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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신사와 문학사를 어떻게 다시 쓰게 했는가
그것은 정신사와 문학사를 어떻게 다시 쓰게 했는가
  • 정종현 동국대 BK연구교수·국문학
  • 승인 2010.04.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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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학회·이화여대인문학연구원 주최 ‘4·19, 낯선 혁명-역사의 풍경과 문학의 기억’

지난 3일 4.19 60주년을 맞이해 상허학회와 이화여대 인문학연구원은 ‘4·19, 낯선 혁명-역사의 풍경과 문학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기념 학술대회를 마련했다. 그 표제가 암시하듯이, 이 학술대회에서는 아주 익숙하게 느껴지는 역사적 사건을 ‘낯설게’ 구성하면서 한국 문학과 사상, 역사에서의 4·19가 지니는 의미를 재고하는 흥미로운 발표들이 있었다. 이 학술대회의 전체적인 기획은 4·19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혹은 4·19가 이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등의 정신사적 연속성 속에서 4·19의 의미를 묻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4·19가 정신사 자체를 어떻게 구조화했는가, 정신사 혹은 문학사와 역사를 어떻게 다시 쓰게 했는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마련됐다.

4·19를 시간과 공간의 범주에서 재인식하려는 「4·19 공간 경험과 거리의 모더니티」(오창은, 단국대)와 「전통이 된 혁명, 혁명이 된 전통」(오문석, 조선대), 세대에 따른 4·19 기억의 차이와 환상이라는 문학적 기억 장치의 의미, 나아가 4·19가 재구조화한 과거 혁명의 기억을 아우르는 「소환되는 역사와 혁명의 기억」(서은주, 연세대), 박종홍과 마루야마 마사오의 사상적 편력과 4·19, 5·19(일본의 안보조약 반대 투쟁)를 연결지어 근원적 시간성 속에서 감지된 4·19와 그것이 지닌 국제성의 감각을 환기시켜 준 「알레고리로서의 4·19와 5·19:박종홍과 마루야마 마사오의 1960」(김항, 고려대), 부산 지역의 4·19를 검토함으로써 서울 중심으로 구성된 4·19의 역사상을 재사유하게 한 「4·19 민주항쟁의 지역적 전개과정:부산지역을 중심으로」(김선미, 부산대), 4·19와 5·16의 관계를 다시 물으며 1960년대의 정신사적 구조를 재구성하고자 한 「4·19와 5·16과 문학, 혹은 빵과 자유의 토포스」(권보드래, 동국대) 등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이어진 발표와 토론을 통해 나누어 가진 많은 문제의식들은 오랜 방청의 피로를 보상해 주기에 충분했다. 이들 발표들을 통해서 지식인 엘리트 중심의 4·19의 서사 이면에서 망각돼 있던 다양한 하위 주체들의 면면과 대중들이 행사한 폭력에 대해, 그리고 4·19의 지역적, 국제적 맥락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4·19 像 놓고 첨예한 대립 이어져

그렇지만 이번 학술대회의 발표문들이 4·19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많은 차이들도 존재했다. 각각의 발표들은 그 방법적 시각을 달리했으며, 발표들이 구성해 낸 4·19상은 상호 갈등하고 모순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역사학자 김선미의 4·19 인식과 문학, 문화연구자 권보드래의 4·19 인식은 그 적실한 사례이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시작된 3·15, 4·19 학생시위와 이승만의 하야 및 정권 교체와 통일 논의로 대표되는 ‘자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1961년 5·16 이전까지 1년 동안 이어지는 일련의 연속적인 상황을 4·19로 명명하며 5·16을 그러한 민주화, 자주화의 열망을 짓밟은 반혁명으로 명확히 규정한 후 ‘사건으로서의 4·19’를 가치 평가하는 김선미의 역사상과 4·19와 5·16을 이원적인 태반을 가진 쌍생아로 파악하는 권보드래의 4·19상은 첨예하게 부딪힌다. 이들의 발표가 가지고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접근 방식과 입장의 차이는 역사 연구자와 문학 연구자의 소통의 어려움을 확인시켰고, 역설적으로 소통의 필요성을 다시 환기시켰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권보드래의 논의는 향후 4·19 및 5·16에 대한 연구와 1960년대 한국사회의 정신구조를 논의할 때 반드시 직면하게 될 문제들이 ‘박물지’처럼 망라된 발표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권보드래는 〈사상계〉에 의해 “자유와 민권의 선각자인 이 땅의 지식인들의 손에 의한 혁명”이라고 선언된 지식인 엘리트(혹은 대학생) 주도의 4·19라는 신화의 이면에 존재하는 망각된 대중들, 하위주체들의 존재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되살려낸다. 권보드래에 따르면 ‘자유’의 승리로 의미화된 4·19 당시의 열망과 生氣는 곧 사라지고 이후 정치적, 사회적 혼돈 속에서 4·19는 ‘빵 없는 자유’로 탄식됐다. ‘선의의 독재’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며 ‘강력한 가부장’에 대한 요청이 대중문화의 형식으로 등장했으며 이러한 여러 징후를 통해 대중에게 5·16은 이미 예감되고 있었다.

군인들은 빵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포착하고 그것을 정치적 레토릭으로 전유함으로써 ‘빈곤의 정치학’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으며, 1960년대는 ‘빵과 자유’가 상호 대립되는 가치로 상상되면서 그 정신사적 구조가 결정된 시대였다는 것이 권보드래 발표의 핵심적인 논지이다. 1960년대 이른바 ‘4·19세대’의 문학은 군사정권이 전유한 ‘빵’에 기반한 근대화의 담론에 ‘허기’라는 항체, 즉 ‘굶주릴 수 있는 자유’ 등을 제시하며 ‘빵과 자유’를 대립시킨 것으로, 〈창작과비평〉 지식인들의 ‘분례기’(유현목 감독, 1971) 에 대한 열광은 빈곤의 담론이 근대-개발의 서사 속에서 순치되던 시기 그에 회수되지 않는 정치적 불온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권보드래가 4·19와 5·16을 이원적인 태반을 가진 쌍생아로 간주하며 재구성한 1960년대의 정신구조는 사건으로서의 4·19상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낯설 것일 뿐만 아니라 도발적이며, 4·19의 민주적 가치를 5·16이 짓밟았다는 공식화된 진보의 서사에서는 자칫 5·16의 불가피성을 강변하는 한국의 보수 우파 논리를 추인해주는 것으로 전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또한, 근대의 ‘혁명’에서 ‘빵과 자유’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4·19와 5·16을 ‘빵과 자유’의 대립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4·19의 혁명성 자체를 의문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1960년 풍경, 현재와 얼만큼 다른가


그렇지만 권보드래가 재구하고 있는 ‘빵과 자유’의 대립을 활용한 빈곤의 정치학과 “설득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대중들,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지식인들이라는 1960년대의 풍경은 2010년을 살고 있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용한 범주라는 점을 지적해야만 한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며 정권 획득에 성공한 현재 정권의 정치의 수사학 역시 ‘빵과 자유’의 대립에 기반한 1960년대의 ‘빈곤의 정치학’으로부터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에 설득된 대중과 침묵, 아니 잠재적인 동조자가 돼가고 있는 지식인 집단 등은 ‘지금-여기’의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4·19와 5·16을 쌍생아로 지칭하는 이러한 범주 설정이 무척 불편할 지 모르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빵과 자유의 토포스’ 사이, 혁명과 쿠데타의 시간 위에서 자신의 입장을 되물어야 하는 상황 속에 있다. 대립되는 빵과 자유의 토포스를 넘어서려는 노력, 그것이 4·19를 되물어야 하는 이유이며 4·19가 한국 사회의 현대성의 시원으로 사유돼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정종현 동국대 BK연구교수·국문학

필자는 동국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는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신남철과 대학교의 안과 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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