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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과연 죽었나 … “감흥마저 평가 대상된다면…”
비평은 과연 죽었나 … “감흥마저 평가 대상된다면…”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3.08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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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학연구원-동경대 철학연구센터 국제 워크숍 ‘비평과 정치’

연세대 국학연구원과 동경대 철학연구센터(UTCP)가 함께 마련한 국제 워크숍 ‘비평과 정치’가 지난 3일, 연세대 학술정보원에서 열렸다. ‘비평’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각 ‘전쟁’, ‘실천’, ‘위기’, ‘작품 행위’란 4개의 세션이 진행됐다. 인문학의 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비평이 회복해야 할 사회적 실천은 무엇인지 한· 일 양국의 학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백영서 연세대 국학연구원장(사학)은 “인문학이 서양의 근대학문 유입 후 하나의 분과학문화 됐지만 본래 인문학은 삶에 대해 총체적으로 사유하는 학문이다. 현 사회에 현재진행형으로 질문하고, 이를 해석하는 것이 인문학의 사회성을 실천하는 방법이자 비평의 역할이기에 대주제를 ‘비평’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은 인문학이 학문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지난해 9월 ‘21세기 실학’, 사회인문학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국제 워크숍도 그 같은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백 원장의 설명이다. 나카지마 다카히로 도쿄대 철학연구센터 부원장 역시 “그동안 비평이 정치적, 도덕적, 문학적인 것으로 미분됐었다는 점에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연 ‘포스트 비평’의 시대인가


이 시대 비평의 존재와 역할은 한국과 일본 학자들 모두 고심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오늘날 ‘비평의 종언’에 대해선 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소영현 연세대 국학연구원은 ‘근대 비평의 종언’을 통해 비평은 더 이상의 존재가치를 상실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에 다름없다고 단언했다. 소 연구원은 문학장과 출판시장의 판도를 전거로 들며, “허구를 통해 진실을 파악한다고 간주됐던 문학의 개념과, 그것이 수용되는 세계 사이를 매개하면서 가늠자의 역할을 했던 비평의 존재방식에 변화를 요청”했다. 출판시장이 불황에 시달리고 비평은 점점 제도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 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제5의 미디어’라 불리는 블로그는 ‘글’을 둘러싼 생산과 소비, 유통의 거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유희석 전남대 교수(영어교육과)는 “문학이 7,80년대의 특권적인 지위에서 물러난 것은 맞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과연 특권의식을 가지고 문학을 했었는지 함부로 단언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 시대의 기준으로만 당시를 재단하는 건 아닌지 냉정할 필요가 있다”며 입장을 달리했다. 근대문학의 종언과 비평의 종언은 엄연히 다르므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유 교수는 지식인이 끊임없이 사유하고 있는 한 그 결과로써 비평은 결코 근절될 수 없다며, “종언이 언급되는 지금 비평에 대한 당위적 믿음이 더욱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연구자 평가, 약인가 독인가

국가가 주도하는 대학의 평가와 지원 시스템은 이번 국제 워크숍에서 가장 주목 받은 논의였다. ‘대학에서의 평가와 비판’을 발표한 니시야마 유지 도쿄대 UTCP연구원은 인문학 연구는 “어떠한 ‘감흥’(affect)을 얻을 수 있을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나 “무슨 도움이 될까”보다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은 의미가 유용성을 이끌어 낸다기보다 오히려 사는 것의 현장감, 입체감을 제공한다. 인문학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은 의미나 유용성과 달리 평가될 수 없는 부분”이란 것이다. 그는 감흥마저 평가의 대상이 된다면 인문학을 넘어 학문 전체의 자유가 사멸할 것이라 경고한다. 이 때문에 대학의 연구 성과를 조건 짓는 현재의 평가제도에 비판이 필요하다.

일본의 대학 평가는 ‘PDCA사이클’이 기준이다. 계획하고(Plan), 계획에 기반 해 실행하고(Do), 그 성과를 점검하고(Check), 자기 점검을 통해 다시 행동을 일으키는(Action) 순환에 따라 평가가 이뤄진다. 그러나 이런 평가 방식은 계획과 실행 사이의 작용은 판단할 수 있어도 양자의 관계가 어떠한지는 포착하지 못한다.  한국의 ‘학진 시스템’ 역시 연구자들의 학문 세계를 평균화하고 획일화 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문제를 내재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는 논문의 구성조차 획일화된 관습이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서론-본론-결론으로 이어지는 구성과 국문초록-영문초록-국문 핵심어-영문 핵심어 등의 ‘액세서리’는 거추장스러운 ‘현실’이지만, 연구자로 하여금 글쓰기의 본연을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자가 무소불위의 ‘학진 시스템’을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천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외부’를 마련하려는 자발적인 공동 노력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성공 여부에 대해선 확신을 장담하지 않는다. “제도가 마련해준 장도 분명 인문학의 최전선, 즉 인간 대 화폐, 인간 대 신자유주의의 전장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신 즉자적이긴 하나 ‘제도’가 만든 현실을 희화화하고 무화할 다양한 상황에 대한 기대는 놓지 않았다.

나카지마 다카히로 도쿄대 UTCP 부원장은 이번 국제 워크숍이 “비평이 네이션의 경계를 넘어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번역’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대학과 국가 간의 경계를 넘나들기 위한 새로운 대안의 지속적 모색을 당부했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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