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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떠받친 의식 재조명‘한국학 모노그래프’ 성과
고려를 떠받친 의식 재조명‘한국학 모노그래프’ 성과
  • 김유정 기자
  • 승인 2010.02.22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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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국가와 집단의식』노명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09 | 224쪽

 

『고려국가와 집단의식』노명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09 | 224쪽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통일한 뒤 후삼국으로 분열되는 과정을 거쳐 등장한 고려시대는 합종연횡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다양한 계층과 계급, 시대의식이 공존한 고려시대 집단의식을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하기 힘들고, 설명할 수도 없다는 시각에서 노명호 서울대 교수는 고려시대 집단의식 추적 작업을 시작한다.

책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한국학모노그래프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서울대가 지난 2001년부터 매년 1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추진하고 있는 한국학 장기기초 연구사업이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독자들은 다양한 시대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한 시대 속에서도 다양한 관점을 파악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저자는 집단의식을 ‘우리의식’, 즉 ‘우리들은 동일집단의 성원’이라는 집단 성원들의 공통적인 자각과 여기에 기반을 둔 사고·정서라고 규정한다. 역사학계에서 집단의 사고와 행동양상은 주요 연구대상이지만, 저자는 “고려시대 집단의식과 관련된 역사상은 고려시대 중요한 특성에 해당하면서도 대개 학계에서 제대로 주목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고려시대 집단의식은 통일신라기 이후 발달한 ‘삼한일통의식’을 중심으로 옛 삼국주민 각각을 단위로 한 잠재적 분립성을 내포하는 ‘삼국유민의식’, 지역자위공동체 단위의 ‘자위공동체의식’, 고려국가를 중심으로 주변 여진족 집단 등을 포괄하는 ‘해동천자의 천하의식’이 시기와 상황에 따라 나오고 들어갔다. 구체적인 사료를 토대로 풀어쓴 논거를 보고 있자면 고려시대는 생각보다 포용적이고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의식에 대한 고려인들의 시야를 민족의식과 국가로 이뤄지는 국민국가 개념 안에 담기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지역자위공동체의식은 후삼국시대 무정부상태에서 지방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고려는 편차가 큰 지역단위 자위공동체를 해체해 재편성하기보다 이를 바탕으로 지방제도를 만드는 한편 행정체계상으로 공동체 자치를 바탕으로 한 지방행정체계를 수립했다. 지역공동체를 철저히 부정하고 청산하기보다 타협적으로 공존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삼국유민의식과 삼한일통의식이 공존했다는 설명은 눈에 띈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계승하려는 삼국유민의식은 고려국가 단위로 사회통합이 진전되면서 약해지고 삼한일통의식이 자리를 대신했다. 노 교수는 그러나 “삼한일통의식도 고려건국세력계열과 신라계열이 병존하며 대립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김부식의 삼국유사를 ‘고구려계 건국세력의 삼한일통의식에 눌려 공식적 국가이념으로 표면화되지 못 한 신라계 삼한일통의식을 공식화, 표면화시킨 것’이라고 해석한다. 경쟁적으로 지속된 우리의식은 전쟁, 정변 등을 통해 통일성을 강조하는 국가단위 우리의식 강화로 이어졌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속에서도 국가사회가 연속되는 상태가 된 것은 한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고려시대에는 대륙 강대국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공존했다. 한족 국가를 중화로 여기고 고려를 소중화적 존재로 보는 화이론적 천하관, 반대로 고려만이 진정한 천자국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두 천하관과 함께 천하의 구성을 다원적인 것으로 보는 천하관이 발달해 강대국과 정면충돌을 피하고 외교적, 전략적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여진인들까지 고려인들의 ‘우리의식’의 경계지대에서 완만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 천하관은 고려시대를 통해 병존했다. 책봉-조공관계를 바탕으로 한 천하는 중심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실제적 천하’이고, 종교적 성격을 띠는 사고와 연관되기도 하는 ‘관념적 천하’는 보다 큰 범위를 형성하며 시기에 따라 지배층의 이념으로 활용됐다. 특히 송이 왕조를 통일하고 13세기 말 남송이 멸망하기까지 동아시아 세계를 주도하는 절대강자가 사라지고 양대 세력이 대치하는 가운데 고려시대 천하관은 시기에 따라 주변국에 대응하기 위한 사상적 기반으로 크게 작용했다.  

이렇듯 다양한 집단의식은 고려국가를 지탱한 기둥이자 사상적 근간이었다. 고려시대의 역동성과 포용성을 더 들여다보고 싶은 이유. 책 중반에 언급된 “현대에 나타난 삼국유민의식은 실체 없는 유령과도 같다. 그 망령을 다시 살려 내도록 불을 붙이고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은 20세기 후반 이후 한반도 정치지도자들의 권력욕에 따른 교묘한 책동과 지역이기주의에 입각한 제로섬게임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된 한국인들의 정치의식이다”라는 구절 때문인지 모른다. 저자가 서론에서 언급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은 종종 이념에 의해 왜곡된다”는 말은 책이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로 생각된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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