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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불태운 제도적인 폭력에 대한 실증적 고발
도서관을 불태운 제도적인 폭력에 대한 실증적 고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03.29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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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레베카 크누스 지음,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강창래 옮김, 알마, 2010)

책 제목이 섬뜩하다. 다루는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일까. 미리 말하지만, 이 책의 저자 레베카 크누스 하와이대 교수(문헌정보학)는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휴머니즘 쪽으로 경도’돼 있는 학자다. 20세기를 만든 이데올로기, 20세기와 함께 살았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책을 학살했는가를 추적한 이 책은 나치, 세르비아, 이라크, 중국 등이 저지른 ‘책의 학살’(libricide)을 파헤쳤다. 자료에 대한 접근 가능성, 가해자들의 동기 등 몇 가지 기준에서 이들 집단 또는 국가의 대량 책 학살을 다룬 것이다.

 

리브리사이드, 인류문화 전체에 대한 폭력

저자는 이 ‘리브리사이드’가 인종말살(genocide), 문화말살(ethnocide)이라는 틀 안에서 일어난 ‘종속적인 현상 또는 부차적인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사실 책의 학살은 인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사건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나 아시리아, 고대 이집트,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인류 문화 전체에 대한 폭력이다. 중세의 종교는 또 얼마나 많은 책들을 소멸시켰던가. 번역자가 인용한 프로이트의 “생각을 없애려면 사람도 불태워야지”라는 말이 시사하듯, 이 폭력은 홀로코스트와도 분리될 수 없다.

저자는 왜 20세기에 주목했을까. “20세기 책의 학살은 극단적인 이념들과 민주적인 휴머니즘·국제주의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극단적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도서관 파괴와 책의 학살이 저질러진 것이 20세기의 시공간이다. 그것은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 될 수 있는, 앞으로도 반복해서 나타날 수 있는 무서운 ‘전염병’이기도 하다.

레베카 크누스가 적절하게 지적했듯, 이 20세기 책의 학살 이면에는 추악한 ‘정부의 승인’이라는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폭력이 도사려 있다. “책의 학살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야만인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충동적인 범죄의 총합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문제해결의 도구다. 그것은 이념에 의해 편협하게 규정된 집단 善에 봉사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방법을 선택한 해결책일 따름이다.” 저자가 다섯 개의 사례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검토한 이론틀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이념으로 변형된 정치적 신념들이 글로 쓰여진 자료를 적의 무기로 보거나 적 그 자체로 합리화 한다”고 설명한다.

 
“책의 학살 사건은 정권이 후원하는 활동들과 관련이 있다. 극단주의로 들어서면 민족적 담론을 획일화시키고 공공 도서관을 검열하기 시작하면서 책의 학살을 시작한다.” 그가 단적으로 거론한 사례가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이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조지프 매카시 의원의 지도 아래 일어났던 반공산주의 운동은 지성인들과 언론인을 목표로 삼았고 도서관을 검열했다.”  “이념의 정통성은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서라도 모든 이견과의 차이를 몰아내고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책과 도서관은 기억을 보존하고 증거를 제공하며 다양한 관점이 유효하다는 증거를 보관하고 지적인 자유를 누리게 해주면서 집단의 정체성을 지원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통제되고 검열되며 광범위하게 숙청되기까지 한다. 만일 변혁을 방해하거나 이념의 목표를 더 이상 이루지도, 이룰 수도 없게 만들 집단으로 판단되는 적과 텍스트가 너무 밀접하다면 그것들은 배신자 집단과 함께 공격을 받는다. 사람의 목소리를 없애려 할 때 그 목소리를 물리적으로 표현한 텍스트도 함께 파괴한다. 이것이 책의 학살 구조다.”

‘20세기 전염병’을 방지하려면
   그렇다면, 인류가 이 전염병과도 같은 책의 학살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국제법에 호소라는 현실적인 전략과 인류의 양식에 호소하는 감성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문화에 관한 전쟁 범죄를 가장 심각한 범죄로 다룰 수 있도록 범인 송환을 가능케 한 헤이그 협약의 협정서를 중시한 것이 그렇다. “인류의 영광을 어떤 한 나라나 어떤 집단의 배타적인 특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휴머니즘에 정면으로 반대된다”는 주장도 빠뜨리지 않았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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