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9:50 (목)
그것은 排除가 아니라 認定이다
그것은 排除가 아니라 認定이다
  • 김선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
  • 승인 2010.04.26 1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영화제, 그 욕망 덩어리를 마주하면서

제 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여성영화제)가 지난 15일에 막을 내렸다. 여성영화제는 그 시작부터 독자적인 목적과 실천의 형식을 갖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거나 절충하고 협상하는 과정이 곧 자체의 역사가 돼 왔다는 점에서 여타의 일반 국제영화제와는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여성영화제가 시작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여성영화제의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여성’을 하나의 (사고를 작동시키기 시작하기 위한) 문제나 의제로 공적 영역에 던졌을 때 어떠한 욕망과 갈등 및 충돌이 일어나는가이다. 열 두 해를 거듭하면서‘여성’과 ‘가부장제’의 관계는 ‘여성’을 둘러싼 모든 문제들이 그렇듯이 여성들의 자의식, 젠더로만 규정될 수 없는 성적 주체들의 출현, 영화제에 개입해 있는 남성들이 조종하는 국가 자본 및 기업 자본의 복잡한 역학에 의해 변화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민간 자본이 아닌 국가 자본에 의존하는 커다란 영화제들은 정부가 자본을 대가로 요구하는 것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http://wffis.or.kr

여성영화제의 동화 전략에 담긴 역발상


해마다 국제영화제평가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행하고 있는 심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성들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이 평가의 결과는 영화제의 13억 예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과도 같기 때문에 영화제 규모를 이 정도로 가져가려면 귀담아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지적되는 ‘여성 중심 남성 배제’라는 이 평가는 사실 여성영화제의 근간이자 다른 지방자치 영화제들과 여성영화제의 차별화 전략이기도 하다. 대부분이 보수적인 남성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들 평가단이 지적하는 이 사항은 국제영화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야 한다는 이름으로 고리타분한 이전의 남성 중심의 스탠다드를 반복하고 있는 듯 보인다. 여성영화제의 특수성이 바로 여성이 중심이 돼 여성을 이슈화하는 것이며 여성의 문화 생산물을 가시화하고 장려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가 결국 남성들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너희들끼리 조용히 놀라는 여성주의 문화운동에 대한 게토화 전략이자, 어느 조직이든 남성들이 개입해서 중심이 돼야만 안정돼 있다고 느끼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여기는 건 지나친 걸까.

  
어찌됐든 여성영화제는 이에 대해 두 가지 동화 전략을 사용했다.‘오픈 시네마’섹션을 조직해서 남성들이 만든 친여성적인 영화를 소개하고, 한편으로는 지속적인 물밑작업을 통해 대만, 일본, 인도 등에서 열리는 아시아 여성영화제들과 함께 ‘아시아여성영화제 네트워크’(Network of Asian Women's Film Festivals, NAWFF)를 조직한 것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유럽에서 시작돼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수많은 여성영화제들 중 가장 큰 규모의 여성영화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 영화제의 국제적 기준을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세워나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의 그 스탠다드는 지금 여기에서 열리는 여성영화제가 바로 기준이며 이는 유럽 중심, 남성 중심, 백인 중심의 스탠다드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전지구적 연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부는 자랑스러워 해야 할 것이다.

문화를 단순한 소비나 정치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현실 도피로만 보는 시각 또한 여성영화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해외 게스트들이 여성영화제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은 세대를 망라한 여성들의 참여와 이들이 내뿜는 강한 긍정적인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는 국경을 넘어 전세계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실체 없는, 어떻게 보면 현실을 한참 못따라 가고 있는 잣대로 남성이 배제당하고 있다는 뒤틀린 소심함을 버리고, 남성들도 여성영화제와 함께 하면서 대인배스러운 지지를 보내라는 것이다. 경제지수보다 한참 뒤떨어진 성평등 지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또 다른 국가 전략이 바로 여성영화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흥하게 하는 것이란 역발상도 필요하다.

한편 여성영화제에 투사된 욕망은 앞에서 지적한 남성들의 가부장적 무의식만이 아니다. 가부장제 권력 속에서 여성들의 이기적인 욕망 또한 만만치 않으며 이 여성들은 세대별, 결혼 여부별, 섹슈얼리티별로 나뉘어 각자의 욕망을 여성영화제가 충족시켜 주길 바라고 있다. 여성영화제의 역사를 보면 여성을 하나의 커다란 범주로 동질화하는 것이 얼마나 둔감한 짓이며 오히려 그런 동질화 작업이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을 한 중년 세대 여성, 비혼 여성, 이주 및 선주민 여성, 레즈비언 여성 등의 뒤에 붙어 있는 ‘여성’이란 말은 그저 너무 복잡한 기표들의 욕망들을 조절하기 위한 하나의 ‘결절점’ 내지는 ‘소파고정점’과 같다.

‘퀴어 레인보우’ 섹션에 속한 영화들이 상영되는 극장은 퀴어 자신들의 거의 유일한 공적 장소이기 때문에, 이성애 여성과 남성들이 감독과 대화할 때 낯설음에서 오는 ‘깰 수 있는’ 편견과 무지를 드러내면 곧장 씹히기 쉽다. 여성들은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는 그것이 이성애를 통해 남성 권력과 접속되기 때문에 서로에게 지나치게 예민하면서도 이주민이나 선주민 여성들이 직접 만든 워크샵 작품을 상영하는 ‘이주여성 영화제작 워크샵’과 같은 다른 인종의 여성들이 직접 만든 특별상영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여성들 또한 누가 무엇 때문에 더 가졌는지 알고싶어 하고, 가진 자로서의 포비아를 드러내며, 그만큼 권력의 소유에 예민하다는 점에서 이 사회의 남성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영화산업과 여성 영화인 발굴하기


여성영화제의 욕망조율기제가 작동해야 하는 지점은 더 있다. 무엇보다 ‘영화제’이기에 여성영화인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해서 영화산업에 여성들의 개입을 촉진시키는 일이다.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100년의 역사에서 여성(케서린 비글로우)이 감독상을 탄 건 올해 처음이었다. 그만큼 영화산업은 여타의 산업분야만큼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금녀의 집이고 그 중심에 여성이 다가가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성영화인을 지속적으로 길러내는 일은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작품의 질과 연결되는 일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올해에는 ‘피치 앤 캐치’라는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사전제작지원을 했고 ‘트랜스미디어스케이프’라는 특별전을 통해서 극영화가 아닌 여성감독들의 실험영화를 상영했다. 한편 올해 경선 대상에는 88만원 세대의 심리적 지리를 그린 「나를 믿어줘」가 뽑혀 산업 예비군과 비정규직에 몰려있는 여성들의 현재를 직시하는 문제의식과 표현 형식의 절합을 이뤄내면서 여성감독의 미래를 밝게 했다. 한국영화의 발전과 동시에 여성주의 문제의식을 고양시키는 일은 여성영화제에 대한 욕망의 또 다른 절충지점이다.  

            
여성영화제를 바라보고 참여하는 이들이 일반 여성이든, 여성 활동가든, 여성 감독이든, 남성이든 누구든 간에 서로가 서로에 의해 배제되고 있다는 이기적인 욕망보다는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평등의 힘과 정신의 저 편에 숨어있던 타자에 대한 절대적인 인정의 욕망을 일깨우는 문화의 장으로 여성영화제가 거듭나길 기대한다.

김선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단국대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