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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비트겐슈타인, 인간 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역사 속의 인물] 비트겐슈타인, 인간 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 교수신문
  • 승인 2010.04.2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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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6년간 내가 작업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논리-철학 논고’라 불리는 책을 썼습니다. 나는 마침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믿습니다.” 1919년 3월 13일,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포로로 잡혀 이탈리아 몬테카시노의 포로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4.26~1951.4.29)은 자신의 스승 러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위와 같이 썼다. 비트겐슈타인이 언급한 ‘우리의 문제들’은 철학의 모든 문제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이 철학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대담한 선언이 담긴 편지를 러셀에게 보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 아홉 살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4월 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래 공학도였지만 수학의 토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러셀의 지도로 논리학을 공부했다. 당시 러셀은 수학 전체를 논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야심찬 기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작 논리학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만족스럽게 해명하지 못했다.

비트겐슈타인이 생전에 출판한 단 하나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논고』에서 논리학의 본성 뿐 아니라 철학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믿었고, 이에 따라 철학을 그만뒀다. 그러나 그는 점차 『논고』가 중대한 오류들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1929년 그는 케임브리지로 돌아왔고, 1951년 4월 29일 사망하기 직전까지 철학적 작업을 계속했다. 이 작업의 정수는 그의 사후 출판된 저서 『철학적 탐구』에 담겨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평생 동안 씨름한 과제는 철학적 문제들의 본성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서양철학의 고전적 이념에 따르면 철학은 시공을 초월해 성립하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를 찾고자 하는 학문이다. 유한한 인간이 과연 그런 진리를 찾을 수 있는가. 놀랍게도 논리학과 수학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가령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이를 발견한 괴델이라는 20세기 오스트리아 중산층 백인 남성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성립하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이다. 고전적 서양철학은 인간이 그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형이상학과 윤리학 등 철학의 제반 분야에서도 이성에 의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논리학 및 수학과는 대조적으로,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아직까지 그 어떤 합의된 답도 발견한 적이 없다. 왜 그런가. 『논고』와 『탐구』 모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들이 갖고 있는 이런 기묘한 특성의 근원을 성찰하고 있다. 칸트와 마찬가지로 비트겐슈타인은 그 이유를 신적 이성의 전지전능함과 대비되는 인간 이성의 한계에서 찾는다. 그러나 칸트와 달리 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의미의 한계와 연관시켰다. 인간 이성은 절대적 진리를 찾으려는 열망으로 인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즉 철학적 문제들을 불가피하게 제기하게 되지만, 이 문제들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또한 의미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의미한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논고』와 『탐구』의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책은 또한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다. 『논고』가 모든 철학적 명제를 그 자체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 『탐구』에 따르면 일반 명제들과 선험적으로 구별되는 철학적 명제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명제들의 무의미한 철학적 사용이 있을 뿐이다. 특히 『탐구』에서 ‘문법적 명제’라고 불리는 일군의 명제들은, 그것들이 철학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한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명제들로 간주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논고』에서와 달리 『탐구』는 인간 이성을 언어 공동체 속에서 벌어지는 개인들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삶의 형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된 인간 이성이 과연 논리학과 수학의 명제들, 그리고 ‘문법적’ 명제들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비트겐슈타인은 그렇다고 믿는다. 언어 공동체 속에서 벌어지는 개인들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삶의 형식, 이 가변적이고 불완전하게 보이는 토대가, 실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명제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유일한 근거라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명제들의 보편성과 필연성이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탐구』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전개하고 있는 생각의 핵심인 것이다.

 
서양철학의 역사에서 아무도 이러한 생각을 제시한 이는 없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어떻게 설득력있게 발전시킬지는 아직 우리에게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는 다름 아닌  철학과 인간 이성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과제이다.

강진호 서울대·철학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 「촘스키와 비트 겐슈 타인의 지칭 의미론 비판」 등이 있다. 비트 겐슈 타인에 관한 연구서를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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