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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학생 얼굴 떠올리는 당신은 ‘베스트 티처’
자나깨나 학생 얼굴 떠올리는 당신은 ‘베스트 티처’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12.21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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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에 비친 유별난 강의들

택시기사에게 꼼짝없이 한국 정치사 ‘수업’을 받은 국제정치학 박사, 강단을 무대 삼아 역할극을 펼치는 교수, 강의 준비를 위해 장난감 가게를 즐겨 찾는 교수… 유별난 학생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는 교수들이 있다. 학생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네(이버)박사’와 생존 경쟁을 치르는 등 그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학생들은 이들에게 ‘베스트 티처’라고 이름 붙여줬다.
<교수신문>은 ‘나의 강의시간’을 통해 베스트 티처에게 대학교육의 현실과 강의 노하우를 들어왔다. 유별난 요즘 학생들보다 더 유별난 교수들의 강의시간을 통해 유쾌한 강의실을 들여다보자.

 

TV드라마 챙겨보랴 연기하랴 ‘끙끙’
‘판서식 특강’에 익숙한 교수들의 경쟁상대는 바로 인터넷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는 신문이나 방송과 차별화된 강의를 고민했는데 인터넷까지 생각이 닿자 머리가 지끈하다. 김 교수는 “지식이나 정보 전달이 교수의 역할이라면 교수는 ‘네(이버)박사’를 결코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끔 년도나 사건의 내용을 잘못 말하면 무선인터넷을 찾아보는 학생들에게 바로 지적당할 수도 있는 세상”이라며 혀를 찼다.
김 교수는 ‘네(이버)박사’와 대결에서 ‘뒤집기’로 한판 승부를 벌인다. 다름 아닌 사회 현상을 뒤집어 생각해 보는 방법이다. 예컨대 국제정치의 경우 주어진 대로 해석하기보다는 규칙을 누가 정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가르칠 예비교사를 지도하는 이효신 대구대 교수(유아특수교육학과)는 스스로 연극학과 교수가 아닐까라는 착각에 자주 빠진다. “강단에 올라서면 성우나 배우가 돼야 한다. 연령에 맞지 않는 말을 적절히 흉내내야 하고, 아동의 행동에 대한 교사의 잘못된 반응도 표정을 살려 연기해내야 한다”며 “연기를 잘 할수록 학생들로부터 끄덕거림의 피드백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말하기(telling)보다 보여주기(showing)의 힘을 믿는다.

딱딱한 수식과 그래프 일색의 경제학을 가르치는 최경식 농협대학 교수(협동조합경영과)는 베스트셀러나 TV드라마를 섭렵한다. 일주일에 한번은 연구실에서 벗어나 정처없이 도심을 활보하는 건 그의 취미가 됐다. 잘 가르칠 욕심에 노량진 공무원학원도 몰래 수강했다. 김호선 대원대학 교수(치위생과)는 교직원 연수에서 ‘창의적 교수법’을 접한 이후부터 수업준비, 강의방식, 평가 등을 모조리 바꿨다. 업무량이 몇 배가 늘었지만 수업에 쓸 스트레스 볼이나 마이크를 사러 요즘도 장난감 가게를 찾는다. 매번 “시간의 뒤꽁무니만 쫓던” 강의가 이제는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강의로 탈바꿈했다.

학생들에게 맞불을 놓는 교수도 있다. 장영우 동국대 교수(문예창작학과)는 강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을 쓴다. 정공법이다. 장 교수는 주교재 요약, 비평문, 작품 분석 등 매주 세 개의 보고서를 한꺼번에 낸다. 학생들이 틈나는 시간을 포함, 일주일 내내 장 교수의 과제에 매달려야할 분량이다. 그러나 장 교수는 부정확한 표현, 문장의 호응, 참고자료까지 세세하게 첨삭지도했다. 단 몇 주 만에 첨삭 분량이 줄었다. 장 교수는 “좋은 강의는 내용보다 수업 분위기가 좌우한다”고 믿는다. 장 교수가 학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보고서 첨삭지도와 살아있는 대화법이다.

줄거리 정리하기와 정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훈 목포대 교수(국어국문학과)도 작품에서 인물이 거명되는 부분에 괄호를 치는 시험문제를 내는 등 깐깐한 강의를 진행한다. 앞 시간에 결석을 한 학생은 불러세워 이유를 꼭 따져 묻는다. “과제하다 코피를 흘리고 난 다음에 절망해도 늦지 않다”며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 이 교수는 특유의 오지랖(?) 덕분에 학생들로부터 ‘치어리더 교수님’이라는 애칭을 받았다.

2010년 유별난 교수 누가 될까
학생들의 집중력을 잡기 위해 교수들은 이처럼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취업에 대한 열망이 학문탐구 앞에 가로놓이면서 교수와 학생 사이에 ‘드러내 놓고는 인정할 수 없는’ 벽이 생긴 듯하다. 목적지가 다른 사람들이 한 배를 탄 것처럼 교수들에게 강의실의 풍경이 다소 생경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교수들의 강의에도 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유명 학원가 강의도 그렇지만 이러닝, 국내외 대학 강의 동영상 등등 각종 강의영상은 인터넷에서 펄펄 날고 있다.

2009년 ‘나의 강의시간’을 가감 없이 드러내 준 교수들은 “이제는 가르치는 일도 배워야 할 때”라고 말한다. 유별난 학생들이 더 많아질 2010년이 가까워온다. 내년에는 또 어떤 특별한 교수들이 학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까. 유별난 교수들의 유쾌한 강의는 점점 더 많아질 듯하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2009년 ‘나의 강의시간’
장영우 동국대 교수(문예창작학과), 문영 국민대 교수(무용전공), 이훈 목포대 교수(국어국문학과), 한상태 호서대 교수(정보통계학과), 손일락 청주대 교수(호텔관광학과),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 이효신 대구대 교수(유아특수교육학과), 도미경 대덕대학 교수(관광항공철도승무과), 송정태 동서울대학 교수(디지털정보과),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과), 김호선 대원대학 교수(치위생과), 이충무 건양대 교수(디지털콘텐츠학과), 조희라 순천청암대학 교수(인테리어디자인과), 한경근 한서대 교수(항공운항학과), 최경식 농협대학 교수(협동조합경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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