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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09.12.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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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⑮ 국화

국화, 코스모스, 해바라기, 산국, 쑥부쟁이, 구절초들은 죄다 菊花科植物이고, 가을꽃은 얼추 여기에 든다. 그 중에 코스모스를 본다. 그것의 우리말이름은 ‘살살이꽃’이다. ‘살살이’란 ‘가냘프면서도 고움’을 나타내는 말로 가늘고 약한 몸이 실바람에도 부드럽게 할랑거리는 모양을 말하지 않는가. 살살이꽃은 하늘하늘 바람결에 온몸을 살랑거리다가는 힘찬 강풍이나 자동차 바람에 이리저리 세차게 일렁거린다. 群舞가 따로 없다.

살살이꽃은 멕시코가 원산지라는데, 더운 곳의 식물들은  꽃색이 강렬하다. 하여, 코스모스는 붉은색, 흰색에다 그 중간색인 분홍색 꽃이 主宗을 이룬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교정에서 물 가득 머금은, 꽃망울을 한 옴큼 따서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넌지시 또래 여고생들의 목덜미에다 꾹꾹 눌러 물세례를 퍼부었었지. 물벼락에 기겁한 그녀들이 고개 뒤돌려 “문디(문둥이)자석 지랄한다”고 오지게 욕 대꾸를 하지만 그래도 그게 마냥 즐거웠으니…. 늙으니 장난기도 줄어들더라.

코스모스는 ‘우주’라는 의미가 있는가하면 ‘질서와 조화의 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즉, 혼돈에 맞서는 말이다. 살살이꽃의 꽃말은 청순한 ‘소녀의 순정’이라하며, 神 처음 習作한 꽃이라고 하니 세상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꽃인 셈이다.

국화과식물의 꽃은 모두 한 송이가 머리를 닮아 頭狀花라 칭한다. 국화나 코스모스는 여러 개의 낱 꽃이 한데모여서 하나의 꽃송이를 이루는데, 꽃송이 둘레에 나있는 여덟 장의 커다란 꽃은 그 모양이 혓바닥을 닮았다고 하여 舌狀花라 하고, 그것은 씨를 맺지 못하는 不稔性 꽃이다. 안에 촘촘히 박혀있는 꽃 같잖아 보이는 꼬마 꽃이 진짜 꽃으로 管狀花(대롱 꽃), 또는 中心花라 부르며, 이것이 兩性花(암술 수술 모두를 가진 꽃)로 씨를 맺는다. 암튼 안에 들어있는 못 생긴 작은 꽃이 진짜 꽃이다.

그럼 씨도 맺지 못하는 주제에 커다란 둘레 꽃은 왜 갖추고 있단 말인가? 잠깐 해바라기 꽃을 보자. 양푼이 만한 꽃 둘레에 노랗고 큰 가짜 설상화가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다. 해바라기도 국화과 식물이라 그렇다. 어쨌거나 중심화가 발달하지 않아서 蜂蝶이 꽃을 알아보지 못하기에 이런 커다란 꽃을 달아서 곤충들에게 “우리 여기 있다”고 알리고 있는 것이다. 거참, 꽃들도 예사롭지 않구나.

‘들국화’란 보통 가을철 산이나 들에 일제히 피는 국화과식물을 통칭하는 말로, 구절초 속(屬), 쑥부쟁이 속, 개미취 속들의 식물이 여기에 든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들국화란 국화과의 山菊(Chrysanthemum boreale)과 甘菊(C. indicum)을 일컫는 것인데, 이 식물들은 길가, 마을 주변의 비탈진 언덕배기 등 주로 나지막하고 양지 바른 곳에 자란다. 단풍이 질 무렵이면 그 자그마한 꽃을 떼거리로 피운다. 들국화는 색이 노랗다고 黃菊, 야산에 핀다고 野菊이라 하며, 氣稟을 지닌 산국과 감국은 다년초이고 이파리에는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의 크기는 감국이 산국보다 조금 크다.

그런데 흔히 들국화 하면 쑥부쟁이나 구절초를 묶어 말한다. 실은 산국이나 감국은 그리 많지 않아서 보고도 지나치기 일쑤이나 쑥부쟁이와 구절초는 흐드러지게 핀다. 모두가 국화과식물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들국화라 불러도 그리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 둘은 꽃 색을 제하고는 보통사람 눈으론 차이가 없어 보인다. 쑥부쟁이는 꽃이 보라색이지만 구절초는 불그스름하거나 흰색이고, 구절초는 꽃송이가 좀 큰 편이다. 九折草는 5월 단오 때는 줄기가 다섯 마디가 되고, 9월 9일(重九日)에는 아홉 마디가 돼 이때 줄기를 잘라 말려서 약으로 쓴다. 산국과 감국이 낮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들국화라면 구절초무리들은 高度가 좀 높은 곳에 自生한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시인 고은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이가 꽤 들어야 볼 수 있는 것이 더러 있으니 그것이 늙음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가을을 죽음과 등을 대고 사는 喪失의 계절이라 했던가. “국화야 너는 어이 三月春風 다 지나고 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나니 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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