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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서울대 유감
[원로칼럼] 서울대 유감
  • 교수신문
  • 승인 2002.04.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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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2 15:06:13
외국으로 유학 가서 공부하던 몇 년을 제하고는 정년을 한 작년 여름까지 40년이 넘는 세월을 한 번도 대학을 떠난 적이 없는 한 사람으로서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음을 나무라지 말기 바란다. 그래서 갖는 노욕의 미련이라고 매도한다해도 어쩔 수 없지만 정말 요즈음 돌아가는 서울대에 대한 갖가지 여론의 화살이나 교수들의 불만에 대해서는 나도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는 답답한 심정이다.

어쩌다가 우리나라 대학을 상징해 온 서울대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저간의 사정을 서울대에 대한 일반인의 질시정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사안이라고 느껴진다. 흔히들 한 나라가 붕괴되는 것은 외적의 침략보다 내부의 갈등과 분열이 선행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서울대학교의 이런 위기(!)는 대학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중심 축의 하나인 교수들간의 갈등이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지 않은지 우려된다.

대학 보직의 짧은 경험으로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대학이 가고자 하는 올바른 길을 방해하는 것은 교육부나 사회 여론이 아니라는 확신이다. 오늘 우리나라 대학들이 겪고 있는 갖가지 어려움은 궁극적으로 대학을 맡아 이끌고 있는 총장이나 학ㆍ처장들이 그 대부분의 책임을 떠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대학경영 정책이 제시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대학 구성원인 교수들의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대학 당국의 결정에 반발하는 교수의 수가 다수를 이룰 때는 결과적으로 대학 발전은 지지부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대의 경우도 BK 사업이 그러하였고, 교수공채나 대학교육을 공리적으로 몰고 가는 저간의 정책 또한 그러하였다. 비록 토론과 협의를 거치는 과정이 다소 길고 힘들어 결단이 좀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대학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일이라면 구성원인 교수들이 활발히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런 진통을 겪으며 의견 수렴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서로 상반된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면 그야말로 총장이 사안을 결단하고, 저간의 사정을 구성원들에게 설명하여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오늘 서울대가 맞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오랜 역사 속에 정립되어 온 서울대학교의 정체성이 붕괴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현 집행부가 효율성을 앞세워 학문을 인기 위주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기초학문에 대한 홀대로 이해되었고, 정년 퇴임한 교수들의 T/O를 본부가 회수하여 수요가 많은 학문분야에 재분배하고자 시도한 일이나, 인문, 사회, 자연대학 순의 단과대학 배열을 가나다순으로 바꾸는 일 등이 그러하였다. 이런 일들은 기초학문을 중심축으로 하여 응용학문을 외곽에 포진시킨 서울대학교의 교육철학과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어서 기초학문분야 교수들의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국립 대학이 지닌 사명에 걸맞도록 소외되고 인기 없는 기초학문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배려하여, 국가발전의 균형 잡는 일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 인기 있는 응용분야는 사립 대학에 맡겨도 훌륭히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교수들이 교육과 연구에 얼마나 무한책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교수들에 대한 채찍은 이 자존심을 회복시킨 후의 일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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