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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사우디에도 ‘서열’리스트가?
[나의 연구실] 사우디에도 ‘서열’리스트가?
  • 이기영 군산대·해양생물공학
  • 승인 2010.04.05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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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여느 때처럼 학부생들의 얼굴엔 송글송글 구슬땀이 맺혀있다. 톱이며 갖가지 연장들로 뚝딱뚝딱 열심히 뭔가를 만들어가느라 다듬고 닦는다. 사진(아래)의 배경으로 보이는 ‘어류 사육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시스템 설계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손수 항온실을 꾸몄다. 학생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리 실험실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공간은 이렇게 마련됐다.

왼쪽 맨앞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소라(학부생), 이실(학부생), 릴리(박사과정, 중국유학생), 김태후(연구원), 이사흥(석사과정), 손정희(학부생), 양판(석사과정, 중국유학생), 이기영 교수

미국 대학에서 계획했던 독창적인 연구 결과들을 모국에서 꽃을 피우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2004년 8월 학교에 부임했지만, 텅 빈 실험실은 아득하기만 했다. 그나마 채워나갈 게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나마 충분히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담을 수 있어 주변 동료들에 비하면 다행스러웠다. 대학원생이 없던 초창기에 학부생들에게 대학원생 역할을 기대했다.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어류복제분야에 대한 연구그룹은 전세계적으로 적다. 그래서 우리 연구실에서의 성과는 곧 세계적인 성과라는 비전과 자부심을 부여하면서 고락을 함께해 나갔다.

우리 실험실은 군산대 해양생물공학과 ‘어류유전공학실험실’이다. 동물복제, 특히 어류를 대상으로 복제연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류 신품종을 개발한다. 관상어와 양식산업화에 초점을 맞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제브라피쉬 복제에 성공한 이후, 순수 국내 연구진과 학생들의 땀으로 국내에서 결실을 맺고자 하는 당찬 야심에 연구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이집트 대학의 한 교수가 박사과정 진학을 문의해 왔다. 사우디 정부로부터 전액장학금을 지원받고 박사과정에 진학하려 했으나, 사우디 장학재단의 요건 사항 중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대학 목록에 지방대인 군산대가 들어 있지 않아 더 이상을 진행하지 못했다. 좋은 인재를 놓치게 된 셈이다. 또한 많은 학생이 파트타임을 원하고 있고 풀타임학생의 충원이 여전히 높지 않는 관계로 연구의 지속성과 집중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방대라는 한계 탓에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학생들에게 동기부여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항상 고민한다. 얼마 전부터 기회만 되면 학생들을 불러다 일대일 상담을 시작했다. 학부생들에겐 학과의 비전을, 대학원생들에겐 전공의 비전을 심어줘 내재돼 있는 잠재능력을 끌어올리려고 한다. 예컨대 학부생들을 연구에 대한 관심을 끌려고 실험동물 관리에 참여하도록 한다.

학생들의 낮은 목적의식과 저평가된 능력은 관심과 사랑으로 인해 잠재돼 있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명한 계기가 됐다. 이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적극적인 연구실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흐뭇하면서도 충분한 여건을 마련해주지 못함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외국에서 유학오려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이들 외국인 학생들은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됐다. 연구비 빚으로 시작했던 연구실 생활이 이제는 어느 정도 여건이 조성 되었고, 연구역량에 주력하고 있다.

사실 지역대에서 학생들의 연구 역량과 자신감을 외부에서 찾기는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내부적으로 끊임없는 관심, 사랑, 열정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학문은 외로운 것이고 자기와의 싸움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져라. 지방대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차별화된 주제를 고민하고 연구해야만 경쟁력이 있다.” 우리 학생들이 어려운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환한 미소를 머금을 그 날까지 초심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스승의 날 때 학생들이 기타 치며 노래를 불러주던 모습에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러한 순수함이 묻어있는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할 ‘그 무엇’을 항상 고민한다.

이기영 군산대·해양생물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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