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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 <27>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1966)
[우리시대의 고전] <27>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1966)
  • 홍은영 / 철학박사
  • 승인 2002.04.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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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9 10:52:47
홍은영 / 철학박사·파리 1대학

미셸 푸코 (Michell Foucault)
(1926~1984)
1926년 10월 15일 프랑스 프와티에에서 태어났다. 앙리 4세 고등학교를 거쳐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 1948년 철학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이어 1949년에 심리학 학사학위를 받는다. 1952년, 그는 철학교수시험에 합격하고 릴대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1952년에는 파리의 심리학 연구소로부터 정신병리학 학위를 받는다. 1955년에서 1958년까지 그는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강의했다. 1968년에는 바르샤바대의 프랑스연구소 소장으로, 1959년에는 독일 함부르크의 프랑스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했다. 1960년 그는 클레르몽-페랑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쳤으며, 1961년 소르본대에서 광기의 역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1962년 클레르몽-페랑대 철학교수가 되며, 1969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상체계의 역사’교수로 임명돼 취임 강연으로 ‘담론의 질서’를 발표한다. 이후 그는 뉴욕, 일본, 캘리포니아 등에서 강연을 했으며, 1983년 버클리 켈리포니아대에 매년 방문해 강의하기로 합의했다. 주요 저작으로 ‘광기의 역사’(1961), ‘임상의학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 지식에의 의지’(1976), ‘성의 역사2: 쾌락의 선용’과 ‘성의 역사3: 자기에의 배려’(1984) 등이 있다. 이 중 ‘말과 사물’은 생명·노동·언어에 초점을 두고 서구 담론사를 분석하면서 언어와 주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1984년 파리에서 패혈증으로 숨을 거뒀다.

탈근대 논의와 더불어 우리 학계에 들어온 푸코의 사상은 그 동안 많은 번역서와 해설서가 출간됐지만 ‘난해한 철학자’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했다. 첫째는 푸코의 사상을 지나치게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그의 사상 전체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와 논지를 모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푸코의 사상을 총괄적으로 이해한다면, 탈근대에 관한 논의는 그의 독특한 역사 분석의 방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단지 파생적으로 등장하게 된 영역임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영미권에서 이해된 푸코의 사상을 그대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푸코 후기의 계보학적 방법에 근거한 ‘권력-지식’의 연계문제에만 피상적으로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의 철학적 배경과 초기의 고고학적 방법에 의해 마련된 역사이해의 방법 및 인식론적 기반이 충분히 이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푸코가 자신의 논의 기반인 역사적 실증성의 영역들을 어떻게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역사적 성과물들을 재평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인식틀 속에서 분석하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요구에 정확히 맞닿아 있는 것이 바로 ‘말과 사물’이다. 푸코는 상호간에 어떤 관계도 가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사물들의 돌연한 근접 앞에서 이러한 기괴한 병치를 가능케 하는 인식근거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우리의 분절과정이 그렇게 객관적이지도 근본적이지도 않음을 보이고자 시도한다. 푸코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인식의 가능조건을 탐색하는 데 주력한다. 즉 인식과 이론을 가능케 하는 토대에 관심이 모아져 있다. 요컨대 ‘말과 사물’은 지식의 공간에 배치된 경험의 근본적 존재양식이자 역사적 과정에 내재해 있는 구조의 필연적 체계인 ‘에피스테메’를 통해 담론의 형성과 변환을 다룬다. 캉길렘 에서는 개념사의 방법이 생물학, 해부학, 생리학 등 관련 학문영역 내에서 주로 사용된 반면, 푸코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우 상이한 학문영역들을 연결하는 데 사용된다. 즉 서로 다른 영역들인 일반문법·자연사·부의 분석과 같은 고전시대 경험과학들을 유사하게 묶어내는 공통의 개념적 구조를 밝혀낼 때 사용된다. 또한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유사성과 표상 및 인간과 같은 개념들이 일정한 시기의 학문영역들에 깊이 스며있음을, 또 인간의 위치가 어떻게 변화를 거듭하는지를 르네상스시대와 고전주의시대 및 근대를 축으로 탐색한다.

인식의 가능 조건에 천착해

이러한 기획에 도달하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이 바로 ‘고고학’(arch럒logie)이다. 마치 고고학자가 역사적 지층 속에서 그 시대의 유물을 발굴해 일정한 시대상을 재현하듯, 푸코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각 시대를 가능케 한 인식의 가능조건을 발굴해 일정한 시대의 사유근거를 밝혀낸다. 이러한 담론형성의 규칙에 근거해 인간 사유의 역사를 분석하는 고고학은 그 파생적 결과물로 근대이래 전개된 주체중심철학에 대한 비판·불연속·시원과 모순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을 산출한다. 고고학은 다양한 담론형성들의 특이성과 형성규칙들의 수준 위에서 나타나는 유비와 차이의 놀이를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그리하여 종래의 지성사가 가정해온 연속성·통일적 주체·기원·진보의 개념을 부정하게 되며, 대신 불연속·파생적 주체·반복·대립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전통적 인식론이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 속에서 대상세계를 인식주체에 의해 파악하려 했다면, 고고학은 이러한 인식론적 반성형식들을 가능케 하는 무의식적 근거들을 파헤친다. 그 동안 동일자의 역사에서는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타자·환자·질병·비이성 및 광기와 같은 소외된 영역들이 사유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방법론이 갖는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고고학적 방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감시와 처벌’을 기점으로 ‘계보학’(g럑럂logie)적 방법을 전개시킨다. 고고학이 국지적 담론에 적합한 방법이라면 계보학은 그렇게 묘사된 국지적 담론들로부터 출발해 거기서 끄집어낸 앎들을 작동시키는 기술이다. 그는 권력의 개념을 새롭게 이해·설정해 놓음으로써 인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정치·경제적 문제들을 그 발생 차원에서 심도있게 통찰해낸다. 즉 전통적으로는 권력을 주체로부터 파생된, 통제와 지배의 형식을 갖는 억압기제로 보고, 법의 속성과 연결시켜 사법적 특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한 반면, 푸코는 권력을 도처에 편재해 있는 생산적 힘으로서 모든 사회와 제도들에 스며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푸코는 권력놀이의 작용지점으로써 인간의 ‘신체’가 어떤 그물망 속에 얽혀 우연적으로 구성되는가를 보여주며, 훈육적 기술과 생체권력(bio-pouvoir)의 대상으로써 신체의 개념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포착해낸다.
‘주체와 권력’ 서두에서 푸코가 자신의 연구작업의 목표를 분명히 밝힌 것처럼,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이론이나 방법론이 아니다. 그렇다고 권력현상을 단순히 분석하거나 이러한 분석에 필요한 이론을 제공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 주체화의 상이한 양식들의 역사를 산출하려고 시도한다. 즉 인간존재를 주체로 변형시키는 대상화의 세 가지 양식을 다룬다. 우선 스스로에게 과학의 지위를 부여하는 양식이 존재한다. 둘째로, 그는 자체의 내부에서 나눠지거나 또는 타자들로부터 분절되는 주체를 분석한다. 예컨대 광인과 정상인, 병자와 건강한 사람 등이 존재한다.
끝으로 최후 저작들에서 주로 다뤄지는, 인간이 자신을 주체로 전환시키는 방식에 대한 연구가 있다. 여기에서는 ‘性’을 하나의 영역으로 선택해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성’의 주체로 인지하게 되는가를 밝힌다. 사실상 ‘통치’개념으로까지 권력개념을 확장시킴으로써, 푸코는 근대 통치형식들의 어떤 측면에로 방향전회한다. 푸코에게서 ‘통치’개념은 권력관계 속에 놓인 개인들의 상호작용을 함축한다. 그 개념을 통해 권력을 위한 정치적 투쟁, 통치에 대한 비판적 반성 및 자기에 대한, 또 타자에 대한 자기의 관계 사이에, 개인적 자유를 정초하기 위한 초석을 놓는다.

이론적 한계, ‘계보학’으로 이행

푸코의 마지막 관심사는 “권력관계들이 어떻게 합리화되는가”, “우리는 바로 이 순간에 어떤 합리성의 형식 속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인가”이다. 푸코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이 개인과 개인의 자유에, 또 그들의 삶에 위협을 가하는 것들로부터 피할 수 있는, 그리고 그와 같은 목적과 효과를 지닌 또 다른 제도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그가 궁극적으로 분석하고자 한 것은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자유의 본질, 외부세계를 구성하는 주체가 아니라, ‘인간 존재가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게 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문제설정과 그 실천들의 전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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