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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에세이] 당선자 소감
[학술에세이] 당선자 소감
  • 교수신문
  • 승인 200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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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박재현(서울대 강사·철학)

“부담스럽게 다가온 생명, 내 글은 여전히 蛇足아닌가”

□약력 : 1969년생, 경희대 졸, 서울대 대학원 석사,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서울대 철학과 강사(현).

제게 생명이란 살갑고 낯익은 것이라기보다는 부담스럽고 힘겨운 것으로 다가옵니다. 생명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늘 그것에 반하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학술에세이라는 낯선 형식, ‘생명’이라는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주제 앞에서 저는 당혹스러웠습니다. 글이 혹여 생명을 해치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웠습니다. 저의 글이 생명이라는 처녀지를 이리저리 구획하고 절단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말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蛇足性 발언이 많아 보입니다.

생명은 애초부터 글과는 무관한 것이기에, 생명을 말하는 모든 글은 이미 사족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봄꽃처럼 생명을 온몸으로 만개할 수 없기에, 그것에 대한 무어라고 중얼거리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 아닐까 싶습니다. 제게 이러한 중얼거림의 기회를 주신 교수신문사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두루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최우수상 이도흠(한양대 교수·국문학)

“좋은 재료 갖고도 낡은 틀에 사로잡혀…인연의 의미생각”

□약력 : 1958년생, 한양대 졸, 한양대 대학원 석·박사,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현).

깨달음은 늘 기적처럼 온다. 따르릉! 당선축하와 함께, “심사위원들이 각주를 단 것 지적하였으니 각주 빼고 수정한 원고를 수요일까지 보내주세요.”. 이어 상당한 혼동과 갈등. 그리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낡고 상투적인 틀에 담은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요리사였던가. 그럼에도 과분한 상이 주어진 것은 심사위원들께서 원효의 말씀을 차마 저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리라.

마르크스에 심취하였던 젊은 날의 끄트머리에서 스치듯 만난 원효. 인연의 끈이 깊었는지 여러 편의 글을 썼다. 글을 대할 때마다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빛과 조우하니 삶은 충만함이다. 송년회 술자리에서 한 지인이 권하는 바람에 시험삼아 낸 원고에 상이 주어졌으니 그도 인연이다. 이 인연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늘은 푸르다. 오늘 또 몇 생명이 죽어갔을까. 그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내 글을 읽고 과연 몇 사람이나 자신 속에 잠자고 있던 불성, 곧 온생명을 보듬으려는 마음을 드러낼까. 그리해서 살리는 나무가 이 글이 인쇄되어 죽이게 될 나무보다 많을까. 두려운 일이다.

우수상 김백균(서울대 특별연구원·미학)

“삶 속에서 탄생한 그림 통해 ‘생명’과 새롭게 대화할 터”

□약력 :1968년생, 서울대 동양화과 졸, 중국 북경대 철학과 석·박사, 서울대 인문학연구소 특별연구원(현).

당선 소식을 듣고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설익은 생각을 남에게 내보인다는 것, 이 얼마나 쑥스럽고 괴로운 일인지 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동양의 그림에 대한 사상들을 정리하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옛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옛 사람들은 ‘생명’이라는 문화적 시각으로 주어진 삶에 대한 이해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의지를 규정하고, 모든 문화를 윤색했다. 동양의 그림도 이러한 삶의 규정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나에게 그림과 삶의 근원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해 주신 정탁영 선생님과 이종상 선생님, 그림의 비평에 대해 눈뜨게 해주신 김병종 선생님, 동양사상의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그림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신 박낙규 선생님과 그 외 많은 선생님들의 은혜에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원고는 대학의 강의록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성실히 강의를 들어준 학생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마지막으로 미숙한 글을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장려상 강판권(계명대 강사·역사학)

“슬픔과 아름다움, 처음부터 한 몸임을 다시 깨달아”

□약력 : 1961년 생, 계명대 사학과 졸, 경북대 대학원 박사, 계명대·대구대 강사(현).

봄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내게 봄은 과거나 지금도 여전히 슬프고 가슴 시리다.

봄이 슬픈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버님은 희망 없는 농촌에서 능수 능란한 쟁기 솜씨로 메마른 땅을 갈아엎고 씨를 뿌려 4형제를 키웠지만, 나는 20년 동안 학문에 종사하면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그 많은 농사일은 물론 집안 살림까지 빈틈없이 챙겼으나, 나는 아직도 어머님의 솜씨를 닮지 못하는 불초이기 때문이다.

해님이 꽃을 잠시 쉬게 하기 위해 서쪽으로 떠난 뒤, 모든 식구들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부엌으로 힘없이 들어가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여전히 고향집 마음산의 돌배나무에 걸려 있다.

아직도 그 모습을 내가 거둘 수 없는 봄은 너무 슬프다. 그러나 슬픈 봄날, 교수신문에서 갈아엎지 않은 거친 나의 글을 뽑아 주니 봄이 갑자기 아름다움으로 변한다.

수수꽃다리가 낮잠을 즐기는 시간, 심사위원들로부터 슬픔과 아름다움이 처음부터 한 몸인 것을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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