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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실력이 없거나 열정이 없거나
[나의 강의시간] 실력이 없거나 열정이 없거나
  • 최경식 농협대학·협동조합경영과
  • 승인 2009.12.15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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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농협대학 협동조합경영과

‘오늘은 무슨 얘기가 나올까’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교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도자기’다. 경제학 시간에 뜬금없이 도자기라니? 학생들은 강의주제, ‘공유지의 비극’과 ‘도자기’를 연결 지워보려 애쓴다. ‘도자기, 도서관 자리 잡아주는 기둥서방’이라는 말에 까르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시험기간 중 종종 벌어지는 도서관 자리 전쟁. 그 와중에 여학생의 환심을 사려고 새벽밥 먹고 불법(?)으로 자리를 확보해 두는 도자기들. 이를 통해 교수는 경합성은 있으나 배제성이 없는 ‘공유자원’에 관한 얘기를 풀어나간다. 마치 구연동화를 하는 것 같다. 학생들도 한마디씩 거들며 분위기에 가세한다. 인터랙티브 커뮤니케이션의 전형이다. 연이어 화제는 무임승차, 외부불경제, 시장실패, 외부효과의 내부화, 노벨상 수상자 오스트롬의 이론과 주장 등으로 옮아간다.

그동안 강의를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대학은 학생 구성이 다채롭기로 유명하다. 아예 경제라는 것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석사까지 마친 녀석도 있다.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4년제를 졸업하고 다시 입학하기도 한다. 이들을 한데 모아놓고 경제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아하! 그것 이었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방법. 그래서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풀어쓰는 경제학’ 류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노량진 공무원학원도 몰래 다녔다. 어차피 가르치는 것도 테크닉이라 생각했다.

나는 강의를 교재에 맞추지 않는다. 순서와 내용을 임의대로 정한다. 가령 ‘선택과 기회비용, 평균과 한계, 무차별곡선과 생산가능곡선’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마다 주제를 다르게 한다. 그리고 이것을 실생활과 접목시켜 이야깃거리로 만든다. 이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이렇게 사회과학을 인문학처럼 손질하고 꾸며서 스토리텔링식으로 강의를 한다. 그러면 학생들의 수준과 연령이 들쭉날쭉 하더라도 관심을 쉽게 집중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제에 대한 개념도 잘 전파되고 관련용어, 법칙과 이론, 심지어 수식과 도표까지도 수월하게 전달된다.

강의노트는 특별히 없다. 나는 소설, 수필, 영화, TV드라마 등도 강의와 연관지워 보는 것이 습관화 됐다. 일주일 중 하루 정도는 주제를 머릿속에 넣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일에도 익숙하다.
주변을 보면, 강의평가가 늘 좋지 않은 교수님들이 있다. 이들 중 어떤 이는 학생들 수준이 낮아서 자기 강의를 이해 못한다고 투덜댄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심하게 닦달을 해대서 학생들이 강의평가로 복수하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두 틀린 말이다. 요즘 학생들은 다들 영특하고 수준이 높다. 교수가 진정성을 갖고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열정만 보이면 설령 머리통을 한대 쥐어 박아도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교수의 강의가 시원찮은 데는 ‘실력이 없거나 열정이 없거나’ 딱 그 두 가지 때문이다.

이젠 교수도 필요하다면 모노드라마의 주연배우가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특히, 사회과학 강의는 實事求是를 좇는 자세여야 한다. 실제 일어나는 현상을 대상으로 관련 변인을 찾고 나아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논리를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아하! 그것이었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방법으로 말이다.

최경식 농협대학·협동조합경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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