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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도덕성과 투명성
[대학정론] 도덕성과 투명성
  • 논설위원
  • 승인 200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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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30 18:01:14
미국의 고등교육전문지인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에듀케이션’이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교수들은 대학의 교육 목표가 학생들의 사고를 명료하게 안내하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99% 이상이 그렇게 대답했다니 말이다.

사고를 명료하게 한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하건대, 논리적이며 문법적인 글쓰기와 연관된다. 생각하는, 말하는 혹은 글쓰는 ‘나’와 ‘너‘의 합리적 의사소통, 말을 나누고 생각을 서로 이해하는 언어공동체의 성숙이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우리 대학의 강의실 풍경 너머로 비쳐지는 현실은 학생들의 글쓰기를 이끌어줄 교사조차 惡文과 非文 사이에서 국적없는 문장을 남발하면서 헤매고 있으니,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 대학 교육’이라는 저네들의 생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생각과 말이 명료하고 분명할 때 우리 사회의 말길[言路]은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요즘의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새삼 이런 생각에 이른다. 정치권에서 오가는 무수한 모략의 말들, 넘쳐나는 修辭로 뒤덮인 이 말길 속에서 진정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정치집단만이 아니다. 이들과 힘겨루기에 나선 언론집단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사실’을 통해 투명한 말길을 여는 것이 아니라, ‘感’ 혹은 ‘說’에 휘둘려 무수한 기사들이 마치 누에가 실을 뽑듯 그렇게 뽑아내고 있다. 그렇지만 진실을 규명하는 진정성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고서도 우리 사회가 소통하는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사외이사 문제와 판공비 문제로 대학 안팎에서 비판받았던 이기준 서울대 총장이 조기 사퇴의 뜻을 비친 것은 대학 사회의 의사소통 문제를 다시 한번 환기하는 계기가 될 듯하다. 같은 대학의 교수협의회와 민교협 교수들의 해명 요구에 “뼈를 깎는 자성을 바탕으로 심기일전해 이 사태를 수습한 뒤 후임 총장에게 대학행정을 정돈된 상태로 넘기는 것이 제게 맡겨진 엄중한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답변하기까지 그의 고심은 남달랐을 것이다.

총장의 논문 표절을 두고 교수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청주대 총장 논문 표절 시비도 대학 사회의 의사소통의 투명성을 가늠할 수 있는 사례가 될 듯하다. 표절을 두고 ‘영혼의 도덕질’에서부터 저작권 침해라는 다양한 의견이 제출돼 있다. 대중 가요조차 원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처지이고보면, 논문 표절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한 대학을 이끌어나가는 首長이 그러했다면, 이는 응당 걸맞는 일의 매듭이 뒤따라야 한다.

과거 문제이므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등, 변명이나 순간적인 면피용 둘러대기는 정치권에서 아주 오래 들어왔던 말들이다. 지금 대학 총장들은 짊어진 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가야할 길의 좌표를 읽어내느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분명하고 투명한 언행으로 자기를 세워야 한다. 도덕적 리더십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힘과 많은 결정권을 쥔 위치에 있을수록 ‘투명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며, 이것은 대화의 파트너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혼탁한 세상으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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