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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50여개 고교 진학교사에게 무료 배포 … ‘학과 살리기’ 나선 까닭은?
전국 350여개 고교 진학교사에게 무료 배포 … ‘학과 살리기’ 나선 까닭은?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03.02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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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소개 책자' 발간한 대한산업공학회

 

 

박양병 대한산업공학회 회장
대학교육의 위기의식이 학회까지 번지고 있다. 학과에서 전공 소개 브로셔 등을 제작해 신입생 모집에 나서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학회에서 ‘전공 소개 책자’를 발간한 일은 이례적이다.

 

대한산업공학회가 지난달 문고판 『공학의 마에스트로 산업공학』(도서출판 한승, 2010, 이하 『산업공학』)을 펴냈다. 인쇄와 동시에 전국 350여 개 고등학교 진학지도 교사들에게 무료로 배포할만큼 마케팅도 공세적이다.

『산업공학』은 생산설계, 로지스틱스(물류공급), 공급사슬, 인간공학 등 학부 전공과정에서 다루는 산업공학 이론을 총 7장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자장면과 휴대전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소재들을 산업공학과 연결 짓는다. 복잡한 이론 설명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재밌게 접근한다. ‘삽질하는 테일러’라는 제목을 달아 테일러리즘이 말하는 ‘삽의 과학’을 설명하는 식이다.

전공 소개 책자에는 으레 전공의 장점만을 보여주기 마련인데 『산업공학』은 산업공학자들이 당도한 한계까지 가감없이 드러낸다. ‘만능 학문’이라는 홍보에 빠져있지 않고 후학(독자)들이 풀어가야 할 지점을 콕콕 짚어내면서, 오히려 독자에게 유용한 ‘입시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인간공학을 자동차 발전사에서 풀어가다가 오토매틱드라이브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 문제를 ‘당신이 인간공학도가 되어서 해결해 보라’는 것이다.

대한산업공학회는 전공 소개 책자를 내면서 “고등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산업공학을 이해하고 흥미를 느껴 미래에 산업공학 전공자로서 국가 산업발전에 동참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교수들이 체감하는 대학교육의 위기는 이미 대학 간 경쟁을 넘어 학문 존폐에도 ‘턱 밑’까지 다다랐다는 반증일까.

『공학의 마에스트로 산업공학』
대학평가나 신입생 모집에서 취업률이 대학 경쟁력의 가늠자 구실을 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대기업 취업률 상위권을 순항(!)해 온 전공교수들이 힘을 모았다는 데 이번 책자 발간의 의미는 남다르다. 더구나 각종 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을 묶어 학술서를 발간해 온 학회 활동과 달리 전공 소개 책자를 냈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학부제와 더불어 입학생 감소세로 공학 계열 안에서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박양병 대한산업공학회 회장(경희대 산업경영공학과, 사진)은 “개별 학문이 처한 환경은 한층 더 다이내믹하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사양산업으로 치부됐던 원자력공학이나 섬유공학이 무공해 에너지, 신소재 섬유 개발 등의 바람을 타고 다시 각광받고 있다는 것. “학과(혹은 학문) 홍보에 학회가 팔짱끼고 있다면 어떤 학문도 장밋빛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최 회장의 말에는 학문 후속세대 양성의 고민이 대학원생 확보에 머물 게 아니라, 학부교육 차원까지 내려가야한다는 이른 바 ‘교육 물밑 경쟁’의 치열함이 묻어있다.

대한산업공학회는 재작년 12월 편찬위원회(위원장 허선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구성하고 편찬위원 7명이 1년 간 기획구성과 집필에 착수했다. 올해까지 총 5권 완간으로 ‘산업공학 문고집’이 목표다. 『산업공학』이 총론적 성격이 강했다면 2권부터는 학문 소개의 심급을 높여 세부분야별로 한 권 씩 책을 묶을 예정이다. 편집위원은 원로교수 위주로 짰다. 문고집 완간 기획을 위해 오는 6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연합학술대회에 산업공학과 학과장, 산업체 인사담당자 등 총 150여명을 초대했다. 산업체가 기대하는 교육방향과 ‘산업공학 교육 10년의 미래’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대한산업공학회는 『산업공학』 발간을 계기로 경제적 선순환 고리도 확보했다. 서울대, 부경대 등에서 전공진입생들에게 학과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구매의사를 타진해왔다. 인쇄수익은 2권부터 집필할 교수들의 원고료와 출판비로 쓰인다. 박 회장은 그러나 “책자 출간에는 만만찮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특히 인문·사회계열 학회에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회원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집행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교육, 이대로 안 된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캠퍼스에는 또다시 봄이 찾아왔지만 ‘대학교육 위기’의 찬바람에 교수들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어는점’에 묶여 있는 듯하다. 학회의 적극적인 ‘학문 홍보’는 대학교육에 또 어떤 바람을 몰고 올까.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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