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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빛나는 상상력 … 유럽적 근대성 상대화 할 것 제안
철학자의 빛나는 상상력 … 유럽적 근대성 상대화 할 것 제안
  • 교수신문
  • 승인 2010.04.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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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테일러 지음, 『근대의 사회적 상상』(이상길 옮김, 이음, 2010)

공동체주의자이자 헤겔에 대한 창조적 해석의 철학자로 알려진 테일러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이라는 책을 통해 근대성에 대한 나름의 깔끔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근대의 도덕질서에 대한 계보학적 탐구를 진행하고 있다. 근대의 도덕 질서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경제, 공론장, 인민주권이라는 세 가지 사회적 상상의 축이 제시되고 있다. 근대인들은 이 세 가지의 사회적 상상을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를 상상하고 또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신의 역할을 인지한다. 곧 사회적 상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것이 근대인들이 주체로서 판단하고 행위하면서 사회적 삶을 살아가고 영위해 나가는 방식이다.

근대적 도덕 질서의 성립은 중세적 도덕질서로부터의 탈피의 과정이었고, 그것은 곧 중세의 사회적 상상에서 근대의 사회적 상상으로의 전이이다. 중세가 세 개의 위계제를 통해, 즉 플라톤적 자연법 질서가 중세 기독교 사회 속에 투영된 방식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상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제 근대는 그로티우스와 로크가 말하는 개인으로부터 출발해 사회를 구성한다고 가정된다. 새로운 상상계의 출현이다. 이러한 새로운 상상계의 변환과정을 테일러는 세속화라는 이름으로 규정한다.

세속화는 새로운 상상계의 변환과정


세속화는 종교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한다. 하지만 종교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는 종교가 사회적 형태 및 사회적 관계를 구조화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종교적 믿음 자체의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근대의 사회적 구조와 관계들을 결정하고 규정할 새로운 상상 그리고 그것의 구현체가 필요한 것이다. 테일러는 새로운 상상계의 구조를 형성하는 있는 축으로서 경제, 공론장, 인민주권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축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경제, 사회, 정치라는 근대의 분업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근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월러스타인이나 아리프 딜릭 그리고 허쉬만 등에 의해서도 이뤄졌다.

세속화는 종교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한다. 하지만 종교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는 종교가 사회적 형태 및 사회적 관계를 구조화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종교적 믿음 자체의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근대의 사회적 구조와 관계들을 결정하고 규정할 새로운 상상 그리고 그것의 구현체가 필요한 것이다. 테일러는 새로운 상상계의 구조를 형성하는 있는 축으로서 경제, 공론장, 인민주권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축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경제, 사회, 정치라는 근대의 분업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근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월러스타인이나 아리프 딜릭 그리고 허쉬만 등에 의해서도 이뤄졌다.

하지만 테일러의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점은 이 책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세속화라는 틀이다. 기독교에 의해 구조화된 사회로부터 탈피해 정교분리의 원칙에 근거하면서 종교는 사적 영역에 한정되는 방식으로 근대적 정교분리의 원칙이 형성된다. 이러한 세속화를 둘러싼 서구인들의 논의들은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낯설다. 하지만 유럽에서 근대정치의 형성과정이 교회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답변의 과정 속에서 이뤄졌다는 한 정치신학자-테일러가 자주 인용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인 고쉐(M. Gauchet)-의 말처럼 유럽의 근대성 형성은 기독교로부터 벗어나는 ‘탈주술화과정’이었다. 탈주술화의 과정은 종교로부터 벗어나 다시 종교적인 것을 근대적인 방식으로 포섭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의 과정에서 종교적인 것은 사적 영역으로 제한됐지만 사실 종교의 위치가 명확해진 것은 아니었다. 잠재돼 있던 그 경계의 문제가 다양한 맥락 속에서 다시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세속화의 문제, 그 구체적인 작동을 둘러싸고 현대 사회의 쟁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9·11테러 이후 종교간 갈등이 냉전 이후 새로운 쟁점이 되고 있다. 국민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실험으로 유럽연합이 출범하면서 그 의미는 더욱 부각된다. 유럽연합이 그 통합의 질을 높이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발목이 잡혀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유럽정체성을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다. 유럽에서 세속화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원칙적인 수준에서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의 적용은 별개의 문제이다. ‘히잡’ 착용을 둘러싸고 발생하고 있는 프랑스 공화주의와 이슬람 간의 갈등, 역시 히잡을 착용하겠다는 아랍 출신 교사의 임용을 둘러싼 독일에서의 갈등, 그리고 런던, 마드리드, 네덜란드 등에서 있었던 이슬람교도들에 의한 테러는 그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근대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서

그런데 이 갈등의 축이 서구보편주의의 압도에 따라 근대와 전통, 서구의 세속화와 이슬람의 전통주의로 그려지고 있다. ‘히잡’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일련의 행위들의 양식 속에 위치된다. 그것이 표상하는 것은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억압, 구체적으로 여성에 대한 교육의 제한, 남편에 대한 선택권의 박탈, 외적인 권위에 의해 통제되는 성생활과 개인생활 등이다. 그것은 이미 서구적 근대성이 ‘극복’했던 전통적인 것들이다. 19세기 서구가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적 진출을 행하기 시작하면서 내세웠던 ‘문명화’ 담론이다. 비서구적 문화가 요구하는 ‘차이’의 권리 혹은 문화적 권리는 그들 내부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일축된다. 이러한 것은 우리도 19세기 말의 한반도에서 경험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테일러가 마지막에서 거론하고 있는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곧 서구적 근대성의 보편주의를 버리고 다양한 근대성 중의 하나임을 강조하면서 유럽적 근대성을 상대화할 것을 주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것은 공동체주의자로서 다문화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테일러의 정치철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근대에 경제, 공론장, 인민주권이 실현되고 작동하는 공간으로 존재해 왔던 국민국가의 문제를 다시 한번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근대 국민국가는 민주주의라는 틀을 형성하면서 세가지 축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했다. 하지만 유럽의 예에서 보이듯이 현 시점에서 국민국가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의 틀로서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규모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공론장 과 인민주권에 근거한 근대적 민주주의 역시 한계에 도달해 있다. 그렇게 본다면 라이프니쯔와 로크의 개인에서 출발한 근대의 도덕적 질서의 하나의 순환이 일단락되고 새로운 모색의 시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일러가 근대의 도덕질서의 가장 명확한 표현으로 ‘인권’을 제시하고 또한 유럽적 근대성을 상대화할 것을 제안하는 것은 근대의 끝자락에서 근대를 넘어설 민주주의적 모색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쉽게 읽히면서도 테일러가 사용하거나 근거하고 있는 개념들은 대부분 논쟁적이기도 하면서 함축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제목이 말하듯이 상상력이 발휘된 저작이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기도 하다.  번역을 깔끔하게 한 이상길 교수 역시 그간 부르디외, 푸코, 폴 베인 등 사회학, 철학, 역사학 등의 다방면의 번역의 경험이 있다. 그러한 번역들은 근대성과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역자의 일관된 연구관심 속에서 이뤄져 왔으며, 이 책의 번역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번역어의 선택과 관련해서 ‘nation’의 번역어는 항상 번역자를 괴롭히는 개념이다. 많은 경우 이상길 교수는 ‘국가’라는 번역어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혁명을 전후한 경우 대부분은 ‘국민’이라는 단어가 적절할 듯하다. 그 외에도 프랑스사학계에서는 나름대로 합의된 번역어들-incorruptible은 로베스피에르의 별명이다-이 존재하는 단어들에 대해서는 그 합의를 따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홍태영 국방대·국제관계학부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정치학 박사 취득. 저서로는 『국민국가의 정치학』등이 있다. 국민국가의 형성과 발전, 정체성, 인권 등에 관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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