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4:50 (금)
[초점] 계약 당시 신임교수들이 챙겨야 할 것들
[초점] 계약 당시 신임교수들이 챙겨야 할 것들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2.04.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4-12 15:29:49
지난 3월1일자로 영남지역의 모 대학 전임강사로 임용된 이 아무개 교수(36세, 법학과)는 최근에 와서야 대학과 작성한 계약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했다. 올해부터 임용되는 교수들은 모두 계약제 신분이라는데 계약내용이 너무 허술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2월 중순, 대학과 계약한 사항은 크게 3가지. 2년간 법학과 교수로 임용한다는 ‘근무기간’과, ‘근무조건’, 그리고 연봉을 합의했다는 점에서 ‘급여’ 등이 계약사항이었다. “사실 교수가 된다는 기쁨에 학교가 내민 계약서의 조항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힘들었던 강사생활을 접고 전임교수가 되는데 그러한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 있겠는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했다. 그런데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계약서가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이다. 계약서대로라면 어떻게 해야 2년 후 재임용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김 교수와 같은 사례는 특히 올 상반기에 임용된 교수들에게서 자주 발생한다. 이들 교수들은 아직 각 대학의 규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가운데 임용됐기 때문에 자칫 잘못된 계약이라면 이후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으로 계약임용제 시행이 공식화되긴 했지만 어떤 내용이 바뀌었는지 계약제 교수들에게 분명하게 공지가 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이긴 마찬가지.

원칙적으로 공정한 계약임용은 계약당사자인 교수와 대학이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조건을 밀고 당기는 과정을 수반해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상론이다. 고달팠던 학문후속세대로서의 여정에 종지부를 찍고 학자의 신분을 부여받는 계약서는 신임교수들에게는 ‘구원서’이기 때문에 대학이 내민대로 싸인하기가 쉽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러했지만 지금부터는 그렇지 않다.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으로 계약서를 넘겼다가는 생각지도 않은 조항에 걸려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법적으로 신임교수들이 대학과 계약할 사항은 5가지이다. 근무기간, 급여, 근무조건, 업적 및 성과, 재계약 조건 및 절차 등은 분명히 계약서에 명시돼야 한다. 법적 의무조항이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신임교수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재계약 조건과 절차’이다. 교수가 된다는 기쁨에 취재해 재계약 할 때의 조건과 절차를 챙기지 않는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대학이 제시하는 재계약 조건은 대체적으로 근무기간 중에 달성해야 할 연구·교육·봉사업적이다. 무리한 실적을 요구한다면 당연히 조정을 요구해야 한다. 더욱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은 재계약 절차이다. 임기만료이전에 대학의 통보 의무, 업적평가 방식과 절차 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기만료와 동시에 대학이 교수를 자동해임해도 대응할 길이 없다. 재임용 탈락을 두고 법적 소송이 벌어질 수 있는 경우는 대학측이 재계약 조건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때로 제한된다.

근무기간도 중요하게 살펴야 할 내용이다. 계약임용제 하에서 근무기간은 대학과 당사자가 정하기 나름이다. 1년 단위로 계약할 수도 있고, 처음 임용된때 부터 정년을 보장받을 수도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대학은 직급에 따른 근무기간을 정관과 인사규정 등에 명기하고 있다. 문제는 근무기간을 ‘계약으로 정하는 기간’ 식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경우다. 이 경우 대학이 6개월 마다 계약을 요구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계약임용제이기 때문이다.

근무조건 또한 분명히 챙겨봐야 할 내용이다. 근무조건으로 정하는 사항은 통상 주당 수업시간, 연구비 지원, 연구실 배정, 연구지원 인력 배정, 근무지, 소속기관 등이다. 이 또한 잘못 정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터무니없긴 하지만 야간강의만 맡는다든가, 주거지는 소속 대학 인근이어야 한다든가 하는 내용을 대학이 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실제 주거지 문제는 지방대들이 근무조건으로 자주 내세우는 조항이다.

또 하나 ‘그밖에 대학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도 계약조건으로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조항을 통해 대학들이 주로 내세우는 내용은 근무기간 중 해임사유이다. 해교행위를 한다든가, 교수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않았다든가 하는 애매모호한 규정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규정이 애매모호할수록 해임사유로 확대·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야 한다. 특히 계약임용제가 신임교수들에게 불리할 수 있는 것은 집단계약이 아니라 1:1 계약이라는 점에 있다. 이미 계약을 완료한 신임교수들도 자신의 계약서에 불합리적인 내용은 없는지 다시한번 살펴봐야 한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