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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의 ‘글 공부’에는 ‘마음 공부’의 비결 녹아 있어
퇴계 선생의 ‘글 공부’에는 ‘마음 공부’의 비결 녹아 있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02.22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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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함양과 체찰』낸 신창호 고려대 교수(교육학)

 

올해는 퇴계 탄생 510주년이 되는 해다. 퇴계 연구가 상당한 축적을 쌓아오고 있지만, 그의 사상은 여전히 한국철학의 지평 위에서 철학자들의 담론을 통해 빛을 뿜고 있다. 좀더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을까. 교육철학을 전공한 신창호 고려대 교수(교육학)가 최근 펴낸 『함양과 체찰』은 이점에서 흥미롭다. 신 교수는 퇴계의 마음공부에 주목, 그의 공부법을 『自省錄』을 근간으로 해서 조목조목 접근했다.

 

》올해는 퇴계 선생 탄생 5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교육학을 전공하셨는데, 특별히『함양과 체찰』이란 책을 내게 된 배경이 궁금한데요. 교육학이라고 하면, 서구교육사상을 수용해 국내에 적용하는 게 거의 관행이 되다시피 했는데, 의외라는 느낌이 듭니다.

 

잘 아시다시피 40대를 ‘不惑’이라고 합니다. 40대 중반을 지나면서, 학자의 삶이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제 자신에게 수시로 묻기 시작했습니다. 제 전공이 한국교육철학인데 저 자신을 채찍질해줄 우리의 선학은 어떤 분이 계실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예전에 접했던 퇴계 선생의 삶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自省錄??을 펼쳐보면서 제 자신도 다시 한번 성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한국(동양)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박사과정 때는 이런 것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교육철학과 역사를 연구했어요. 그러다보니 동양과 서양의 철학과 교육학을 동시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서구교육학이 지닌 장점을 파악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전통교육에 대한 학계의 무관심 내지 무지를 경험했어요.

지금도 서구교육학의 틈바구니에서, 동양교육학, 특히 한국교육학을 연구하려니 좀 고독합니다. 그래도 학문의 뜻을 여기에 둔 이상, 한국전통사상을 교육학적으로 해석하고 연구하여 한국교육학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일조하려고 합니다.

 

》책의 제목이 된, ‘함양과 체찰’이란 어떤 개념, 의미인지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涵養과 體察은 유교 철학의 주요 용어입니다. 함양은 마음공부입니다.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은 마음, 아직 펼쳐지지 않는 마음을 수렴하는 공부로 存養이라고도 합니다. 체찰은 몸으로 직접 살피는 일입니다. 마음이 바깥으로 펼쳐져서 욕심에 빠지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게 욕심을 제거하거나 조절하는 공부로 성찰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천하는 내면공부-외면공부로 볼 수도 있습니다.      

 

》 본문에 보면, 퇴계 선생이 책읽기(독서법)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공부, 학문 등과 연결되는 부분인 것 같은데, 퇴계 선생의 책읽기(의 특징)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450여 년 전의 공부법이 오늘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사실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책 읽기’보다는 ‘글 공부’라는 표현이 좋을 것 같습니다. 퇴계 선생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교 지성들은 인간의 삶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삶을 합리적이고 건전하게 영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현대 교육은 대부분 지식습득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어요. 때문에 퇴계 선생의 공부법을 통해 공부의 궁극처가 인간의 일상과 삶의 합리성이라는 점을 깨닫게 할 필요가 있어요.

 

》‘함양과 체찰’이 마음공부법의 요체라고 한다면, 오늘날 대학의 학문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같은 공부법에 따라 퇴계 선생의 마음공부 요결을 정리한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의 대학은 대내외적인 평가를 비롯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 중심의 다양한 사업들 때문에 교수님들의 주요 활동 영역을 침해하거나 능력 발휘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저 또한 다른 교수님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학교에서 부과되는 업무로 인해 교육과 연구가 위협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스스로 살펴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되었건 제도가 되었건 비판할 것은 당연히 비판해야겠지만, 제게 주어진 일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의 문제는 모두 제 자신에게 있다고 봅니다. 이때 함양과 체찰을 통해 나를 깨우친다면 스트레스가 줄어들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 책을 집필하시면서, 퇴계 선생의 글귀 가운데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구절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지요.

개인적으로 퇴계 선생의 삶을 한 마디로 정돈하면, 늘 몸을 낮추고 양보하는 ‘謙遜’입니다. 그 바탕에 몸소 살피고 깨닫는 ‘自省’이 있습니다. 제 자신도 학자로서 교수로서 제대로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지, 성찰할 기회를 갖습니다.

 

》 앞의 질문(1)과 연관해서, 퇴계의 마음공부(법)의 핵심에 ‘인성교육’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퇴계 선생을 교육철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시각이기도 한데, 퇴계의 인성교육을 오늘의 혼탁한 교육현실에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요? 인성교육을 공교육 기관에서 과연 교육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교육이 궁극적 목적은 사람다움의 세계를 일구는 일입니다. 그 가운데 핵심이 사람의 문제입니다. ‘사람임’을 ‘사람됨’으로, 나아가 최종적으로 ‘사람다움’을 추구하는 교육의 유기체가 바로 유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다움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작업이 바로 인격교육이고 인성교육입니다. 흔히 성선설로 알려져 있는, 맹자가 말한 ‘善端’을 둘러싼 논쟁은 바로 마음공부의 열쇠가 됩니다.

현재 우리 교육은 이러한 인간성 함양 교육에 매우 소홀합니다. 그런 교육의 지속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참된 삶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제가 대학에서 ‘배려’와 관련한 교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스팩쌓기 이외에 인간성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교과목 공부를 조금 줄이더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의식을 지닐 수 있는 교육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 『함양과 체찰』이후 선생님의 개인적인 저술(연구)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현재 마무리 단계에 ‘유교의 교육학 체계’와 ‘동양적 의미의 교육과 학습’이 있고요. 향후에는 원효의 ‘發心修行’, 지눌의 ‘修心訣’ 등을 통해 한국불교의 마음공부를 살펴볼 생각입니다. 한국의 주요 고전들을 현대교육학의 시선으로 풀어내기 위해 여러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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