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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서 추락하고 ‘盜撮’ 등 작전요원 방불케 … “기록과 우정을 위하여”
절벽에서 추락하고 ‘盜撮’ 등 작전요원 방불케 … “기록과 우정을 위하여”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03.22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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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교수들’의 사진예찬

사진으로 영혼을 담을 수 없지만 시간은 잡아둘 수 있다. 순간을 포착한 한 장의 사진은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역사로 남는다. 심지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육체의 아름다움조차, 찰나로 분절된 한 컷의 사진 속에서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변화의 틈바구니에서 영원을 약속하는 사진, 그리고 그것을 찍어내는 카메라. 죽어있는 지식을 되살리는 데 익숙한 교수들이 사진에 매료되는 것은 필경 자연스럽다.

연구결과에 애닳아(!) 쓸려가는 시간의 의미를 붙잡으려는 노력은 교수들이 찍어내는 사진 속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자기를 찾아가는 욕망과 열정이 새싹처럼 움트는 봄날이면 ‘카메라를 든 교수들’은 분주해진다. 연구실을 벗어나 ‘일상탈출’을 감행하는 교수들, 그들의 카메라는 어디에서 무엇을 비추고 있을까. ‘카메라를 든 교수들’의 수상한(!) 행적을 뒤따라 가 보자.

 

 


‘재개발’, 이광수 교수

개인의 사진세계가 타인의 취향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사진애호가로 소문난 교수들이 내놓는 ‘출사의 변’도 다채롭다. 사진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 교수들은 풍경이나 생태사진을, 역사의 기록과 세월의 흔적을 사진에 아로새기려는 교수들은 인물사진을 선호한다. 연구와 강의에 활용할 교수들은 현장사진에 애착을 보인다. 반면 대학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교수도 있다. 이들 카메라의 앵글은 대학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창공을 노니는 ‘새들처럼'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지난 2004년, 연구차 브라질 아마존 밀림을 방문한 조 교수는 폐 속 깊이 스며드는 상쾌한 공기와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보고 문화충격에 휩싸였다. 바로 그때, 아마존 강을 활강하는 독수리 한 마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조 교수는 재빨리 ‘똑딱이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찰칵! 그러나 조 교수의 카메라에 찍힌 건 푸른 하늘에 바퀴벌레 한 마리. ‘좋은 카메라가 있었다면…’

조 교수는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자유롭게 노니는 새에 흠뻑 빠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조 교수는 틈만 나면 ‘독수리’를 검색했다. “독수리를 보려고 인터넷에서 사진을 뒤졌어요. 독수리를 보다보니 하늘이 좋아지는 겁니다. 하늘을 배경으로 독수리를 찍고 싶었죠.” 꿩 대신 닭이라고 했나. 조 교수에겐 독수리 대신 갈매기다. 섬여행을 즐겨하던 조 교수는 여행길에 시집 두어 권을 사서 읽곤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손에는 카메라가 들렸다.

재미가 붙으니, 원을 그리며 선회하는 갈매기의 규칙성도 금세 이해했다. 조 교수는 일명 ‘길목촬영’이 손에 익자 욕심이 생겼다. 직선으로 날아오는 갈매기의 정면을 찍고 싶어진 것. 욕심 탓에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재작년 겨울, 남해 욕지도를 일주하다가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 2~3미터 남짓 됐을까. 나무덤불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아 뛰어내렸다. 아뿔싸! 잡목수풀이었다. 그대로 10여미터 낭떠러지를 추락했다. 사력을 다해 나뭇가지를 잡고 매달렸다. 다행히 큰 부상없이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조 교수에게 아픔은 잠시일 뿐, 저녁 노을을 찍으러 발길을 재촉했다. “연구하고 사회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새 촬영을 통한 재충전 덕분이니 종종 일어나는 위험한 일들은 비용을 치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촬영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

이처럼 우연히 찾아온 사진은 조 교수의 세계관까지 뒤흔들어놨다. “섬 여행을 하면서 시집을 읽어봐도 연구주제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죠. 늘 악몽에 시달렸어요. 그런데 갈매기를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꿈에 바다와 새가 나타나더군요.” 조 교수는 출사를 나갈 때면 전생의 인연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렌다고 한다. “새가 날아가는 방향을 뷰파인더 안의 프레임으로만 읽어내야 하니 매순간 몰두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원하는 장면을 포착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형언할 수 없어요.”

2~3일 간 새 사진을 찍는 사람치고 조 교수의 출사 준비는 의외로 단촐하다. 사진 가방 하나가 전부다. 이동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숙식은 인근 민박집에서 해결하지 텐트를 가져가거나 잠복해서 촬영하지 않는다. 출사는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이기 때문이란다. “새를 찍으러 갈 때는 강의나 연구, 사회운동 등 본업을 열심히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사진에 너무 심하게 빠져드는 것은 경계하니까요.”

권융 경성대 교수

몇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원샷-원킬’

권융 경성대 교수(국제무역통상학)= 러시아경제를 전공하는 권 교수는 연구와 강의의 심급을 확장하는 데 사진을 활용한다. 굳이 촬영이 필요 없는 미술작품 한 점도 본인의 손을 거쳐야 후련하다. 권 교수에게 사진은 취미 그 이상이다. 부산 고은문화재단 이사로, 다큐멘터리 사진의 부흥에 힘을 쏟는 사진운동가이기도 하다.

권 교수가 맡고 있는 강의 ‘러시아시장 연구’에서는 현지에서 손수 찍은 사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시장, 공원, 미술관 등 지역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이미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생생한 현장을 담는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스트레이트 사진만 찍다보니 주변에선 ‘수학여행 사진 전문가’로 통한다. 직접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러시아 지역연구’ 분야의 교과목을 개발해서 가르칠 만큼 사진 보유고가 방대하다.

카메라를 매고 현장을 다니다 보면 ‘감’이란 게 찾아오기 마련인데, 권 교수는 아무래도 외국이다 보니 봉변을 당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다. “초기에는 곤란한 상황이다 싶으면 ‘다음에 (이런 이미지를 찍을) 기회가 또 있겠지’하고 찍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은 반드시 두 번 다시 오지 않더라고요. 얻어맞더라도 찍을걸… 후회막급입니다.”

연구답사나 관광을 가면 사진에 온 정신이 팔려서 목적을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권 교수는 사전에 촬영계획을 치밀하게 짠다. 사진을 10년째 찍다보니 요령도 생겼다. 다음 일정을 포기하고 주변을 배회하다가 기회를 잡는다든지 냅다 찍고 도망치기도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촬영수칙은 ‘원샷-원킬’이다.

러시아의 역사와 사회를 설명하는 데 그림은 유용한 자료다. 모스크바에 소재한 국립갤러리 ‘트레사코프’는 19세기 러시아의 리얼리즘 회화를 비롯, 국보급 전시 자료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트레사코프는 원칙적으로 촬영 금지다. 이런 탓에 그림 자체보다 갤러리의 생생한 현장을 함께 보여주려는 권 교수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갤러리에는 전시장마다 할머니들(관리원)이 사진촬영을 막기 위해 지키고 있다. 하릴없이 권 교수는 몇 시간을 서성이며 기회를 엿본다. 할머니가 자리를 비운 때를 틈타 재빨리 촬영한다. 큰 카메라는 어깨에 둘러매고만 있다. 엄호용이다. 실제 작전수행은 손바닥만한 ‘콤팩트 카메라’가 맡는다. “페테르부르크의 국립러시아갤러리에서는 퍼밋만 사면 그림을 얼마든 찍을 수 있지만,  트레차코프 갤러리에서는 (똑같은 그림을) 찍지 못하게 하죠. 어쩔 수 없이 '도촬'을 하게 됩니다.” 급히 찍다보니 쓸만한 사진은 대체로 10장 가운데 1장 있을까 말까다. “1초만 느긋하게 눌러도 살릴 수 있는 사진이 많아요. 조금만 더 대담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가슴을 치죠.”

권 교수는 트레사코프 갤러리 등지에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문화기행 서적 『모스크바에서 쓴 러시아, 러시아인』(효민, 2008)을 냈다. “얼마 전에 러시아 총영사를 만났는데 괜히 신경이 쓰여서 책을 선물하지 못했다”는 후일담도 전했다. 오는 4월에는 러시아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출간할 계획이다.

김한성 연세대 교수
연간 1천장 손수 분류 ‘필카 마니아’

김한성 연세대 교수(법학)= “당신, 나한테 찍혔어!” 김 교수의 연구실 한켠에 놓인 라면상자에는 오늘도 사진이 쌓인다. 아니 추억이 차곡차곡 들어앉는다. 김 교수는 동료교수, 제자, 이웃 등 사람을 주로 찍는다. 각종 회의나 학교행사부터 술자리 모임까지 일상의 단면들을 모조리 사진으로 기록해둔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진 마니아와 조금 다르다. 라면상자에 쌓여가는 사진은 연말이면 1천여장에 달하는데 모두 제 주인이 있다. 김 교수는 일일이 ‘사진 연하장’을 만들어 우편으로 보낸다. 꼬박 보름이 걸린다. 연락처가 없으면 언젠가 만나게 될 때 전해준다. “사진은 상대방과 나와의 情이에요. 상대가 보고 즐거워하면 다행이고 버리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한번 보고 함께 웃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어요.”

김 교수에게 사진은 우정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수십년 강의해도 강의사진 한 장 없으면서 무슨 역사(학문)의 기록을 하겠다고… 교수들은 대부분 사진 찍히는 것 싫어하지만 일단 (사진으로) 남겨두면 유용하게 쓸 수 있어요.” 사진세계의 주제를 물으니 김 교수는 거침이 없다. “실용 100%”

실용을 추구하지만 신속하거나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필름 카메라를 고수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진은 기록과 우정을 위한 것이니 신속하게 보내줄 필요가 없다는 지론이다. 흑백-컬러필름의 비율도 반반이다. 흑백사진은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추남추녀도 미남미녀로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단다. 인물을 찍을 때 김 교수는 몸동작이나 표정을 주시한다.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신속·정확’이 생명이다.

학생들과 마주할 땐 조금은 울적한 대학의 현실도 느껴진다. 김 교수는 학생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부담스럽다. “세태가 많이 달라졌어요. 특히 강의평가가 도입된 이후부터는 인기를 얻으려 한다는 의도로, 일면 ‘비열하게’ 비춰지기도 하죠.” 김 교수는 그러나 스승의 날에 꽃을 선물 받거나 군 입대를 앞두고 인사 오는 제자들은 사진 한 장으로 고마움을 표현한다. 군 입대하는 제자는 편지와 함께 사진을 훈련소로 보내주는데 전역한 후에 건네 준 적도 있다.

흔히 사진을 ‘기다림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교수들은 저마다의 현장에서 몰입하고 적잖은 시간을 기다렸다. 한 치도 안 되는 카메라의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려고 아둥바둥대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이 재현시키는 것은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은 현상이다. 그래서 사진은 ‘존재의 기록’이다. ‘카메라를 든 교수들’은 저마다, 존재의 기록(혹은 기억)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때, 사진은 가장 손쉬운 예술적 도구이자 ‘환상의 파트너’가 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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