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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평등한 일터를 잃게 될 새만금 여성들
[만파식적] 평등한 일터를 잃게 될 새만금 여성들
  • 교수신문
  • 승인 200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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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7 14:41:21
함한희/전북대·고고문화인류학과

요즈음 어촌에 나가보면 활기가 느껴진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본격적으로 고기잡이 철이 되어서이다. 그런데 새만금지역 사람들은 예외이다. 겉으로 봐서 현재까지는 다른 어촌과 크게 다를 바 없어보인다. 어부들의 몸도 바빠보인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천근의 추가 달려있다. 이제 곧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될 날이 멀지 않아서이다. 그렇게 되면 바다가 없어지고 만다. ‘한평생 바다를 퍼먹고 살았는데’하며 어부들의 한숨소리에 파도가 일렁인다. 아무리 이 공사가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의 웅대한 간척사업이라고 해도 이들에게는 생존권을 빼앗기는 엄청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분홍빛 청사진과 정치가들의 사탕발림 소리에 넘어간 것이 크게 후회가 된다며 이들은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지난 해부터 새만금 지역으로 현지조사를 다니고 있다. 지금은 바닷가 마을이지만, 이 사업이 완공되는 날이면 육지의 한 복판이 될 곳이다. 이 마을은 특히 드넓은 갯벌로 유명하다. 넓을 뿐만 아니라 ‘갯것들’이 많아 황금밭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곳이다. 그 황금밭을 누비며 백합, 바지락, 고막, 갯우렁 등을 잡는 이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다. 전통적으로 갯일은 여성들의 차지였고,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갯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아지자, 마을 아저씨들도 갯벌로 나오고 있다.
칠순이 가까운 황할머니의 거래질은 젊은 여성들이 따라갈 수 없다. 사십년 일한 솜씨이니 당연하다고 한다. 부지런히 거래질을 하며, 뒤따라 나선 나에게 하소연한다. “개(갯벌)를 막으면 우리 전부 다 굶어 죽어. 부지런만하면 절대 밥 굶어죽을 일이 없는데요, 여기가. 보라구. 여기가 우리 저금통장 아닌가. 어제께도 와서 캐고 가도 오늘 오면 또 나오고, 내일도 또 나올꺼고. 근디, 이것을 없애버린다구. 미친 일이지.” 곁에서 일하던 금순아주머니도 거든다. “난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도 없어요. 한데 갯벌은 차별없이 나를 대해요. 많이 배우건 아니건 누구나 똑같이 잘 살 수 있게 만든다구요.”어업은 주어진 자연자원을 누구든지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생업활동이다. ‘바다는 저금통장’ ‘갯벌은 금밭’ ‘매일 나가도 똑같은 그 자리에서 또 조개를 캐올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복된 자리인가’라고 마을 어민들은 감탄한다. 자연의 이치에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바다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어민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이다.
거래질하다가 허리를 잠시 편 금순아주머니는 말을 잇는다. “우리는 매일 바다에 나와요. 그래야 자식가르치며 살지요. 갯벌작업이 곧 바로 돈이되니까. 근데 요즈음은 수입이 많이 떨어졌어요. 하루 보통 3-4만원을 벌고 괜찮으면 4-5만원을 벌지요. 옛날에는 10만원도 더 벌었어요. 하루에 너댓시간 작업하고 이렇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곳이 또 있어요?”새만금의 여성들은 바다에서 돈도 벌고, 자연의 풍요로움과 평등함에 고마워하며 산다. 바다와 갯벌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또 나이로도 배움으로도 차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들의 일손은 쉴 새가 없다. 자녀들의 교육비, 생활비를 책임지고 있으니 명실공히 집안살림의 기둥들이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인공이 가해지면 불평등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바다와 갯벌의 풍요로움과 공평함을 누리던 여성들은 새만금사업이 마무리되면, 일터를 잃을뿐더러 인간사회가 만든 성, 연령, 그리고 학력의 차별구조 속에 묻힐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이곳 여성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보이고 가슴에는 무거운 추가 매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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