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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책의 날(4.23) 특별기고 - 제3의 독서 영역
세계책의 날(4.23) 특별기고 - 제3의 독서 영역
  • 교수신문
  • 승인 2002.04.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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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30 18:21:52
김정근
부산대·문헌정보학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런 경우를 두고 세상은 참 오래 살고볼 일이라고 말해야 할까.

2000년 벽두에 ‘TV가 책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 곳에서 시작하니 다른 곳에서도 같이 했다.

조금 지나자 주요 채널이 모두 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다. 2002년에 들어와 한 신문이 ‘다시 책이다’라는 주제 밑에 연중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여기서는 주로 취재를 통해 세계적으로 디지털시대에 책읽기의 중요성이 여전히 강조되고 있는 사정을 전하고 있다. ‘도서관콘텐츠확충과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의 활동도 만만치 않다. 이 운동 사무국에서 배포하고 있는 영화배우 안성기씨를 모델로 한 독서홍보포스터 ‘책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이 운동이 가지는 사회적 호소력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책을 죽음으로 내몬 1990년대

한 마디로 어안이 벙벙해진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정부·기업·언론이 한통 속이 돼 책의 죽음, 벽없는 도서관, 디지털 만능을 말하던 때가 언제였나. 이들의 위협 반 설득 반에 직면한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부지런히 컴퓨터 기종을 업그레드 시켜대던 때가 언제였나. 바로 1990년대가 아니었던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의 경박성이 여지없이 드러난 부분이자 심층근대화를 향한 과정 상의 오류였다고 정리할 수 있으리라.

한 때 이런 일도 있었다. 일부 도서관 사서들이 혼란을 일으킨 나머지 이제 비싼 돈 주고 책을 살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디지털이면 다 해결된다는 식이었다.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제법 기세가 등등했다. 예산 배정기관에서는 그것을 기회로 삼아 자신들의 인색함을 호도하려 들기도 했다. 그것이 언제였나. 1990년대의 일이 아니었던가.

시간은 디지털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마이클 고먼같은 이는 지금을 브릭(brick)과 바이트(byte)의 공존과 상호보완 시대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디지털시대에도 책은 여전히 중요한 매체로 남아 있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독자의 필요와 요구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 디지털시대에 사람들은 무슨 목적으로 여전히 책을 읽는 것일까. 우선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한 훈련의 수단으로 전과 같이 책을 이용한다고 할 수 있다. 각성을 위한 책읽기, 성인의 말씀을 책에서 읽고 깨우침을 얻는 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서, 사서삼경, 기독교 바이블을 읽는다. 도올논어, 현각스님 자서전, 오강남의 기독교 이야기가 서점에서 잘 팔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능력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성취의 수단으로 여전히 책을 이용한다. 지식을 쌓는 책읽기가 여기에 속한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의 탐구를 위한 책읽기를 말한다. 사회적 관심이 온통 쏠려있는 영역이다. 이 분야의 독서를 잘 하면 사회적 진출이 쉽게 이루어지고 성공이 보장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주로 위의 두 영역에서 책읽기를 해왔으며, 그것은 디지털시대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여기에 더해 디지털시대 제3의 책읽기 영역이 부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요구와 독서자원의 내용이 변해 있다고 하는 조건과 관련이 있다.

그것을 나는 ‘성숙’을 위한 책읽기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인간을 귀납적으로 이해하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처를 치유하고, 장애를 뛰어넘게 해주는 책읽기이다. 생산과 산업에 함몰된 인간형을 지양하고 정신복지형을 지향하며, 성취와 성공 지향의 인간형을 극복하고 행복한 인간형에 눈을 돌리는 책읽기이다. 지난 날 독자를 사로잡곤 하던 톨스토이의 인생론, 카네기의 처세술, 법정, 신영복, 김동길, 안병욱과 같은 저자들의 초월적이며 연역적인 교양주의와는 일정하게 구분이 되는 영역이다.

‘성숙’을 위한 책읽기

내가 ‘성숙’을 위한 책읽기라고 했을 때 적절한 예를 제공하는 저자가 스캇 펙이다. 지난 학기 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이 영역의 책읽기를 위한 가용자원을 검토했을 때 특히 호소력이 컷던 저자 역시 스캇 펙이었다. 정신과 의사인 그의 책은 새로운 차원에서 사람의 마음을 ‘자라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스캇 펙의 저작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도 여러 권 번역 소개됐다. 그 때 검토하는 과정에서 높은 평가가 나온 책이 ‘아직도 가야 할 길’(열음사), ‘길을 떠난 영혼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고려원미디어), ‘거짓의 사람들’(두란노)이었다.

나는 스캇 펙 계통 저작의 독서를 ‘치유적’ 책읽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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