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1:10 (목)
[나만의 영화활용 비법] 콘셉트를 녹여 콘텐츠로
[나만의 영화활용 비법] 콘셉트를 녹여 콘텐츠로
  • 조용현 인제대 ·철학
  • 승인 2010.03.15 1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용현 인제대 ·철학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職으로 하는 선생으로서 가르침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철학적 개념과 같이 일단은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문제를 이해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1980년대 말 「토탈 리콜」(폴 버호벤, 1989)이라는 영화를 비디오 가게에서 우연히 빌려 보게 되었는데 상당히 인상 깊게 보았고 데카르트와 버클리의 철학을 설명할 때 이 영화를 보여주면 학생들의 이해에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 이제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비디오 숍을 뒤지다가 「스타 트렉」극장 판 시리즈 가운데 기막힌 작품을 하나 찾아내었다. 그 첫째 편에 해당하는 「모션 픽쳐」(로버트 와이즈, 1979)가 그것이다. 이 두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이것을 철학교육 속에 어떻게 도입할까 하는 궁리가 이어졌다. 그 뒤 상당히 의도적 목적을 갖고 영화들을 훑기 시작했다. 어쩌면  SF 영화만으로 근사한 철학개론 한 권 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2007년 인식론, 존재론, 형이상학에서 윤리학까지를 망라하는 SF버전의 철학개론서,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우물이있는집, 2007)를 엮어 책으로 선보였다.

필자는 철학의 중요한 문제로 드러내는 데 SF만큼 적합한 장르도 없다고 생각한다. 철학의 고전에서나 다루어질만한 추상적인 문제가 SF영화 속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로 예사로 다루어진다. 이것은 SF작가들이 의식적으로 철학의 문제를 상황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SF수준과 규모에서 상황 자체가 철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매트릭스」는 데카르트의 데몬의 대규모 사고실험처럼 보이고 「모션 픽쳐」는 헤겔 정신 여정의 우주론적 버전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영화 자체를 철학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철학은 영화 보다 훨씬 더 다층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식이 철학에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고 또 스스로 답을 찾아 고전을 읽으려는 자발적 동기부여에는 상당히 도움이 된 것 같다.

필자는 인식론, 존재론, 형이상학, 인간학 그리고 윤리학에 까지 걸치는 전 문제에 대한 적절한 영상자료들-영화와 다큐멘터리-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우리 학부 실습실 겸 자료실에 비치해 두었다. 우리 인문학부 1학년 전공기초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각자에게 할당된 철학적 콘셉트들을 정리하고 이것과 연관된 영상자료들을 찾는 것이다. 다음 약간의 영상편집 기술을 사용해서 이것들을 편집해서 발표하게 한다. 편집기술이 좋아질수록 학생들은 그것을 세련된 형식으로 구현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적 콘셉트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영상작업을 위해 책읽기의 필요를 스스로 느끼고 보다 깊은 책읽기는 다시 보다 콘텐츠가 있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된다. 아직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이런 교육방식을 통해서 콘셉트와 콘텐츠가 선순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즈음 콘텐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필자는 철학이야말로 콘텐츠의 무궁무진한 보고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것이 콘셉트라는 원석의 형태로 있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철학을 콘텐츠화 함으로써 철학적 콘셉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필자가 나름대로 추구해 온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런 교육은 철학 속에 있는 무궁무진한 콘셉트의 광맥을 캐어서 콘텐츠로 녹여낼 수 있는 유능한 콘텐츠 제작자의 양성에 일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기회는 누구보다도 철학 전공자에게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인문학부 내에 철학과 더불어 인문콘텐츠 전공이 설치되어 있다. 아직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이 복합 전공과정이 이런 자질들을 양성해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조용현 인제대 ·철학

부산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작은 가이아』(2002),『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2006)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