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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색채의 몸짓을 통해 재현한 신화의 세계
역동적인 색채의 몸짓을 통해 재현한 신화의 세계
  • 박재홍 시인·예향갤러리관장
  • 승인 2009.11.30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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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평_ 최영란무용단 ‘바람! 부딪쳐 울다’ (11월19일, 대전예술의전당)를 보고

현대인이 이해하는 물질이라는 단어의 개념은 고대 연금술의 개념과는 무관하다. 세상사 소통이 원활치 않으면 어떻게 될까라고 묻는 무용가 최영란(목원대)의 물음은 어쩌면 감지될 수 있는 물질적인 것과 보이지 않는 정신적 세계와의 혼합을 원하는 연금술적 개념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최영란무용단이 지난 19일 선보인 ‘바람! 부딪쳐 울다’는 그런 점에서 물질과 정신의 소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대전부사동의 설화 ‘부사칠석놀이’를 현대무용으로 재현한 것이다. ‘제1장 바람에 부딪쳐 울다’는 우리 인체의 구성이 주는 물의 이미지와 그것을 어루만지는 바람의 질곡과 인연이 헛헛한 춤꾼의 춤사위가 됐고 원시적인 신화의 바위가 돼 역사 속에 이야기의 주인이 된 것을 표현했다. ‘제2장 역사의 껍질을 깨고’는 찰나의 인연이 주는 지순함을 표현했다면, 제3장은 전쟁의 상흔을 떠도는 원혼들의 이야기다. 하루 하루가 모두 전쟁인 지금 사랑의 가치가 단발성 순간에 얽힌 현대를 몸을 통해 이야기하기 시작해 대미에 이르러 제4장에서는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 드러나고 소통하고 싶어한다. 

처음에는 개인사에서 시대적 상황의 제물이 된 사랑으로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승화된 사랑의 계기가 되고 인구에 회자되며 마을의 전체 놀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극적인 요소일지는 모르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발전한 작금의 현실에서 자칫 남녀 상열로 빠질 수 있는 오류의 위험성을 벗어나 사물의 강한 비트의 음악을 바탕으로 절도 있고 무게 있으며 역동적인 색채의 몸짓을 통해 설득력 있게 넘어선 모습을 보여준다.

지역설화를 통해 승화된 사랑의 힘을 원시 형태의 덩어리로 제시하는 군무, 2인무, 독무를 통해 그녀의 안무는 차라리 절박했다. 서구적인 현대무용의 고루한 모습이 아닌 지역 설화를 차용해 보여주는 그녀의 지역 사랑에 대한 고집은 물론 세속적인 단순한 사랑의 구전설화를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소중한 가치에 대한 낯익은 표정을 통해 만들어 내고 또 전체 4장의 막을 통해 일관성 있게 표현해냈다. 지역을 사랑하고 자신의 토양이 된 대전을 사랑하는 그녀와 제자들의 작품 속에서 녹아나 하나 된 모습에 작은 박수를 보낸다.

그 일관성은 부사칠석놀이라는 지역 설화를 근간으로 구성돼 있는 이야기이나 사실은 땅, 공기, 물, 불의 4원소에 따라 물질과 정신의 양상이 재구성돼지고 제5원소 사랑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기에 그녀의 작품은 다양한 소재의 발굴과 새로운 인식의 틀을 깨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사회를 본 어느 교수의 말처럼 무용극이라고 지칭하기에는 필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춤꾼은 연금술사와도 같다. 통일적인 세계에 몸을 통해 접근하는 특별한 양식의 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춤꾼은 자연의 숨은 비밀에 대한 기본 요소와 성질을 알아야 하고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외부의 환경 즉 자연과 소우주인 인체의 내부에 변환을 주는 예술성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가능성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결국 춤꾼 최영란이 펼치는 무대 위의 이야기는 이렇다. 정신의 발현은 당연히 물질적 지주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물질은 곧 영적인 자연의 어떤 내용물을 덕 입지 않으면 홀로 존재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그녀의 남은 장도에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당찬 자신에 대한 혹독함이 묻어나는 고행이 시작되길 바랄 뿐이다. 몸은 원래부터 헛헛한 공기 같은 것일 테니까.

박재홍 시인·예향갤러리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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