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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雨後竹筍의 보석들’이 빛을 뿜었다
그 시절 ‘雨後竹筍의 보석들’이 빛을 뿜었다
  • 오영식 보성고 교사
  • 승인 2010.03.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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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오영식 지음, 『해방기 간행도서 총목록 1945-1950』(소명, 2010)

그 자신 엄청난 장서수집가이기도 한 오영식 교사의 오랜 발품이 빛을 보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됐다. 동시에 언론과 출판에 자유의 물꼬가 트이고 그야말로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나게 많은 출판사들이 생겨났다. 그 현상을 모두들 ‘雨後竹筍’이라는 말로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 더 이상 적합한 단어가 없을 정도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당대의 평가가 어떻든 간에 필자는 이 대목을 하나의 중요한 역설로 읽고 싶었다. 마구잡이로 어중이떠중이까지 모두 출판에 뛰어든 모양새가 눈에 선하다. 당대의 경우를 추산해보면 책 한 권 내지도 못하고 문을 닫은 출판사도 적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 그동안 묵히고 삭혔던 말들을 출판 언론 매체를 통해 희망의 설계도를 보여주려고 했던 그들의 의욕과 지향이 결과적으로 저렇듯 풍부하고 다양한 해방기 출판문화를 탄생시켰음엔 분명하다.

선행자료와 순수 소장자의 도움 컸다
이 책은 1945년 해방 이후 1950년의 한국전쟁 이전까지(이하 ‘해방기’라 칭함) 5년간의 출판물을 정리한 목록집이다. 오랫동안 필자에게 이 목록집을 작성하라는 명령과도 같은 무언의 동기를 만들어 주었고 도움이 된 선행 자료들에는 『출판대감』(1945년 9월부터 1948년 말까지 간행된 1천720종의 도서 목록이 정리돼 있음), 『韓國書目 1945-1962』(국립중앙도서관이 1960년부터 4년여에 걸쳐 국립중앙도서관 장서 및 각급 도서관 자료를 1차 조사하고 그 외에 각 저자와 출판사에 조사의뢰서를 보내 추가 조사해 만든 목록집. 모두 1만7천347종의 도서가 실려 있음) 등과 해방 기념 자료들이 있다. 해방 기념 자료들로는 「건국 전후 1945-1954 출판도서전」(종로도서관, 1985.11.28), <책방소식>(1985년 7·8월호, 통32호), 「해방공간의 도서들 1945-1950」(국립청주박물관·청주문화원, 해방기 간행도서들의 특별 전시회, 2005.8) 등을 검토했다. 기타 목록자료들이 있는데, 『雅丹文庫 藏書目錄』(雅丹문화기획실 편·발행, 1995.3.2), 「韓國近代詩集叢林書誌整理」(河東鎬 작성, <한국학보> 28호, 일지사, 1982.9.15), 『乙酉 50年史』(을유문화사 편·발행, 1997.8.15), 『韓國敎育目錄』(중앙대학교 교육학과 편·발행, 1960.11.11) 등이다.

이들 목록집에 실려 있는 자료들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은 상업성이 배제된 순수 개인 소장자들이 갖고 있는 자료들이다. 이 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全甲柱(교육자료), 金賢植(풍속자료), 朴成模(문학자료) 세 분은 모두 근대서지학회 회원으로 각각 관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수집가들이다. 덧붙여 이 책을 엮는 데 가장 큰 보탬이 된 것은 인터넷임을 밝혀야 겠다. 대략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인터넷 고서점 및 경매 사이트는 이제 고서의 유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절대적인 통로가 됐다. 다만 각각의 시스템에 따라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거나 부정확하게 왜곡되는 등 재차 확인을 거쳐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실물들의 존재를 모니터상의 사진 실체로 확인할 수 있고, 세심한 부분에서는 판권지까지 명확히 볼 수도 있어 목록 작성에 절대적인 힘이 됐다.

해방기 출판물에 대한 연도별 통계는 신뢰할 만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미군정 하에서는 문화사업과 관련해 국가 단위의 통계 자료가 작성되지 않았으며, 민간에서도 1947년 봄이 돼서야 조선출판문화협회가 결성돼 출협 자료 또한 설립 이전의 출판물에 대해서는 자료를 갖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정리한 해방기 출판물의 연도별 통계, 기존 자료들과 비교는 <표>와 같다.

해방기 출판의 특징은 무엇일까. 해방기에 존재했던 출판사들의 연도별 통계를 살펴보면 1945년 45개소에 불과했던 것이 1946년에는 150개소(1947년 3월 조선출협창립 당시 조사자료)로 늘어났다. 1947년에는 581개소로 비약적으로 증가한 후, 1948년에는 792개소에 이르렀으며, 1949년 3월 현재 공보처 출판과에 등록된 출판사가 847개소나 됐다고 한다. 김창집의 「출판계의 4년」(『출판대감』 4쪽)에 실려 있는 이 통계는 이후 거의 모든 자료에 통용되고 있으나, 필자가 살펴본 1945년의 통계 경우를 보더라도 지방자료가 제외된 점 등의 이유로 다시 산출해볼 여지가 있다.

‘우후죽순’의 해방기 출판사들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이 발견된다. 출판사를 두세 곳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 출판사가 두 개의 등록번호를 갖고 있기도 했다. 출판사를 직접 운영한 문인, 학자들로는 김동환(삼천리사), 모윤숙(동백사, 문예사), 조벽암(건설출판사), 김광주(애미사), 김팔봉(애지사), 이태준·현덕(조선문학가동맹), 주요섭(상호출판사), 유치진(행문사), 김용준(신건사), 송석하(조선민속학회, 진단학회), 이극로(한글사, 조선에스페란토사), 최남선(동명사) 등을 볼 수 있다.

복간, 번역서, 문고본 불티 난 이유
유형별로 살펴본 해방기 출판의 특징은 옛 책의 재출판(복간), 번역서, 문고본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출판 현상의 난맥상을 일컬어 흔히 ‘三難’이라고 한다. 검열난, 원고난, 用紙난을 말한다. 해방 이후의 三難은 무엇일까. 원고난과 용지난은 여전하거나 더 심해졌으며 한 가지가 더 늘어난 게 ‘인쇄난’이었다. 갑작스런 해방으로 인해 용지의 생산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현실에 반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재고가 금방 소진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말 조선어 탄압으로 인해 한글 출판물을 거의 내지 못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한글 활자들이 사라진 뒤인지라 해방 이후의 엄청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원고난, 곧 筆者의 부족이었다. 따라서 많은 출판사들이 우선 일제강점기 때 출판됐던 책들을 그대로 복간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번역서들이 많았다는 점도 옛 책의 복간과 근본 원인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절대 부족으로 새로운 저술은 쉽지 않았고, 일제에 의해 가로막혔던 서구지식과 문물에 눈뜨게 되자 현실적 필요와 새로운 지식을 알리기 위한 번역이 시급했을 것이다. 예컨대 마르크스, 엥겔스의 유물사관이나 서구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홍보하고 계도하기 위해 국민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자료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번역돼 나온 사회주의 서적들을 1980년대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이 다시 읽기도 했다.

번역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 古典籍의 번역이며 다른 하는 서양 서적의 번역이다. 洋書 번역에 있어 대표적 양상은 사회주의 또는 민주주의 이론과 관련한 것이 가장 많다. 목록을 살펴보면 실제 출판물에 있어서는 마르크스나 엥겔스보다는 레닌이나 스탈린, 그리고 모택동의 저서가 많은 게 특징이다. 이 범주에 속하는 책들은 주로 좌익서적출판협의회(약칭 좌협) 회원 출판사에서 나왔다. 좌협에 속하지 않으면서 양서 번역, 출판에 앞장섰던 대성출판사가 눈에 띈다. 대성출판사의 출판물은 모두 36종인데 그 가운데 19종이 번역서다. 물론 이들도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등의 책을 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나 루소, 밀 등의 책도 있으며 특히 연암 박지원의『渡江錄』이라든지 달레의 『朝鮮敎會史』 등을 낸 것으로 보아, 그야말로 폭넓은 번역에 힘썼다고 할 수 있다.

용지난과 관련된 해방기 출판의 특징으로 문고본의 유행을 들 수 있다. 이번 목록 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문고본은 31개 출판사에서 나온 34종인데, 이외에도 더 많은 문고본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다만 당시 문고본이란 휴대하기 편하며 값이 싼 책을 보급하기 위해 만들었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볼륨 있는 단행본으로 묶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들이 용지 부족이라는 현실을 만나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문고본의 내용도 다분히 시대상을 반영하는데, 사회주의 사상 관련이 가장 많고 번역서, 아동도서와 고전의 주석본도 적지 않다.

해방기 베스트셀러로는 김구의 『백범일지』가 거론되지만,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1년 반만에 7판을 거듭한 것은 아니다. 초판이 1947년 12월 15일에 나왔고 三版이 1949년 11월에 나와 결국 2년 사이에 3판이 나온 셈인데 ‘7版  운운’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판권지를 통해 정확한 판차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지만 대중 통속소설류가 많이 읽혀진 것은 분명하다. 박계주의 『순애보』는 일제 때부터 시작해 1949년에 49판이 나왔고, 김말봉의 『찔레꽃』은 1948년에 7판을 찍었다. 김래성의 탐정소설 『摩人-범죄편』은 1949년 20판을 냈는데 그의 탐정모험소설은 대부분 인기가 높았다. 근대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문장가로 평가받는 상허 이태준의 저작들도 해방기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백양당에서 장식을 달리하며 3版까지 나온 『尙虛文學讀本』과 박문서관의 『문장강화』, 『서간문강화』등이 이에 속한다. 당시 상허의 일부 저작들은 판권 자체가 없이 출판된 경우가 많아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통계 자체가 잡히지 않는다. 연차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하면서도 엄청난 베스트셀러는 교과서였다. 수십만 부를 찍은 『한글 첫걸음』부터 대학교재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교재는 물량면에서 타의 추종을 허락지 않는다.

기록문화의 후진성 극복과 남은 과제
목록을 정리하면서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해방기 출판문화의 寶典이라 할 수 있는 『출판대감』이 보완판으로 다시 출판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만의 기록이지만 말할 수 없이 복잡했던 당시의 출판계를 가장 정확하게 정리한 자료이기 때문에 이 책은 독보적인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1949년판은 이제 눈요기조차 하기 어려운 희귀본이 됐고, 1985년 보성사 복각판 역시 300부 한정판이라 쉽게 볼 수 없다. 체제면에서 이용하기에 불편한 점도 적지 않으니 편집을 새롭게 해 다시 출판하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둘째, 이 책에 대한 변명이 되겠지만 목록 작업 자체의 한계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소장본만을 대상으로 할 수 없어 기존의 목록 자료들과 수집가들을 직접 방문 확인하고 또 인터넷의 도움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출처가 제 각각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특히 인터넷과 공식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는 경매장이 어림잡아 100여 곳을 훌쩍 넘는 작금의 현실을 고려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어디에선가 목록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리라. 놀랍지만 사실이다. 가능하다면 훗날 증보판을 내고 싶다.

셋째, 이 책은 처음 계획할 때부터 해방기 출판사 자료의 정리라는 제한된 범위를 염두에 두고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 출판사들에 대한 자료를 찾는 일은 서지목록 자체를 찾는 것보다 수백 배 힘든 일이었다. 욕심 같아서는 시간의 구애없이 1천여 개에 이르는 모든 출판사들에 대해서 가능한 언급하고 싶었으나 역부족이 아니라 불가능했다. 훗날 누군가는 분명히 정리해야 할 숙제다.

오영식 보성고 교사

필자는 중앙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보성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있다. 전 <불암통신>(1990~2005) 발행인이며, 반년간 <근대서지> 편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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