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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 공정성 훼손 … 학문의 자유 침해당했다
절차적 공정성 훼손 … 학문의 자유 침해당했다
  • 강수돌 고려대·경영학
  • 승인 2009.12.07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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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HK 연구사업 1위 후보 탈락 사태를 접하고

2009년 인문한국지원사업(HK) 선정 과정에서 1차 전공심사 및 2차 면접심사를 거친 결과 월등한 1위를 차지했던 중앙대 독일연구소가 마지막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탈락하고 만 사태는 학계에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이 연구소는 2009년 HK 해외지역연구 소형분야에 지원해, 객관적이고도 엄정한 심사를 거친 결과, 총 12개 과제 중 2위와도 현저한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연구재단의 최종 결정에서 놀랍게도 탈락했다. 정부의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지원 사업에서 1위 후보 과제가 탈락한 일은 과거의 군사 독재 정권 시절조차 없던 일이다.

이번 중앙대 독일연구소의 HK지원사업 최종 탈락 사태는 현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역주행’의 생생한 예다. 세계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역주행의 주인공은 2009년 예산 규모가 2조 7천억 원에 이르는, ‘한국연구재단’인데 그 홈피엔 이렇게 외치고 있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연구 및 인력 양성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국가의 연구 경쟁력을 제고하고 나아가 선진국가로의 발돋움에 초석이 되겠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은 2009년 6월 26일, 기존의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등이 통합돼 “국가 기초연구지원시스템의 효율화 및 선진화”를 위해 새로이 출발한 교과부 산하 국가 기관이다.

그런데 중앙대 독일연구소 사태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는커녕 방해하며 “연구 경쟁력”을 제고하기보다는 억압하며, “선진화”보다는 후진화의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비판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절차적 공정성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의 자유라는 문제다. 절차적 공정성이란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관련된 당사자들이 납득 가능하게 객관적이고 투명하며 합리적인 절차를 지키는 일이다. 한 마디로, 어느 누구도 그 최종 결과에 대해 ‘억울함’이나 ‘부당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 과정을 진실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절차적 공정성을 제대로 지키려면 한편으로는 내재적으로 결정 기준의 일관성, 투명성, 객관성이 유지돼야 하며, 다른 편으로는 외재적인 영향력 변수, 예컨대, 정치적 고려나 연고 관계, 로비나 뇌물 등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1차 전공심사와 2차 면접심사까지 합리적으로 종결한 결과에 대해 겉으로 내세우는 해명(“제3세계 우대 원칙, 단일국가 연구 불리”)과는 달리 ‘정치적 고려’에 의해 비합리적인 결론을 내고 말았다는 점에서 절차적 공정성을 크게 훼손한다는 여론이다.

다음으로 학문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 제22조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에 속한다. 학문의 자유란 보다 구체적으로 학자적 양심에 따른 학문의 독자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국가의 간섭이나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말한다. 이번 중앙대 사태도 그 이면엔 연구책임자인 김누리 교수가 2009년 6월 3일, 중앙대 교수 시국선언을 주도했다는 점이나 공동연구자들 대부분이 시국선언 참여자들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의 부당성 여부는 행정소송을 통해서도 해명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삼척동자가 보더라도 학문의 자유가 심각히 침해당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연구재단은 스스로 내세우는 구호와는 달리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며 절차적 공정성을 훼손함으로써 학술 연구의 선진화나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될 소지가 크다.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는 데는 ‘시기’가 따로 없다. 2002년까지만 해도 ‘합헌’이라 결정됐던 ‘혼인빙자간음죄’가 2009년 들어 바로 엊그제 양성 평등 및 성의 자기 결정권 원칙, 사생활 국가간섭 배제라는 관점에서 ‘위헌’으로 결정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번 중앙대 독일연구소 사태도 잘못된 결정을 솔직히 인정하고 바로잡는다면 어느 누구도 비난하기는커녕 뒤늦게나마 박수를 보낼 것이다. 중앙대 독일연구소만이 아니라 양심적인 학문 세계의 모든 관계자들은 교과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양심적인 결단을 기대하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강수돌 고려대·경영학

독일 브레멘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등이 있다. 사회공공연구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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