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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수탈의 이분법 지양 … ‘식민지 근대’ 새 이론적 해법 모색
개발과 수탈의 이분법 지양 … ‘식민지 근대’ 새 이론적 해법 모색
  • 김백영 광운대·사회학
  • 승인 2009.12.2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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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지배와 공간―식민지도시 경성과 제국 일본』(김백영 지음, 문학과지성사, 2009)

최근 10여년간 한국의 ‘식민지 근대’ 연구는 다방면에서 중요한 학문적 성취와 진전을 보여왔지만, 그와 더불어 몇 가지 한계와 문제점 또한 분명히 드러냈다. 수탈론과 근대화론의 경직된 이항대립, 硬性 연구(정치사·경제사 등)와 軟性 연구(문화사·풍속사 등)간의 학제간 소통의 부족, 일국사의 시야를 쉽사리 넘어서지 못하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 연구의 풍토적 제약 등. 통념의 문턱점을 넘어설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 책은 교착상태에 빠진 우리 학계의 ‘식민지 근대’ 연구를 ‘식민지도시’라는 새로운 화두를 통해 돌파하려는 시도로 자리매김한다. 저자는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를 제국-식민지의 도시간 네트워크로 파악함으로써, ‘식민지 근대’의 문제를 사후 형성된 현대 국민국가와의 시간적 연속성 속에서 파악하기보다는 과거 실존했던 ‘식민지 제국’의 지리적 판도라는 공간적 연속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결국 연구의 성패를 가르는 첫번째 시금석은 재구성된 ‘도시’와 ‘공간’이라는 문제설정이 얼마나 이론적으로 독창적이며 전략적으로 유효한가에 달려있는 셈이다.

식민지도시 ‘경성’ 공간사회학적 탐사
이 책이 서두에서 ‘문제로서의 식민지도시’를 새롭게 벼려내는데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I부 ‘제국과 도시’에서는 해외 각지의 식민지도시에 대한 광범위한 사례 연구를 이론적으로 종합함으로써 식민지도시에 대한 국내외 학계의 연구성과를 정리한다(제1장). 일반적으로 식민지도시는 ‘지배’의 거점이자 ‘개발’의 집적체인 동시에 ‘수탈’의 촉수이자 ‘억압’의 장치이다. 그것은 제국 문명 스펙터클의 전시장이자 피식민 대중의 비참한 삶의 무대로서,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인종적·민족적 차별을 ‘문명세계’와 ‘암흑세계’의 공간적 분화를 통해 생태학적으로 재생산한다. 결국 문제는 식민지 도시공간의 생산(전략)과 소비(효과)에 대한 분석으로 요약된다(제2장).

그렇다면 천황제제국 일본의 식민지도시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은 무엇일까. 신사와 유곽이라는 요소론적 논의를 넘어서 이면을 들여다보면, 일본형 식민지도시는 무엇보다도 近隣 제국주의로서 ‘일시이주형’이 아닌 ‘완전영토화’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이 가장 특징적이다. 하지만 초기의 ‘脫亞入歐’에서 말기의 ‘英米鬼畜’으로의 국책의 극적 전환이 시사하듯 일본 제국주의의 이념과 정책은 가변적인 것으로, 이는 서로 다른 정세와 국면에서 건설된 식민지도시들간의 형태적 차이로 표출된다. 타이페이와 경성과 신경(창춘)은 그 위상학적 등가성에도 불구하고 입지와 형태와 전략에서 얼마나 큰 차이를 드러내는가!(제3장) 이 책은 이처럼 비교사적 관점에서 그려진 식민지도시의 일반적 밑그림을 바탕으로 비로소 ‘경성’의 도시공간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한다.

제Ⅱ부 ‘한양에서 경성으로’는 서울의 식민도시화 전기(1904~1925)에 해당하는 왕조 수도 한양에서 식민지도시 경성으로의 전환 과정을 다룬다. 개항기 방한한 서양 지식인들의 시선과 담론에 포착된 5백년 왕도 한양 최후의 초상은 어떠했을까(제4장). 성곽도시 한양은 어떤 과정을 거쳐 역사도시와 군사기지(용산)가 병립하는 기형적인 표주박형 이중도시로 변용되었는가(제5장). 경복궁의 조선총독부 신청사와 남산의 조선신궁의 건설을 포함한 일제의 식민지 행정수도 건설의 마스터플랜은 과연 통념적인 일제 풍수단맥설과 부합하는 음모론적인 것인가(제5장).

제Ⅲ부 ‘경성에서 대경성으로’는 서울의 식민도시화 후기(1926~1945)에 해당하는 경성의 대도시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세 가지 연구를 담고 있다. 1920년대 이후 인구 증가와 시가지 팽창과 더불어 제기된 경성의 개발 계획, 이른바 ‘대경성 계획’의 방향과 노선을 둘러싸고 총독부와 경성부, 그리고 재경성 일본인 세력과 조선인 세력은 어떤 균열과 갈등 양상을 드러내는가(제7장). ‘청결의 제국’을 표방한 일제는 ‘불결의 古都’ 서울을 그들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위생 전략을 전개하는가(제8장). 마지막으로, ‘백화점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1930년대 경성의 이례적인 소비문화의 활황 현상을 제국의 스펙터클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면, 대중의 도시적 경험은 식민지 도시사회에 어떤 사회적 변화를 야기했는가(제9장).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이 책은 저자가 2005년 서울대에 제출한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책 속에는 ‘식민지 근대’의 이론적 궁지를 생산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저자 나름의 오랜 고심과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는 한편으로, 도시라는 다면적 대상을 다루기 위해 역사·정치·사회·문화·지리·건축·공학 등의 학제간 경계를 넘나드는 도전적인 지적 횡단의 시도에서 미숙함과 약점을 드러내는 부분도 없지 않다. 책 서두에서 담금질된 식민지도시 일반론과 일본형 식민지도시론의 이론적 기초 위에 ‘경성’을 구체적 사례로 하여 제기된 여섯 개의 질문은 하나하나가 현단계 한국의 식민지도시사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띤 문제제기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에 대해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해답은 향후 더 많은 경험적 연구와 이론적 숙고를 필요로 하는 잠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자 한계는 사회학적 상상력과 역사학적 통찰력을 극대화함으로써 한양-경성-대경성-서울의 도시사적 변천사를 ‘세계사적 근대’라는 폭넓은 맥락 속에서 이론화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일 것이다. 비교식민지도시사적 관점에서 제기된 여섯 개의 핵심 문제를 ‘경성’에 적용함으로써 한국 ‘식민지 근대’ 연구의 새로운 이론적 해법을 모색하려는 시도. 이러한 미완의 ‘문제사’적 접근을 통해 이 책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굵직한 미제의 과제를 제기한다.

첫째, ‘식민지 근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발과 수탈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할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와 사회·문화사적 연구성과를 종합할 수 있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19~20세기 한·중·일의 근대화 경로의 分岐를 동아시아 지역체제 변동의 관점에서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유효한 방법론으로서 도시와 도시간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춘 국가간 체제에 대한 ‘지리적 역사’의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된다. 셋째, 콜로니얼-포스트콜로니얼 서울의 역사적 연속과 단절의 문제의식을 확장함으로써 글로벌 시대 세계도시 네트워크의 구조와 동학에 대해 제국주의-식민주의 시기로 소급하는 장기사적 성찰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일국사의 당연시된 영토적 경계를 넘어서, 동아시아 근대의 익숙한 지리적 경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다시 쓰여진 일제 시기 서울의 사회사, 그것은 기존의 익숙한 역사적 담론과는 사뭇 다른, 어쩌면 그동안 터부시돼온 다소 낯설고 불편한 해석학적 풍경 속으로 우리의 ‘식민지 근대’를 소환한다. 향후 공동의 연구과제에 대한 저자의 생산적 제언이 정서적 거부감의 장벽과 학제와 국경의 경계를 뛰어넘어 국내외 학계에 적극적인 지적 교감과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백영 광운대·사회학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경계의 섬, 오키나와』,『공간 속의 시간』(이상 공저) 등이 있다. 현재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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