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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체제 정치사회적 특성 ‘모순적 복합성’으로 설명 … 헤게모니론 적용 ‘약점’ 될 수도
박정희체제 정치사회적 특성 ‘모순적 복합성’으로 설명 … 헤게모니론 적용 ‘약점’ 될 수도
  • 교수신문
  • 승인 2010.03.0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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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 조희연 지음, 『동원된 근대화』(후마니타스, 2010)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정치인을 꼽으라는 조사를 한다면 아마도 박정희가 1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그는 근대화를 성공시킨 영도자라는 이미지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독재자라는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철권통치,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점점 확대됐던 국제수지의 적자 때문에 박정희가 이룩한 경제적 성취는 동시대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3저호황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근대화는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 됐고 경제성장에 미친 박정희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부정적 일변도인 평가로부터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영훈, 임지현 그리고 조희연
이영훈·이완범 등은 경제성장에 있어 그의 지도력이 큰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고, 김일영은 박정희의 독재조차도 개발초기국면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것으로 설명했으며, 임지현은 박정희의 지도력(헤게모니)은 대중의 동의에 기반한 것으로 해석했다. 박태균, 기미야 다다시, 김형아 등은 박정희시대의 정책 형성과정을 분석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서도 독자적인 의사결정 영역이 있었음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연구들은 박정희를 독재자 또는 민족중흥의 영도자처럼 한 측면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의 일면성을 비판하면서, 두 측면을 복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보고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의 이 책 역시 이러한 연구동향과 맥을 같이한다. 이 책은 이영훈의 새로운 역사해석(보수주의적 시각)이나 임지현의 대중독재론(포스트 구조주의적 시각)에 촉발됐다. 그는 이 주장들의 장점을 합리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진보주의적 시각에서 그에 대응한 박정희시대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가 파악한 박정희시대는 이 책의 제목처럼 ‘동원된 근대화’의 시대였다.

조 교수는 박정희시대의 체제적 성격을 개발동원체제로 정의했다. 개발동원체제란 근대화(개발)라는 목표를 향해 국가가 위로부터 사회를 강력하게 추동하고 동원하는 체제인데, 이 체제는 기본적으로 ‘중상주의적’ 국가형태였다. 그는 해방 이후의 시기를 5·16쿠데타까지는 반공규율사회의 형성기로 규정하고, 이 시기에 개발동원체제가 작동할 수 있는 ‘천혜의 정치사회적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5·16쿠데타 이후는 10월 유신, 박정희 암살, 6월 항쟁을 기점으로, 개발동원체제가 형성, 균열, 위기, 재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개발동원체제의 형성기에는 국가가 헤게모니적 자율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국가-계급관계가 변하면서 헤게모니의 균열이 나타나 국가는 ‘억압적 자율성’을 가진 존재가 됐다. 1980년대에 들어와 신중간층과 농민이 이반하면서 개발동원체제는 위기를 맞았으며,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투쟁 이후 ‘타협적 변형’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렇게 재편되고 있는 체제를 포스트 권위주의적 개발동원체제라고 불렀다.

개발동원체제는 민중의 자발적 동원이 가능한 독특한 체제였다. 동원을 가능케 한 것은 국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재생산된 반공주의와 근대화 프로젝트에 입각한 개발주의였다. 그러나 이 지배시스템이 민중의 능동적 동의를 구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보았다.

그는 박정희체제를 근대 독재 권력의 한 유형으로 보았으며, 그 체제의 동태적 변화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헤게모니의 균열’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헤게모니의 형성은 각 집단간 경제적 이해관계의 접합을 통해 지배적 집단의 요구가 보편화·집단화되는 것이므로 헤게모니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구성과정인 것으로 보았다. 보편화·집단화를 가능케 한 담론이나 경제적 이해관계의 변화는 헤게모니의 균열을 초래하며 이것이 개발동원체제의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이 책의 강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규범론에 입각한 도덕적 이원론을 극복하려 했다는 점을 들고 싶다. ‘독재=악, 민주화=선’이 아니며 ‘개발=선’도 아닌 것이다. 근대화는 정치사회적 헤게모니 유지에 필요한 대중 동원을 위한 이데올로기였으며, 그 자체가 선악판단의 절대 기준은 아니었다.

둘째, 박정희체제를 특수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근대 독재권력의 한 유형으로 일반화했다는 점이다. 근대 독재권력이란 경제적 근대화나 경제적 추월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동원체제인데, 역사적으로는 파시즘이나 사회주의 독재 등으로 나타났으며, 동아시아에서는 개발동원체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박정희체제의 권위주의적 성격의 일반화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규범론 입각한 도덕적 이원론 탈피
셋째, 이 책 최고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점은 박정희체제의 정치사회적 특성을 ‘모순적 복합성’으로 파악한 것이다. 지배를 강압과 동의의 복합물로 파악한다면, 개발동원체제는 반공주의와 개발주의에 의해 동원된 민중의 수동적 동의에 기초한 체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반공주의와 개발주의가 보편성을 상실하게 될 경우 헤게모니의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개념을 통해 그는 포스트 구조주의적 시각의 ‘동의’의 개념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지니는 억압적 성격을 복합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보수주의적 시각에 입각한 개발주의의 긍정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절대화하지 않고 헤게모니 유지의 물적 토대로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도 있다. 우선 박정희체제를 중상주의로 파악하는 점이다. 이는 다른 연구자들에게서도 종종 발견되는 현상인데 단순한 비유라면 모르겠으나 과학적인 개념 사용이라 보기는 어렵다. 선발자본주의국가의 역사적 특정 국면에 존재했던 중상주의를 20세기의 개발동원체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 과도한 일반화이다.

둘째, 헤게모니론은 이 책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일 수도 있다. 헤게모니를 관계의 구성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은 헤게모니 변화의 동태적 과정을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체제의 안정성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가변적이다. 경제변화의 과정 속에서도 축적체제의 장기적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경로의존’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노스(North)의 논의는 이러한 고민의 반영일 것인데, 축적체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기제가 헤게모니론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이 책이 박정희체제의 정치사회적 측면을 분석한 것이긴 하지만 경제적 측면으로서의 물적 토대에 대한 논의가 소략하다.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3요소에 경제적 이해관계의 접합이 포함되어 있지만, 민주화시대의 헤게모니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이 논의가 아예 빠져있다.

단순화된 반공주의 해석
넷째, 박정희의 반공주의를 민족주의에 대립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것도 과도한 단순화로 보인다. 왜냐하면 반공이 북한 민중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민족적인 북한 ‘괴뢰’ 집단을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적인 수사가 반공주의와 결합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몇몇 이견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체제에 대한 진보주의적인 비판적 이론화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입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헤게모니론에 입각하여 박정희 개발동원체제의 변화과정을 설명한 것도, 권력과 민중의 관계를 그 개념 속에서 동시에 파악한 점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이 다원적인 담론경쟁의 시대에 백가쟁명의 기폭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석곤 상지대·경제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민족경제론과 ‘국민형성’의 과제」등의 논문과, 『한국경제성장사』(공저), 『한국근대토지제도의 형성』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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