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6:00 (금)
‘境界의 철학’ 추방한 닫힌 시대의 迷夢을 넘어서
‘境界의 철학’ 추방한 닫힌 시대의 迷夢을 넘어서
  • 교수신문
  • 승인 2010.03.29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읽기] 「경계도시2」, 상실의 시대를 벗어나면서

국내에서 베스트셀러로 기록돼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를 보면 주인공이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타고 함부르크 공항에 도착하는 낭만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 숲」을 들으며 나오코와의 과거를 떠올리기 시작한다.

2003년을 뜨겁게 달궜던 경계인 송두율 교수 문제를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필름에 담은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가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사진은  보수단체가 그의 추방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경계도시2」의 초반을 보면서 같은 항공사가 등장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3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송두율 교수의 표정은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홍형숙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1년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송두율 교수가 낭만이 아니라 야만적인 상태를 경험하는 행적을 좇기 시작한다. 정리가 잘 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로 2003년의 한국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경계인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철학자에게 스스로의 철학을 부정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진행된 지 한 시간쯤 흘렀을 때 송두율 교수의 아내가 반문하던 장면은 뇌리에 남는다. 이처럼 순순히 요구를 따를 거라면 그처럼 오랫동안 갈등과 긴장의 시간을 보내면서 끌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개혁세력 내부에 대한 비판 독특

    「경계도시2」에서 가장 묵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점은 보수진영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개혁세력이라 일컬어지는 내부에 대한 비판적 시점이다. 보수여론의 태도나 사회적 분위기는 비행기를 탈 때부터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그런데,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나아가 독일국적을 포기하라고 권한 것은 그를 초청한 민주화 운동 단체의 동료들이었다. 이유는 한국사회에 편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송두율은 경계인임을 강조할 수 없었고, 다양한 주변인들의 조언을 들어야만 했다. 이 장면 중 흥미롭게 제시되는 장면은 대표적인 보수인사로 알려진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사울에서 바울로’ 개명한 것을 공식석상에서 언급하면서 송두율에게 잔을 기울이는 순간이다. 2003년은 좌든 우든 하나의 목소리로 경계인을 버리고 전향할 것을 강조했던 시절이었다. 

“이 영화는 너무나 뜨거운 상실의 시절을 벗어나 차분한 어조로 2003년을 보여주고 있다.”

    논쟁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송두율의 죄는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것이었으며, 이것은 국가보안법에 위반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송두율은 애초부터 어디에도 소속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이 일종의 괘씸죄로 치부돼 그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지언론조차도 이 부분에 대해서 배신감을 드러냈다. 이 과정 속에서 송두율 개인이 살아온 세월이나 법적인 행적의 죄과에 대해서는 결코 따져지지 않았다. 「라쇼몽」의 진실게임처럼 자신의 입장만을 갖고 난무하는 설전을 벌였을 뿐이다. 이른바 한국 사회의 마녀재판들이 그러하듯송두율은 괘씸죄의 주인공이 됐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대국민사과와 독일국적 포기선언으로 이어졌다.

    정작, 이러한 상황과는 달리 법의 판단은 미묘하게 비켜나갔다. ‘해방 이후 최고의 간첩’이라 불리던 송두율 교수에게 죄를 물은 것은 간첩죄가 아니라 북한을 방문한 사실에 관해서였고, 시간이 흘러 대법원은 독일 국적 취득 이후의 북한 방문도 무죄를 선고한다. 현재, 송두율 교수는 무죄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무죄 선고 이후 그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그에게 온갖 의혹과 부조리한 시선들이 쏟아질 때는 누구나 그를 만나고 싶어하고, 그로부터 진실을 듣고 싶어 하지만, 정작 법적인 판단 안에서 모든 결론이 내려졌을 때 송두율은 잊혀졌다. 이것은 한국사회에 성찰적 미디어가 가능한가를 질문하게 된다.

    오늘날 미디어의 시선은 걸그룹의 꿀벅지를 전시하는 호기심의 시선이고, 그것들을 둘러싼 의혹의 시선이며, 스캔들 자체에만 끌리는 것이다. 정작, 법적 진실이 선고됐을 때, 의혹에 대한 법적판단이 내려졌을 때 진실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경계인의 철학은 이쪽의 입장에서 저쪽을 바라보며, 끔찍한 냉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성찰적 노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지식인과 개인성에 대한 존중


    그러나, 2003년의 한국은 이쪽과 저쪽의 다름을 동일성의 과정으로 환원시킨다. 북한에서도 입국에 관련된 절차를 밟았으면, 이쪽에서도 동일하게 절차를 따라야 하지 않느냐는 동일성의 논리를 내세우면서 과거의 순간에 대한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순간을 성찰로 재정립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이 영화에는 한국사회의 혼란뿐만 아니라 감독 자신의 혼란도 함께 다뤄지고 있다. 영화 중반부에 감독조차 방향을 잃고 고민하고 있음을 내레이션을 통해 제시한다. 송두율 교수가 자신이 김철수라 불리었던 사실을 알고도 미리 말하지 않았던 것에 실망한다. 심각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세파에 부딪치던 카메라는 흔들린다. 하지만, 홍형숙 감독 자신은 어떤 자리에서 행한 말을 떠올리면서 한 지식인의 내면을 되물으며, 자리를 찾는다. 그는 「경계도시」를 상영하면서 송두율 교수와 김철수의 관계에 대한 의혹에 답변한 적이 있다. “송두율이 김철수라도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은 송두율의 지식인의 입장에 대한 지지인 동시에 개인성에 대한 존중이었다. 

 

철학자의 성찰마저 눌러버린 거대한 힘

    하지만, 2003년의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한 유명한 지식인이 진정으로 회심하는 극적인 순간을 보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동계올림픽 스포츠 중계에서 잘 드러나듯이 소리높여 외치는 감동의 순간을 좌든 우든, 정치든 스포츠든, 버라이어티쇼든 드라마든 한결 같이 보고 싶어한다. 그 순간의 연출을 위해, 하나같이 열광하고 눈을 치켜세운다. 하지만, 이 열광의 물결 속에서 정작 문제시돼야 하는 법적인 과정들, 한 인간의 내면적 고백은 제대로 전해지기 어렵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국가보안법 문제를 외쳐왔던 진영조차도 결국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인정하는 결과를 2003년의 과정은 보여주었다. 그것은 농익은 철학자의 성찰마저 눌러 버리는 거대한 위력을 발휘한다.

    송두율 교수는 그의 저서를 통해 그가 계몽의 철학자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03년을 보내면서 그의 철학은 움츠러드는 결과를 낳게 됐다. 하지만, 홍형숙 감독은 「경계도시2」를 통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윤리와 진정한 계몽의식의 필요성을 차분하게 묻는다. 여러 평자들이 이미 말했듯 다분히 감상적이었던 「경계도시」에 비해 「경계도시2」는 훨씬 더 성숙한 다큐멘터리이며, 감독 개인의 시선과 자기고백적 성찰이 녹아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분명한 깨달음이 일어난다. 점점 더 보수화돼 가는 현재 속에서 한국사회는 또 다른 송두율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균형감각과 성찰을 스스로를 돌아보는 다큐멘터리가 여전히 가능하다면, 송두율이 말했던 경계의 철학은 다른 방식으로 전이돼 여전히 실천가능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문하게 된다. 「경계도시2」는 철학자의 철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거울처럼 그의 철학을 되질문하는 성찰의 다큐멘터리다. 그것은 한 순간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갔던 2003년의 어느 시절을 부여잡으면서, 철학자조차도 망각하고 있었던 순간에 진정으로 철학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영화의 지혜인 것이다. 이 영화는 너무나 뜨거운 상실의 시절을 벗어나 차분한 어조로 보여주고 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필자는 영화평론가이다. 저서로는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기고를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