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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쟁점] : 청계천 복원 논의 활발
[문화쟁점] : 청계천 복원 논의 활발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4.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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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9 10:06:09

포르노테이프, 벼룩시장, 헌책방, 공구상. ‘청계천’ 하면 떠오르는 연상의 범주는 대개 이런 것들이지만, 청계천은 단순한 지명을 뛰어넘어 사회경제적으로 함축된 상징을 품고 있다. 22년 전 한 젊은이가 불꽃으로 몸을 살라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게 했던 그 자리에 세워진 고가다리와 삼일빌딩은 개발독재가 덧칠한 한국 현대사의 부끄러운 얼굴이다.
요즘 아이들은 청계천이 원래 개울이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물이 맑아 아이들은 멱을 감고 어른들은 빨래를 했다는 말은 더더욱 믿지 못한다. 천변가에 위태롭게 들어선 판자촌, 이름처럼 맑은 시내(淸溪川)가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아낙네들이 빨래하는 흐린 사진 몇 장이 청계천의 역사를 증언해줄 뿐이다. 총 길이 13.67km인 청계천은 본류(광교∼중랑천 합류부)의 5.4km를 포함한 대부분이 복개됐고, 고가도로 길이는 5.86km이다.

청계천 복원은 서울시장 후보 대표공약?

청계천이 과연 옛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최근 청계천 복원을 둘러싼 논의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각종 선거 출마를 앞두고 있는 이들이 너나없이 앞다투어 청계천 복원 공약을 내세운 것.

지난달 22일, 한나라당 서울 시장후보 출마를 선언한 이명박 전 의원은 청계천 공약을 내세운 첫 타자로 나섰다. “서울의 청정 환경 유지와 강·남북의 균형 발전을 위해 청계천을 복원할 것”이라는 공약을 발표 한 것.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떨어진 이상수 의원도 후보로 나서면서 청계천 복원을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뿐만 아니라 청계천을 끼고 있는 구청장들도 청계천 복원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의 구청장들은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청계천을 돌려주기 위한 계획과 구상을 내놓으면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와 맞물려 고건 서울 시장은 지난 9일 월드컵이 끝난 뒤에 하기로 했던 청계고가도로 보수공사를 다음 시장에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시장 후보들이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청계천 보수 문제 역시 다음 시장의 몫이라는 것. 이로써 청계천 복원 문제는 구상이 아닌 현실로 떠오르게 됐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토론회가 줄을 잇고 학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작년부터 청계천 복원의 여론을 수렴해 온 한 신문사가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75%가 복원을 반겼다.

녹색연합은 청계천 복개공사를 ‘무분별한 도시개발과 자연파괴의 상징’으로 규정하며, 청계천 복원 움직임을 환영하고 나섰다. 서울의 5백년 역사와 함께 한 청계천이 옛 모습을 잃어간 것은 1950년대 초 6·25 전쟁 즈음이다. 전쟁을 피해온 난민들과 피폐해진 농촌을 등진 이농인구들이 청계천변에 무리 지어 살면서 청계천 일대는 빠른 속도로 ‘슬럼화’가 진행됐다. 판자촌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폐수가 청계천을 오염시키고, 가난과 범죄의 온상으로 비쳐지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청계천변 싹쓸이를 구상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다. “사회 부조리를 척결하면서 도시개발을 통한 조국근대화를 이룩하는” 청사진의 첫 번째 구상도는 청계천 복개였다. 군사독재는 민주화의 열망과 독재정권의 부끄러움을 청계천과 함께 덮었다.

문제는 친환경·생태 개발
눈에 보이는 더러움을 보이지 않게 덮어버리는 것을 능사로 여기게 된 복개 역사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청계천 복원은 묻어두었던 역사를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하고, 잘못된 근대화를 바로잡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청개천 복원이 애초 계획대로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이루어지는가이다. 청계천이 복개된 지난 40년 동안 개발이 파괴를 낳고 파괴가 또 다른 개발을 낳는 현장을 무수히 목격한 터라 이런 우려는 자연스럽다. 청계천 일대를 생활터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영세 상인들의 삶까지 돌아본다면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인터뷰] : 청계천 포럼 양윤재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
“환경보존과 도시개발 함께 갈 수 있다”

청계천 복원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청계천 포럼에는 도시계획, 건축, 물 처리, 교통 분야 전문가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00년부터 청계천 복원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몇 차례 심포지움을 통해 복원의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청계천 포럼의 양윤재 교수를 만나서 청계천 복원의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봤다.

△청계천 복원 문제가 본격화될 듯 합니다. 청계천이 환경과 문화의 범주를 넘어서 정치적인 이슈로까지 떠오르게 됐습니다.
“10년 전에 청계천을 복원해야 된다고 했을 때는 다들 미쳤다고 했는데, 시대가 변하고 인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어떤 후보든 청계천을 복원해낼 사람이 시장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청계천 복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선 서울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되찾는 데 있습니다. 생태계 복원과 친환경도시로서의 상징과 아울러 경제적 이득까지 생각한다면 청계천 복원은 ‘21세기 총체적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청계천 복원이 가뜩이나 심한 교통난을 더 할 것이라고 하는데요.
“교통 문제로 시비 거는 것은 그야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밖에 안돼요. 차들이 뒤엉켜서 6차선인 청계로는 지금 2차선 구실도 못하고 있습니다. 청계천 복원도로와 외곽의 우회도로로 차량을 유도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중교통’을 재정비해야죠. 청계천 일대에 편리하게 연결된 지하철을 이용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대중교통으로 전환하도록 도로를 정비해야 합니다.’ △왜 하필 지금 복원해야 할 곳이 청계천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청계천은 서울의 젖줄이고, 생명수이기 때문이죠. 파리가 파리일 수 있는 이유는 세느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인 서울에서 유유자적 걸을 수 있는 길다운 길이 하나도 없습니다. 청계천 복원은 우선 서울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단언컨대, 청계천이 복원되면 앞으로 20년 동안 서울의 경제를 살릴 것입니다. 청계천 일대의 노후지역을 새로 정비해서 개발 잠재력을 높이면그 땅을 이용한 경제활동이 다양해지고, 청계천뿐 아니라 서울의 브랜드가치가 함께 높아지게 될겁니다.”△공사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실성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몹시 화가 납니다. 도시 설계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청계천 복원의 현실적 타당성은 충분히 검토했고, 몇 차례의 포럼과 세미나를 통해 전문가들에게 이미 타당성을 검증받은 상태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가 그 ‘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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