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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史哲 통섭한 거목의 인문학적 精髓
文史哲 통섭한 거목의 인문학적 精髓
  • 교수신문
  • 승인 2010.03.1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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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우성 지음, 『이우성 저작집(전 8권)』(송재소·임형택·김시업 엮음, 창비, 2010)

문사철을 아우르는 한국학의 거목 벽사 이우성 전 성균관대 교수.

전통과 현대, 文史哲을 통섭한 한국학의 거목 벽사 이우성 전 성균관대 교수(퇴계학연구원장·85, 사진)의 저작집이 간행된 것은 지난 1월이었다. 이 저작집이 화제가 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정년 퇴임 후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實是學舍’에서 젊은 제자들에게 강학을 하며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퇴임 이후 20여년을 한 길 걸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더불어, 인문학문의 정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거듭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또 다른 이유는 송재소·임형택·김시업 등 그 자체로 한국 한문학계의 한 맥락을 형성하는 학자들이 後學으로 간행위원진에 참여했으며, 벽사의 많은 젊은 제자들 또한 편집 작업에 합류해 그간 산발적으로 간행됐던 벽사의 저작을 한 질의 저작집으로 묶어낸 데 있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간행사’에서 “무엇보다 이 저작집은 한국학술사의 한 시대를 劃 하는 기념비적인 성과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학의 앞뒤 세대가 빚어내는 和音인 셈이다.

벽사 이우성은 전통적인 한학 교육을 바탕으로 진보적 신학문을 적극 섭취해 주체적인 한국학 연구의 새로운 지경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6세부터 성장기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한문을 수학했고, 20세 무렵부터는 신학문을 공부하면서 광범위한 서양지식을 독학으로 답파했다. 한문학과 역사학 등 근대적 지식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지적 배경이 작용한다.

또 하나 벽사 이우성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역사적 실천이라는 덕목이다. 그는 1960년대 학원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가 동아대 교수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1980년대에는 군부독재에 저항하다가 구속 수감되고 성균관대 교수직을 4년간 박탈당했다. 이러한 실천 행위야 말로 그가 지식의 체계를 한낱 이론의 세계로 체득한 게 아니라, 삶의 전체로 받아들였음을 반증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벽사의 학문을 가리켜 문사철의 온전한 전유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우성 저작집』이 흥미로운 것은 그가 근대의 분절화된 지식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소통을 추구하는 점과 古今을 가로지르는 글쓰기 방식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지적 형성기의 특수성이 작용하긴 하지만, 근대적 방식과 전통적 방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형태가 엿보이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예컨대 『벽사관문존』(전집 5,6권)은 순한문으로 서술된 저작(시, 산문)인데, 저자 자신의 창작의 출발점이자 종점으로 평가된다. 서술은 한문으로 했지만, 근대적 내용을 담고 있다.

벽사의 학문이 한문학과 역사학, 실학 등에 두루 닿고 있지만, 그의 학문적 무게중심은 ‘역사학’에 있다. 발해·신라를 아우른 ‘남북국시대’란 새로운 역사적 발상이나, 조선후기 실학파를 근대적 사상운동으로 이어지는 계통으로 설명해낸 것, 자본주의 맹아론을 정착시켜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넘어설 계기를 마련한 것 등은 벽사의 역사연구가 토대가 된 것이다. 『한국의 역사상』(전집 1권), 『한국중세사회연구』(전집2권)가 그런 무게중심을 담고 있다.『한국고전의 발견』(전집 3권)에서는 古典籍에 대한 해박한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신라사산비명 교역』(전집 7권)에서는 실증적 학문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최치원의 四山碑銘의 원문을 교감하고 이에 대한 諸家의 주석들을 검토, 刪整하고 새로운 주를 보탠 다음, 우리말 번역문을 붙였으니, 그 정치한 고증학적 작업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다.

흔히 ‘이우성 사학’은 내재적 발전을 중시하는 민족사관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나’와 역사의 주체를 일치시키려는 확고한 자아의 각성에서 시작된 실천적 고뇌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우성 저작집』 전체가 환기하는 것은 바로 그런 학문적·실천적 고뇌가 하나의 학문체계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거듭남’이다. 『고양만록』(전집8권)에 수록된 한국사학자 이이화의 평가대로 벽사 그는 “권세에 초연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현대 선비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딸깍발이 선비의 오롯함이 한국 인문학의 깊이를 만들었으리라.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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