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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세평] 대학에 불고있는 ‘황사 바람’
[신문로세평] 대학에 불고있는 ‘황사 바람’
  • 정지창 영남대
  • 승인 2002.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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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7 14:28:15

며칠째 불어오는 황사 바람 때문에 눈이 침침하고 숨쉬기가 답답하다. 온 천지에 뿌연 먼지가 가득 차 있으니 창문을 열기도 겁이 나고 산책을 나설 기분도 아니다. 그저 어서 빨리 황사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

대학이라고 해서 황사 바람을 피할 수는 없다. 누구도 시내 한복판과 대학 캠퍼스의 미세 먼지 농도가 크게 다르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대학 캠퍼스가 혼탁한 황사 바람이 범접하지 못하는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대학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믿는다.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쩌다 대학이나 교수가 못된 짓을 저지르면 말세라고 한숨을 쉬든가 노발대발 호통을 친다.

삼척동자도 쉽게 알 수 있는 이치를 왜 사람들은 외면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대학만은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온 천지를 뒤덮고 있는 뿌연 황사 바람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공기를 숨쉴 수 있는 곳. 그곳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일 터이지만, 모순과 비리로 가득찬 현실이 역겨울수록 이성과 도덕이 지배하는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지는 법이다.

유토피아란 본질적으로 비현실적인 꿈의 투사에 불과하지만, 유토피아적 꿈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고 숨쉬기가 힘들겠는가. 대학의 도덕성, 대학의 엄격한 윤리의식에 대한 요구는 유토피아적 기획처럼 터무니없이 보일지 모른다.그러나 그러한 요구나 소망이 없다면 대학의 존재가치는 결정적으로 손상될 것이 분명하다.
온 세상이 돈 버는 일에 미쳐 ‘세계화’나 ‘시장’을 중심가치로 섬기는 판에 대학에서 ‘수요자 중심교육’과 ‘경영 마인드의 도입’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학도 기업처럼,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대학은 조만간 도태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장사꾼의 논리가 아닌 대학다운 ‘법도’에 대한 요청은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도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생존에 필요한 현실적 필요와 이상적인 도덕적 가치 사이의 중간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중간선은 시장과 상아탑, 전근대와 진보 사이의 거리를 이등분한 지점에서 저절로 그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학 구성원들이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사수할 때 겨우 지켜낼 수 있는 최후저지선의 성격을 지닌다.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상업화의 공세에 밀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이제 상아탑은 손바닥만한 바위섬의 등대처럼 깜박깜박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승산없는 방어전을 포기하고 아예 대학을 시장 한복판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전을 펴고 장삿길로 나서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진리, 학문, 지식 따위의 고전적 가치들이 모두 담론시장에서 상품화돼 팔리는 마당에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개발하고 첨단의 판매기법을 도입하는 것이 대학의 살길이 아니냐는 주장은 대학 안에서도 점점 더 많은 동조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시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미국의 대학을 모범사례로 내세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힘은 바로 시장논리에 충실한 기업형 대학의 경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고 그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한편에서 상아탑 사수파는 동양의 선비정신과 유럽 대학의 학구적 전통을 가리킨다. 학문과 진리는 상품가치나 계량적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고유의 정신적·도덕적 가치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이들은 볼멘 소리로 항변한다.

그러나 대세는 시장론으로 기울고 있다. 오죽 했으면 전국의 대학인문학연구소 관계자들이 모여 ‘인문학의 경제적 가치’를 주제로 학술토론을 벌였겠는가. 그런 맥락에서 대학의 경쟁력, 학문의 상품가치, 인문학의 잠재적 부가가치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기피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논의가 타당성을 지니려면 대학의 도덕적 권위를 세우고 스스로 바로잡는 자정기능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특히 2부)과 박우희 교수의 ‘대학 거듭나기’는 소중한 성찰을 담고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대학의 상업주의나 전근대적 악습들은 대학 스스로가 하루빨리 씻어내야할 얼룩들이다. 황사 먼지가 날아와 쌓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치더라도 켜켜이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쓸어내지 않는다면 누가 대학의 도덕적 권위나 상품가치(?)를 인정하려 들겠는가.

차제에 대학이 안고 있는 부도덕한 관행들을 가차없이 들춰내고 바로잡는 일은 결국 대학 스스로의 도덕적 권위와 유토피아적 기획을 현실화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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