에서 다시 公적 체계와 체제에 대한 생각이 『국가』 저술의 기본적인 의도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조승래 교수에게 후속 연구로 共同體에서 公同體의 관계 설정 문제를 따져줄 것을 부탁 드린다. 또한 후속 연구로 인간성(humanitas)에 들어 있는 여러 성격 가운데에서 共同體와 개인 문제 및 公同體와 개인의 관계 설정 문제의 분석을 부탁하고자 한다. 아마도 공화주의 담론이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는 논의로 연결될 것이다.

다음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마키아벨리의 신 로마 공화주의이다. 그는 시민의 ‘덕성’을 강조한다. 학자들은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를 ‘시민적 덕성의 공화주의’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 공화주의의 핵심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에 있고 전자의 후자에 대한 우위를 강조하는 반면, ‘시민적 덕성의 공화주의’에서는 공적인 것의 우위가 존재론적 우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폴리스의 우위를 설명하기 위해 철학이 아닌 실제 역사에 기댄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역사가 리비우스의 중심 개념인 인민(populus)이 아니라 근대의 개인(individuum)을 중심 개념으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근대적 개인 개념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하겠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 개념으로서의 폴리스 개념의 해체를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다른 방식으로 공적인 것의 우위를 주장한다. 공적인 것은 덕성이라는 개별 시민의 주관적 행위규범 및 동기와 결부돼 우위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즉 개인은 유리함과 불리함에 따른 합리적 선택을 하지만 시민은 정치공동체를 향하는 덕성에 의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행위 규범에서 전체를 향한 덕성은 개별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성에 대해 우위를 가진다는 말이다. 개인에 대한 폴리스의 우위는 개체적인 합리성에 대한 시민적 덕성의 우위로 변형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조승래 교수는 공화주의 논의의 시작점으로 키케로의 res publica 문제를 상정했는데, 나는 특히 개인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원자주의적 individuum으로 보는 접근이 아닌, 요컨대 civis(시민)와 civitas(公同體)의 관계 설정과 humanitas(인간)과 res publica(共同體)의 관계 설정으로 나누어 접근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근대이다. 이 시대에 다뤄진 정치 담론은 루소와 칸트와 같은 철학자들의 근대 공화주의이다. 근대 공화주의는 17세기의 홉스와 로크에 의해서 수행된 反아리스토텔레스주의 지평에서 비롯된다. 루소도 칸트도 모두 개인의 자유 의지에서 출발하는데, 이러한 출발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폴리스적 동물’이라는 인간 정의의 재고를 의미한다. 루소나 칸트가 노정하는 전제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다. 특히 칸트의 개인은 공적 원리에 의해 철저히 脫개인화된 존재이다. 탈개인화의 대표적인 예로 칸트의 정언 명령을 따르는 소위 특정화되지 않는 3인칭 단수로서의 개인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들은 사회계약, 이른바 ‘원천적 계약(contractus originarius)’의 주체로서 공적 개인(persona publica)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탈개인화된 개인이 공적 개인으로 자리매김된다. 하지만 이러한 공적 개인도 마찬가지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런 구분에 입각해서 근대 공화주의를 보편적 고전 공화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철학적·경제적 공화주의 논의 필요


어떤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고전 공화주의와 근대의 보편 공화주의는 원리적으로 하나의 뿌리를 가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고전 공화주의와 보편 공화주의가 다른 이유는 각각의 입론 방식이 다른 토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의 공적 개인은 공적인 원리에 의해서 분리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철학적 공화주의에 대한 추가 논의를 조승래 교수에게 부탁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서 『공화주의와 정치이론』의 제8장에 소개된 제임스 보머의 ‘비지배와 초국적 민주주의’는 칸트의 보편적 공화주의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인류 차원에서의 정치적 공화주의 문제는 사실 세계 각국의 경제적 문제와 직결된 것이고, 다시 말해 경제적 공화주의 문제의 맥락에서 함께 검토돼야 하는 문제이다. 즉 개인의 所有와 인류의 共有의 관계에 대해서 따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뚜렷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치적 공화주의와 경제적 공화주의의 관계 설정, 혹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관계 설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인류 차원에서 말이다.

안재원 서울대·철학

독일 괴팅엔대에서 철학 박사를 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있으며, 키케로의 『수사학』을 번역했으며, 「키케로의 인문학에 대하여」 등의 논문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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