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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 위한 전공 넘쳐나는 교과과정 … 공감의 인성교육으로
돈벌이 위한 전공 넘쳐나는 교과과정 … 공감의 인성교육으로
  • 김진우 일리노이대 명예교수
  • 승인 2009.12.15 13: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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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工’시대 인문·교양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商工’시대의 인문·교양교육은 유교이념이 지배적이던 이조시대에 신분과 직업의 위계가 士農工商이었던 것이, 현대는 그 위계가 전복된 ‘商工農士’의 시대가 됐다는 가정에서 유래한다. 商이 경제를, 工이 과학을 지칭한다고 할 때, 이 商工의 우세와 압도에 처해있는 학부생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士가 상징하는 인문·교양교육이란 무엇인가를 구명해 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현대 대학의 커리큘럼은 전문성 지식의 분화가 심화돼 이른바 카페테리아식 교과과정을 제공하고 있고, 자본주의의 대두와 더불어 학문이 상업화돼 경제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하여 취업을 위한 교과과정이 흥행하고 졸업 후 돈벌이가 더 잘 되는 전공일수록 인기가 더 높다. 경영학부가 대표적이다. 학부대학은 거의 직업학교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이 이제 상아탑이 아니며, 진리의 탐구보다는 실리의 추구를 꾀하는 기관이 됐다는 점을 반증한다.

단적으로 인문·교양교육이란 인성교육이다. 즉 사람됨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교양교육의 목표와 내용은 다양하지만, 40여년의 교수 경험에 비춰 한국 대학사회에 특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를 거론하고자 한다.

한국 대학생들을 위한 교양교육은 세계인(global citizen)이 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은 단일 민족국가이자 단일 언어국가이며, 한국인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이 때문인지 한국인은 국수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다. 그리고 애국심은 최고의 덕으로 꼽힌다. 이러한 민족관은 타민족에 대한 차별감과 멸시감을 조성시키고 부정적인 이질감을 낳게 한다. 다른 민족은 인종을 막론하고 무조건 ‘놈’(미국놈, 왜놈, 되놈)이며, 순수한 피의 보존이 중요시되고 혼혈이 멸시된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대학생들에게 바라고 싶은 둘째 교양은 공감권의 팽창이다. 사회윤리학자인 프린스턴대 피터 싱어 교수에 의하면, 원의 중심이 ‘나’(ego)라고 할 때, 인류문화의 진화는 원(공감구역)의 팽창과 비례한다. 즉 ‘나’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부족으로, 부족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동맹국으로, 동맹국에서 세계(지구)로 공감권이 넓어지면서 문명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식인(cannibalism), 종족살상(genocide), 노예 제도, 전리품으로써의 여인 강간, 잔인한 고문, 종교 탄압 등은 공감권이 넓어지면서 지구상에서 거의 다 사라졌다. 사실 지금 이 공감권은 더 넓게 팽창해서 동물세계에서 더 나아가 자연환경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인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양인이 갖추고 있어야 할 세 번째 소질은 준법정신이다. 나는 이 정신이 한국인에게 많이 결핍돼 있다고 생각한다. 일리노이대에 온 한국 유학생들이 불법 전화, 교통신호 위반, 사회복지금 타기를 위한 위증 등을 자행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이런 행위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하버드대의 이란 전문가인 리처드 프라이 교수는 그의 저서 『The Heritage of Persia』(1963)에서,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 왕궁에 볼모로 와있던 그리스왕자가 했다는 말을 인용했는데 인상적이다.

“내가 여기 와서 본 즉, 우리나라와 대왕의 나라 사이에 큰 차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무서워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법을 무서워합니다.” 프라이 교수는 바로 이것이 그리스를 문명국 페르시아를 미개국으로 만든 요인이라고 말한다.

인문적 과학의 한 모델을 독일의 지리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에서 찾아본다. 훔볼트는1799년부터 멕시코에서 페루까지 5년간 1만 킬로미터를 걸어 중남미를 답사했다. 저서 『코스모스』(1845)에서 우주는 자연과 물체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며, 관찰자의 흥분, 기쁨, 심미안 등의 정서가 어린 세계라고 표현했다. 

지구 안에 인간이 서식하고 있고 인조의 조경이 자연의 풍경과 同席하고 있는 이상, 지리학에서 인간적 요소를 제거할 수 없다. 지리학은 물질구조와 인조구조의 상관성, 즉 자연과 문화의 종합을 모색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지리학에 맞선 문화지리학은 훔볼트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광범위한 답사와 탐험을 토대로 자연세계를 설명하기도 했지만, 과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물리세계를 인간의 자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희로애락의 근원으로도 봐야 한다며, 지리적 체험의 영역을 인간의 정서와 인식세계로 확장시켰다.

우리는 지금 세계화된 통상과 IT시대를 살고 있다. 경제와 과학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결과물과 새로운 발명에만 열중하다 보면, 삶에서 주객이 전도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질주의에 빠져, 부와 행복을 동일시 하고, 부의 추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큰 비극을 초래한다.

공감(empathy)이 없는 과학자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을 생산할 뿐이다. 상공시대 인문·교양교육은 지식만이 아니라 지혜도, 기술만이 아니라 예술도, 개념만이 아니라 이념도, 天文만이 아니라 인문도 추구하는 ‘인성교육’인 것이다.

김진우 일리노이대 명예교수

미국 UCLA에서 언어학 박사를 했다. 1967년~2006년 미 일리노이대에서 언어학과 교수를 지냈다. 2007년부터 연세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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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참 2009-12-17 11:36:31
"하버드대의 이란 전문가인 리처드 프라이 교수는 그의 저서 『페르시아의 유산』(1963)에서,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 왕궁에 볼모로 와있던 그리스왕자가 했다는 말을 인용했는데 인상적이다. '내가 여기 와서 본 즉, 우리나라와 대왕의 나라 사이에 큰 차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무서워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법을 무서워합니다.' 프라이 교수는 바로 이것이 그리스를 문명국 페르시아를 미개국으로 만든 요인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1963년에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2009년에 이런 식으로 말하면, 오리엔탈리즘, 유럽중심주의, 백인우월주의가 뼛속 깊이 물든 사람이라는 비판과 비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참으로 용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