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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학술에세이 당선작이 선정되기 까지
제1회 학술에세이 당선작이 선정되기 까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2.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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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사유 아쉬워…우리 글쓰기 점검 계기
□ 심사는 두달에 걸쳐 심도깊게 진행됐다. 최종심 자리에 모인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이필렬, 고철환, 진교훈, 정대환 교수와 이영수 발행인, 박영근주간.

편집국 표정 : 지난해 1월 신년호에서 학술에세이 공모전을 처음으로 알렸을 때, 손바닥에 땀이 뱄다. 주제는 ‘생명’. 과연 어떤 작품들이 들어올까, 기대반 의심반의 심정이었다.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기획인 탓도 있었지만, 과연 응모자들이 ‘학술’과 ‘에세이’의 이 아슬아슬한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생명’이라는 포괄적 주제를 어떻게 손아귀에 올려놓을 지 도대체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1년 12월 31일 오후 4시. 편집국은 초조해졌다. 마감 시간을 2시간 앞두고 또다시 긴장감이 흘렀다. 응모편수가 기대보다 훨씬 적었다. 인터넷으로 접수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그래도 여유는 있다고 자위했지만, ‘국내 최초의 학제적 글쓰기’ 기획에 쏠린 관심의 총량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들이 교차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 학계의 현실이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응모편수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고민을 담아내느냐가 문제라는 생각들.

마감 시간. 모두 60편이 접수됐다. 성직자, 가정주부, 대학생, 프랑스 유학생, 내로라하는 저명 학자들 그리고 강사들과 연구원, 대학원생의 글들이었다. 심사위원회가 구성되기 시작했다. 본심과 최종심은 외부 전문가를 동원하기로 하고, 각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을 접촉했다. 본심 심사위원에는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과학사),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문화과학 발행인),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치과),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학), 이상훈 대진대 교수(철학)가 섭외됐다. 다들 전문적인 영역에서 文名을 날리는 ‘에세이스트’라고 해도 손색없다. 다음은 최종심 심사위원. 조금 넓게 보기로 했다. 진교훈 서울대 교수(철학·한국생명윤리학회장), 고철환 서울대 교수(해양학·새만금생명학회장), 김종철 영남대 교수(영문학·녹색평론 발행인), 정대현 이화여대 교수(철학) 그리고 박영근 주간(중앙대·불문학)이 맡기로 했다.

심사진행 : 60편을 두고 1월 한달 내내 편집국의 ‘접근금지’ 구역에서 ‘예심’이 진행됐다. 예심은 학술 논문, 신변잡기, 주제에서 멀리 벗어난 글 등을 골라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30편의 글이 남았다. ‘논문’의 형식을 빌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최종심 후보에 오를 작품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과감히 밀쳐냈다.

이제부터는 기준이 중요했다. 2월 7일 첫 모임을 열었다. 학술에세이 개념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평가척도 마련에 심사위원 모두가 고심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어서 의견 일치가 더욱 어려웠다. 결국 독창성, 논구성, 영향력, 학제성, 완성도 등을 척도로 각 항목 당 20점을 매겨서 평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심사위원 모두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

2월 한달 내내 본심 심사위원 다섯 분이 예심을 거친 30편을 읽어내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본심심사회의는 교수신문 회의실에서 4시간 동안 열띤 논쟁 속에서 진행됐다. 겨우 10편을 다시 가까스로 간추렸다. 이들 작품은 곧 단행본(민음사 刊)으로 묶여 출판된다. 10편의 작품이 최종심 심사위원에게 넘겨진 것은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봄의 문턱은 멀었지만, 신문사 창밖으로 꽃바람 같은 것이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최종심 심사위원들에게 이제 모두 공이 넘어갔다. 여유있는 듯했지만, 표정은 모두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토록 혐오하는 ‘순위’를 매겨야할 차례가 됐기 때문이다. 보름동안 최종심 심사위원들의 고민과 갈등이 이어졌고, 3월 15일 드디어 최종 심사회의를 열었다. ‘대상’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다. “대상에 걸맞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는 가혹한 평가와 “학술에세이 공모전은 학인들의 축제자리이므로 대상을 밀어야 한다”는 축제론의 시각이 오래도록 논쟁했다. 결국 최우수작 한 편을 더 뽑는 것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심사위원들의 두 달에 걸친 지적 돋보기 레이스가 막 끝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여행 : 그러나 길이 끝나면 여행은 새롭게 시작된다. 학술에세이는 사유의 실험이다. 강신익 교수의 말처럼, 학계의 담벽을 뛰어 넘는 학술 연구와 글쓰기의 전통을 모색하는 시험지다. 삶과 앎을 잇는 투명한 지성의 철교로서 학술에세이가 학문후속세대 사이에 뿌리 내리기를 기대한다. 제2회 학술에세이가 기다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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