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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어바인에서 읽은 서경식의 글과 삶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어바인에서 읽은 서경식의 글과 삶
  • 권성우 서평위원/숙명여대·국문학
  • 승인 2010.04.1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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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님께, 그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2008년 가을이었던가요. <한겨레> 한승동 기자, 돌베개 출판사 김희진 편집장과 함께 마포에서 뵌 지가. 그로부터 벌써 1년 반의 세월이 흘렀네요. 엊그제 선생님과 타와다 요오꼬(多和田葉子)씨가 함께 주고받은 서간집 형식의 신간 『경계에서 춤추다』를 읽고, 저도 서간으로나마 선생님께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작년에 안식년을 맞아, 최근 일년 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어바인 캠퍼스(UCI) 동아시아어문학과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다가 올해 2월에 귀국했답니다.

미국에서도 선생님의 신간 『고뇌의 원근법』(2009)과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2009)를 국제우편을 통해 구해 읽었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한겨레에 연재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의 눈>도 인터넷으로 항상 챙겨보았지요. 선생님의 글은 늘 저의 마음을 ‘서늘한 긴장’으로 인도합니다. 특히나 저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먼 이국에서 생활하면서 선생님의 책을 읽으니 참 묘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것은 제가 이즈음 커다란 관심사를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문학과 선생님의 글(책)이 의미심장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어바인에서 안식년을 보낸 동기는 UCI에 재미 한인 작가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문학 연구의 어떤 구체적 감각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재미 한인 문인들의 자의식과 고뇌, 상처, 내면을 이해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과정이 여행을 좋아하는 저에게 미국의 장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는 것보다 월등히 절실하게 다가왔답니다. 

작년 봄에 UCI에서 열렸던 소설가 김영하씨의 강연회가 계기가 되어, 그곳에서 만난 아동문학가 이미경 선생님께서 다리를 놓아주셔서, 재미수필가협회, 재미시인협회, 오렌지 글사랑, 글마루 등의 재미 한인 문인단체에서 여덟 차례의 강연을 하게 되었답니다. ‘상처받은 자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첫 강연에서 저는 디아스포라문학에 대해 얘기하면서, 재미 한인 문인들에게 선생님의 존재와 책을 각별한 마음으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어바인 인근에 거주하는 몇몇 문인 및 문화에 관심 있는 한인들과 ‘어바인 문화포럼’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독서토론을 하기도 했는데, 바로 처음에 함께 읽은 책이 선생님의 『디아스포라 기행』(2006)이었답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재미 한인들의 내면풍경과 삶의 감각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지요. 저는 그들이 과연 자신들의 삶을 ‘디아스포라’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아울러 재미 한인들이 선생님의 책에 대해서 얼마나 마음 깊은 곳에서 공감대를 느끼게 될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그들에게 선생님의 인생과 책들을 소개해주고, 『디아스포라 기행』을 함께 읽은 것은 재미 한인들의 자의식과 욕망의 풍경을 엿보고 싶다는 바로 제 호기심도 부분적으로 작용했겠지요.

선생님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그야말로 ‘상처받은 자의 좌절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재일 조선인들과는 달리 재미 한인의 상당수는 자발적 이민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바인과 LA 인근에서 만난 상당수의 한인들은 미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미국사회의 일원으로 성공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대체로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생님의 책에 제 예상보다 훨씬 예민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더군요. 그들은 『디아스포라 기행』, 『고뇌의 원근법』, 『소년의 눈물』 등의 선생님의 책에 나타난 디아스포라 정서에 깊은 공감을 표하면서, 미국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애환과 상처, 어려움을 얘기하기도 하고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기도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경제적인 안정과 성공적인 정착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각각 한 명의 고독한 디아스포라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의 책을 매개로 한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욕망과 상처, 그리움을 좀 더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바인에서 재미 한인들과 서경식을 함께 읽고 얘기한 체험은 제 글쓰기와 학문적 여정의 소중한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경식의 글과 삶에 대한 탐구는 앞으로 전개될 제 공부의 필생의 테마 중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조만간 도쿄 인근에서 선생님을 뵙고 선생님의 대학시절에 대해서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네요. 건강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권성우 서평위원/숙명여대·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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