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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절차적 정당성과 중도…신뢰 바탕한 疏通 추구하길
실종된 절차적 정당성과 중도…신뢰 바탕한 疏通 추구하길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9.12.19 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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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사자성어로 본 2009년 한국사회

 

일러스트 이재열

 

정도와 중도는 없었다. 지식인들은 올해를 원칙보다 편법이 횡행했던 해로 정리했다. 지난해부터 논란을 빚어온 4대강 사업 추진부터 미디어법 통과, 세종시법 수정문제까지 절차적 정당성에 의문을 남겼다.

4대강 사업 추진은 대운하 전단계가 아니냐는 물음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 세종시 계획 수정도 반발이 거셌다.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아 개혁에  속도를 낸 한 해였지만 정책의 결정과 추진 과정은 부적절했다는 평가다.

정책 결정과 추진 과정  ‘원칙보다 편법’

올해 한국사회를 달궜던 논란과 갈등이 정치·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에 빚어졌다고 판단한 응답자가 많았다.

김주식 서울시립대 교수(환경공학)는 “올해 세종시법 수정문제, 4대강 사업 전환, 미디어법 통과 등은 기존에 합의를 도출했거나 또는 합의로 도출돼야 할 사안인데 결과적으로 정도가 묻히게 됐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표적 수사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최근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를 체포한 것도 표적 수사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재임용 탈락 , 황지우 총장을 겨냥한 한예종 표적 감사 의혹, 연구지원사업에서 진보성향의 교수들이 잇따라 탈락한 것도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대리투표는 했지만 미디어법은 유효하다’는 법해석, 교사들이 시국선언했다고 해직하는 교육과학기술부,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표적수사 등은 방기곡경의 행태를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경 성신여대 교수(지리학)는 “말 그대로 과정이야 어찌됐든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의 행태를 헌법재판소마저 용인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릇된 방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데도 이를 부인하는 정부의 태도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抱炭希凉’은 믿음을 주지 못하는 행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믿음을 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목적과 행동이 다른 경우에 사용하는 사자성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코과학)는 “대통령과 정부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을 추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더러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는 모습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사자성어”라고 밝혔다.

서도식 서울시립대 교수(철학)는 “미디어법 강행처리, 4대강 개발사업, 세종시 해법 등 불신만 조장하는 정책을 실시하면서도 스스로는 구국 애민 정책이라고 자위하는 대통령과 여당을 비유하기에 적절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신준식 춘천교대 교수(수학교육)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을 위하는 진솔한 마음으로 정책을 하나하나 차분하게 처리하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은 국민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만 국민의 마음은 정작 편하지 못하다. 가는 길이 옳더라도 우선 신뢰를 쌓는 것이 먼저다.”

대립만 있고 대화와 타협은 없었다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과 그로 인한 불신은 정치권의 갈등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과 야당은 올 한해 동안 사사건건 각을 세웠다. 생산적인 토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야가 예산안을 놓고 대치하고 있는 연말 정국은 살얼음판이다. ‘重剛不中’은 이처럼 서로 옮음을 주장하지만 중도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다.

오수형 서울대 교수(중문학)는 “중강부중의 의미처럼 대립만 있고 절충이 없는 상태가 유난히 극명하게 드러난 해”라고 정리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도 “현실정치 세계에서 발생하는 이견이나 정책 충돌에서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른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 조정과 통합이 필수적”이라면서 “성숙하고 균형적인 중도세력이 두터워지고 3각을 이룬 주요 정치 세력도 중간층의 요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甲論乙駁’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기덕 건국대 교수(사학)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제대로 된 열린 자세의 토론과 대안이 나오지 못하고 갑론을박만 무성하다”고 평가했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逝者如斯’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하면서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한 시대가 종말을 고했지만 새로운 시대의 흐름은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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