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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16> 김치속의 과학] 김치를 맨손으로 꾹꾹 눌러 담는 이유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16> 김치속의 과학] 김치를 맨손으로 꾹꾹 눌러 담는 이유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09.12.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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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南道는 좀 늦지만, 필자가 살고 있는 춘천에서는 봄 고추모종(-種)은 5월 5일에, 가을배추 모는 8월 15일에 種苗場에서 사다 심는다. 옛날부터 씨나락 播種 전날엔 夜事도 삼갔다고 하지 않는가. 농사에 정성을 다 쏟던 옛 어른들의 心性이 가득 묻어있다. 農者天下之大本이라! 이렇게 심은 무와 배추는 석 달이 다 될 쯤에 클 대로 다 커서 엉덩이만한 통배추엔 샛노란 고갱이가 꽉 차오르고 미인 ‘꿀 장딴지’만한 통무는 밭둑에 다리를 반만 내놓고 멋들을 부린다. ‘秋霜 같은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배추는 겉잎을 모아 짚대로 싸주고 무는 서둘러 뽑아서 머리 무청은 싹둑 잘라내어 짚으로 머리채 갈라땋듯이 총총 엮어 응달에 달아맨다.

여기에 같은 글을 옮기니, “풋내 나는 겉절이 인생이 아닌 농익은 김치 인생을 살아라. 그런데 김치가 제 맛을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다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서 또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다시 한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다. 그 깊은 맛을 전하는 푹 익은 인생을 살아라. 그러기 위해 오늘도 성질, 고집, 편견을 죽이면서 살아야 한다.” 황소고집통인 우리 같은 노틀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집사람 김장하는데 도움 주는 이는 나다. ‘이 짓’도 몇 번 더하면 늙어빠져 못하게 되겠지…. 참 손이 많이 가는 일이 김장하기로구나! 김칫거리는 배추나 무가 주지만 열무, 갓, 파, 고들빼기, 씀바귀 등 지방에 따라 모두 합쳐보면 일흔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무를 숭덩숭덩 잘라 채를 치고 거기에 고춧가루 듬뿍 흩뿌리고, 찹쌀 풀, 다진 마늘, 으깬 생강, 신안 천일염, 집 간장, 설탕, 조미료 등 갖은 양념은 기본이고 아미노산 덩어리인 멸치젓, 어리굴젓, 새우젓을 두루 부어 주물럭주물럭, 뒤적뒤적 맨손으로 버물린다. 

이정도 하고, 왜 우리 집사람이 비닐이나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저렇게 마구 섞고 있을까. ‘엄마 손맛’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맨손의 손가락 사이에는 여러 가지 세균들이 묻어 있어서 그것이 발효를 하니, 무침에는 ‘때 국’이 들어야 제 맛이 나는 것이니 절대로 더럽다 여기지 말 것.
맨손은 그렇다 치고, 고추장에다 깍두기나 동 김치, 김장을 할 때 왜, 어째서 찹쌀이나 멥쌀, 밀가루로 풀을 쑤어 넣는 것일까. 그렇다. 바로 이야기한 세균들이 먹고 번식(발효)할 먹이 감인 것이다. 그랬구나! 푸성귀나 다른 양념에 든 양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니 그렇게 먹을거리를 보충해 준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통 미생물들은 짠 소금에 죽어버리지만 鹽分에 끄떡 않는 耐鹽性細菌인 유산균만 남아서 김치를 익힌다. 다시 말하지만 손이나 生菜들에 묻어있던 미생물들이 발효의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집사람이 김치를 통에 넣고 힘들여 꼭꼭 눌러댄다. 왜? 왜 그러느냐고 집사람에게 물었더니만, “김장하는데 풀을 왜 넣느냐?”고 물었을 때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퉁명스럽게 답한다. 김치에 여러 ‘과학들’이 든 것을 알고 김장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김치에 사는 유산균들은 산소가 있으면 되레 죽어버리는 嫌氣性細菌이기에 공기(산소)를 다 빼 없앤다. 결론이다, 소금에 죽지 않으며 산소를 싫어하고, 낮은 온도를 좋아하는 乳酸菌(젖산균, lactic acid bacteria)들이 김치 맛을 낸다. 김칫독을 응달에 묻어 두면 겨우내 그 속의 온도가 변함없이 영하 1℃ 근방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잽싸게 본떠 흉내를 낸 것이 ‘김치냉장고’라는 발명품 아닌가!

이런 여러 세균이 수자를 늘리면서 有機酸을 많이 내 놓으니 이것이 침을 흘리게 하고 김치의 특유한 맛과 향을 낸다. 아주 잘 익은 김치에는 유익한 유산균이 99%요 다른 세균이나 곰팡이가 1% 정도 들었다고 한다. 유산균세상이 얼마 이어지다가 酸度(acidity)가 떨어지면서(시어지면서) 어느 순간 유산균들이 맥을 못 추고 시들시들 죽어가는 때가 온다. 영원한 것이 없다더니만…, 이때다 하고 여태 숨죽이고 있던 곰팡이무리(효모)들이 得勢하면서 김치에서 군내가 나고 국물이 초가 되니 일종의 腐敗다. 그러므로 아주 酸敗한(시어진) 묵은 김치에는 유산균이 거의 없다.

요새야 한겨울에도 신선한 채소를 먹지만 그 옛날엔 김치 말고 무엇으로? 그렇고말고, 누가 뭐래도 김치는 조상의 넋이 담긴 예사롭지 않은 종합영양식품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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