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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스님과 시인
[문화비평] 스님과 시인
  • 정은경 원광대·문예창작학과
  • 승인 2010.03.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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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머물던 길상사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좀 남다른 곳이다. 단 한 번도 법회에 참석해본 적은 없지만, 법문을 듣는 것 못지 않은 평화와 위안을 얻은 곳이기 때문이다. 성북동은 부자 동네로 유명하지만, 그 덕분에 저택 주변에 살고 있는 산동네 주민들이 치안은 물론 무분별한 도시 개발이 섣불리 침범하지 못해서 유지되는 풍취를 톡톡히 누리는 곳이기도 하다. 한동안 그 언저리에서 살던 나는 한용운의 심우장과 이태준의 집필실이었던 수연산방, 그리고 길상사와 성곽길로 이어지는 성북동의 고즈넉한 길을 즐겨 산책하곤 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크게 감명을 받은 자야부인(김영한, 법명 길상화)이 자신이 운영하던 요정 대원각을 시주해 지금의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 길상사’가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그래서인지 길상사는 여느 절과는 좀 다른 풍취를 지니고 있다. 아미타불의 극락전의 본 법당도 특별하거니와, 금방이라도 산해진미와 풍류가 흘러넘칠 듯 요정의 밀실을 연상시키는 예쁜 요사체와 선방들, 성모마리아상을 연상시키는 관음보살상, 선방 앞의 양귀비꽃, ‘침묵의 집’ 등 길상사의 면면은 세간과 격리된 배타적인 고결한 불심보다는 세속을 끌어안고 보편으로 나아간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법정스님은 해탈을 향한 자기정진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기도 했으며, 무소유와 이웃사랑의 정신을 뭇 대중에게 설파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셨던 분이다. 그것은 출세간의 불자의 수행이 궁극적으로 욕망을 버리고 세상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라는 작은 집에서 나와(出家) 더 많은 자아들의 욕망을 통찰하고 거두는, 그럼으로써 세간에 더 깊숙이 들어가는 일이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양귀비를 보며 “흙 속에 묻힌 한 줄기 나무에서 빛깔과 향기를 지닌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라고 했던 법정스님의 경이와 길상사에서 때로 그 어느 시보다도 고귀한 시심을 느끼곤 했는데, 그것은 자야부인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백석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백석의 저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의 시심이 법정스님이 진흙 속에서 빚은 ‘맑고 향기롭게’의 도량과 크게 다르지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흙과 꽃이 하나가 되는 ‘순수한 모순’이란 결국 불심과 시심의 궁극일 터.

법정스님이 입적하시는 즈음 한 시인이 출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첫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에서 ‘똥’을 화두로 사회와 정치, 자신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비판했던 차창룡. 95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 뛰어난 시인은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리라”라고 출가의 변을 밝혔다. 『인도신화기행』을 펴내기도 한 시인의 자연스러운 행로라고도 생각되지만, 그러나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 차 시인의 행보는 자못 충격적이다. 무엇이 이 재능있는 시인을 세간 밖으로 몰아냈던 것일까. 대한민국의 삶을 끊임없이 경주트랙으로 몰아 넣음으로써 수많은 백수들과 낙오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자본과 탐욕의 논리? 그 자본의 논리를 뼛속까지 체화한 우리 시대의 황폐한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단? 물론 차 시인의 행보가 롤러코스터와 같은 무시무시한 삶의 질주로부터의 일탈은 아닐 터이다.

“잘 쓰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욕망은 사실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집착하게 되고 괴로움을 유발한다는 면에서 권력욕이나 재물욕과 다를 게 없다. 헌데 문학적 욕망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해 왔다. 물론 평생 문학에 매달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시기 그런 욕망마저 한 번 놓아버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시인의 말에는 ‘무소유’가 비단 재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문학적 욕망 또한 재물욕과 다르지 않은 집착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어느새 ‘맑고 향기로운’ 시심을 잃고 대중과 소통을 단절한 폐쇄적인 우리 문단 시스템과 자기과시욕에 사로잡힌 예술가들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 아닐까.

“별은 상처다. 우주의 상처이고, 내 마음의 상처이고, (…) 별이 상처이기 때문에 상처를 냉장 보관하고 있는 밤하늘은 만다라이다.”(『미리 이별을 노래하다』)라고 했던 그의 시론을 다시 읽으며 시인의 눈에 이미 불심이 깃들여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가 나아가는 出世間이 세속과의 결별이 아니라 더 넓은 세간과 더 큰 자유를 향한 행보라고 믿으며, 우리 시대의 작가, 그리고 나 자신, 왜 詩가 부처(寺)를 모신 언어(言)인지 다시 한번 음미해볼 일이다.

정은경 원광대·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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