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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리즘 그리고 ‘낙관주의’를 경계하는 이유
아마추어리즘 그리고 ‘낙관주의’를 경계하는 이유
  •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미술이론과
  • 승인 2009.12.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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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을 위한 제언

“모든 낙관주의는 환상이다.” 얼마 전 국내를 찾은 서양고전 연구자 라아프라우브 브라운대 명예교수의가 말이다.(<경향신문> 인터뷰, ’09.10.27) 老교수는 한 사회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 그 사회의 심리 근저에서 무모한 낙관주의와 자신감을 목격했다. 나는 새해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변화를 말하면서 행여 내 마음속에 생길지 모를 낙관주의를 경계하고 싶다.

올해 9월이면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비엔날레 형식으로 열리는 ‘서울 국제미디어 아트페스티벌’ 등 중요한 미술축제 세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열린다. 젊은 작가들에게 도약의 발판 역할을 하는 ‘창작스튜디오’도 관심을 모은다.

내일은 어제로 반추할 수밖에 없고, 내일의 미술도 어제의 미술을 고려하지 않고는 예측이 난망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미술계가 그려온 궤도는 혼돈 그 자체였고 앞으로도 그 혼돈스러움은 앞으로도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한국 대학사회에 때 아닌 학력검증 열풍을 몰고 온 신정아씨 사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고, 기업체의 비자금 사건이 터져 나올 때면 뒷거래의 주요품목으로 미술품이 열거되곤 한다.

 「빨래터」 진위논쟁이 남긴 불편한 사실
한국미술계의 아마추어리즘은 박수근의 45억원짜리 「빨래터」가 일으킨 진짜가짜 논쟁에서 극에 달한다. 경매가 45억원으로 한국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빨래터」는 곧바로 진위논쟁에 빠졌다. 그런데 이에 대한 최종결론은 미술계가 아니라 검찰에 의해 내려졌다. 사실 검찰이 한국 최고 권위의 미술품 감정기관이 된 지 오래다. 한국 미술계는 단 몇 십 년 전 작품의 진위판별도 할 수 없는 안목 없는 집단인 것이다. 

새해 벽두다. 우울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사실 성큼 다가온 2010년은 미술계가 다시금 의욕을 불태울만한 한 해이다. 지난 미술계의 암울한 모습을 일소시킬만한 대운이 찾아온 것이다.
올해는 드디어 짝수 해이다. 즉 2년마다 오는 비엔날레의 해가 온 것이다. 올 9월이면 ‘광주비엔날레’(9.3~11.7)와 ‘부산비엔날레’(9.11~11.20), 그리고 실질적으로 비엔날레 형식으로 열리는 ‘서울 국제미디어 아트페스티벌(9~10월)’까지 세 개의 대규모 국제 미술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열리면서 한국의 미술계가 뜨겁게 달궈질 것이다. 전 세계의 초현대 미술을 큰 발품 팔지 않고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니 올 가을은 미술계가 오랜만에 근사한 뉴스거리로 풍성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중요한 미술축제 세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열리는지 나를 포함한 많은 미술인들은 여전히 의아해 하고 있다. 지자체간 서로 경쟁하자는 것도 아닐 테지만 점점 중복돼가는 느낌이 온다. 앞으로도 같은 시간표대로 움직일 것이라면 가능하면 이번부터는 상호간에 소통하려는 노력도 조금은 보여줬으면 한다.

과연 올해의 비엔날레들이 모두 성공할까. 물론 여기서도 낙관은 없다. 사실 세상에는 2개의 비엔날레만이 있다는 말이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기타 비엔날레’, 그렇게 단 두 개라는 것이다. 이는 원조 비엔날레인 베니스를 칭송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지난 120년간 지구상에 생긴 수백 개의 비엔날레가 하나도 제대로 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저 대형 이벤트로 전락하고 있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담고 있다.

서울 삼청동 기무사터에 국립현대술관 서울관을 만든다. 본건물 보존문제부터 유적발견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올해로 8회를 맞는 광주비엔날레나 4회째를 맞는 부산비엔날레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도리어 초기의 긴장감과 밀도를 잃어가면서 하나의 큰 전시, 또는 때가 되면 열리는 미술계 이벤트 정도로 노쇠해가는 징조를 보이고 있다. 아마 각각의 조직위원회도 이 문제를 아는지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모든 전시총감독이 40대 안팎으로 짜여졌다. 올 가을 세 개의 비엔날레를 통해 한국 미술계가 과연 얼마만큼 새로운 활력을 얻어낼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된다.

2010년 미술계의 화두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창작스튜디오’를 손꼽을 수 있다. 1990년대는 분명 ‘대안공간’이라는 비영리전시공간의 활성화에 의해 미술계가 큰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오늘날 상업적으로 주목받은 젊은 작가들 대부분이 한 때 허름한 창고 같은 비영리 대안공간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그러한 공간을 꾸려나가던 젊은 큐레이터들이 만들어낸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때 서울 시내만 해도 십 여 개를 헤아리던 대안공간이 어느덧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공공기금에 의존하던 대안공간의 독자적 존립은 애당초 꿈이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최근에는 창작스튜디오가 젊은 작가들에게 도약의 발판 역할을 하고 있다. ‘아티스트 레지던스’의 한국판 버전인 ‘창작스튜디오’는 다양한 작가들에게 한시적으로 작업실을 제공하고 교류하게 하는 국제 교환 프로그램을 일컫는 용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작업실 무료 제공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설립해 운영한 창동스튜디오와 고양스튜디오가 그러하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난지도, 청계천, 문래동도 작업실 제공 외에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어 보인다. 작업실을 마련할 수 없는 젊은 작가들에게 이 정도도 훌륭한 지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본격적인 운영 프로그램의 미비는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변화의 기운도 불고 있다. 경기도립미술관이 지난해 10월부터 초대형 창작스튜디오를 안산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작업실 제공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작가재교육 프로그램까지 목표로 하고 있어 그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문화적 역량 가늠하는 시금석
지난 한해 한국미술계의 최고의 뉴스는 아마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 설립의 확정일 것이다. 경복궁 바로 옆 기무사 터에 초대형 국립현대미술관이 설립된다는 소식은 한국 미술계의 지형을 바꿀만한 대사건이다. 분명 대규모 현대 미술관 설립은 서울의 모습까지도 바꿔놓을 것이다.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사동에서 삼청동 일대로 밀려난 화랑가가 또다시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야 할 형편이었는데, 이 같은 대형 미술관의 등장으로 최소한 수도 안에 예술적 방어선이 만들어진 셈이다.

물론 여기서도 낙관은 없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무사 본건물의 보존 문제로 미술관은 설계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건축과정에서 유적 발견은 불 보듯 뻔한데 그렇다면 2012년 완공은 난망할 것이다. 규모나 역사적 의의에서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이나 영국의 테이트모던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이 나오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너무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우리의 문화역량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 확실한데 그간 우리나라에 세워진 미술관 건축을 기준으로 본다면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하여간 현대미술관 이전 문제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사건사고로 올 한 해 미술계도 바람잘 날이 없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한 해도 쉬이 저물게 될 것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미술이론과

필자는 런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있고, 역서로 『그리스 미술』, 『신미술 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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