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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우리 시대 출판사란 무엇인가
[문화비평] 우리 시대 출판사란 무엇인가
  •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 승인 2010.02.22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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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창사해 올해로 60주년이 되는 독일 유수의 주어캄프(Suhrkamp) 출판사가 지난 1월 1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이사를 했다. 출판사가 이사한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출판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서울에 있던 많은 출판사들이 파주출판단지로 대거 이사를 갔다고 해서 서울 사람들이 서운해하거나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독일 출판사의 베를린 이전이 독일 사회, 특히 문화계와 지성계, 출판계에서는 큰 이슈거리였다. 그들에게 구체적인 이전 배경이야 중요한 문화적 사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가십성 기사거리로 취급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 내용을 굳이 여기서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출판사의 이전에 문화계, 지성계, 출판계가 한목소리로 서운해하고 아쉬워했다는 점이다. 물론 주어캄프 출판사가 새 둥지를 틀게 된 베를린은 환영 일색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프랑크푸르트의 문화계와 지성계, 출판계를 그런 감정에 휩싸이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비록 하나의 출판사에 불과하지만 그 출판사가 만든 ‘문화’에 있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한다. 좁게는 ‘출판문화’의 범주로부터 크게는 지식인 사회와 함께 만들어낸 ‘정신문화’가 그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출판사들이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출판문화의 역사가 오래된 곳에서는 아마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화 선진국이 아닐까. ‘문화’조차도 돈으로 환산하는 우리의 세태를 꼬집어본다면, 사실 이해 불가능할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 출판계에도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출판활동이 시작된 이후, 독자들로부터 또는 지식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독창적인 출판문화를 이룩한 출판사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간서치들은 책을 볼 때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펴냈는가를 좋은 책의 첫 번째 판단근거로 들기도 했다. 더군다나 책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던 때가 있었으니, 어찌보면 지난 70~80년대는 출판이 그 정점에 이르렀던, 즉 ‘책의 문화’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IMF가 분수령이었다. 이를 정점으로 우리 출판은 급속하게 상업 출판의 세계로 재편됐다. 국내 굴지의 도매상들의 연쇄부도 사태 속에서 우선 너나할 것 없이 생존이 최우선이었지만, 어느 정도 다시금 출판이 안정을 찾았을 때 출판인들의 머릿속에는 ‘경제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가 된 것이다. 출판사들이 얻은 것은 경제논리에 따른 ‘성장의 경제학’이었지만 잃은 것은 보이지 않는 ‘책의 문화’였다. 출판사들끼리의 과당경쟁에 따른 지나친 저작권 계약 경쟁은 그 일면일 뿐이다. 간서치들은 좋은 책을 골라내기가 영 곤란할 정도로 양서를 찾기가 힘들어졌고, 작가와 지식인들은 예전처럼 출판사와의 지적 결속이 견고하지 않게 됐다. 오로지 ‘돈’에 따른 관계 형성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대학사회와 밀접하게 관계된 인문출판의 위상을 예로 든다면 좀더 이러한 문제점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대학은 실적에 따른 인사고과제도에 따라 진정한 의미의 연구보다는 이전보다 좀더 수량화된 계산치에 의해 교수와 강사를 평가하게 돼 수준급에 이르는 역작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고, 출판계 역시 ‘돈’이 되지 않는 인문출판에서 서서히 발을 빼 이른바 돈되는 쪽으로만 출판의 촉수를 끌고 갔다. 남은 것은 인문출판에 뜻은 있지만 영세한 규모의 1인 내지 소규모 출판사들이 폐허 속에서나마 끈을 놓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해 대학과 지식인 사회, 그리고 출판계가 공감은 하고 있다. 다만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글머리의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가 부러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어캄프 출판사는 독일 최고의 지성들과의 ‘지적’ 연대 속에서 독일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풍요로운 유산은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과 더불어 책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문화의 도시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는 주어캄프 출판사의 이전 소식에 안타까워 했을 것이다.

    이제 모두들 신자유주의 시대가 결코 ‘인간적 삶’을 보장해주지 않음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대안을 위해 암중모색 중이다. 대학사회, 더 나아가 지식인 사회와 출판계 역시 새로운 지식 문화 창출을 위해 머리를 맞대어야 할 시점이다. 우리도 주어캄프와 같은 출판사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제 다시금 진정한 의미의 ‘전통’을 일구어야 할 때이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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