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22:05 (화)
“내성 대비한 연구기반 구축” … “거시적 측면 인식 전환 필요”
“내성 대비한 연구기반 구축” … “거시적 측면 인식 전환 필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11.23 13: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학동향_ 신종플루를 진단하는 두 시선

신종플루가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계절 독감보다 못한 전염병인데 괜히 사람들이 주눅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1918년 창궐했던 스페인 독감처럼 실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면서 확대될 것인가. 그렇다면, 학계는 어떤 진단을 제공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 성백린 연세대 교수(생명공학)와 강윤재 한양대 강의교수(과학사회학)가 최근 발표한 글들이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성백린 교수는 최근 간행된 <지식의 지평>7호(2009)에 「신종 인플루엔자-바이러스학 및 예방의학적 위기관리에 관한 최근 동향」을 발표, “이제 국가는 초동 대응 차원을 넘어서는 선도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국내 전문가 집단을 모으고 구성해 효과적인 백신, 차세대 치료제 후보를 발굴하고 R&D연구기반을 구축해야할 시점에 온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신종플루에 적극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반면, 강윤재 교수는 <녹색평론>109호(2009년 11~12월)에 발표한 「신종플루와 현대문명」을 통해 “기존의 접근들이 가지는 한계를 거시적 차원, 즉 인류문명과 전염병의 관계에서 새롭게 해석해보고자” 시도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두 연구자의 시각은 일방주의적 해석을 경계한다. 성 교수는 유전자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이유, 신종인플루엔자의 정체 등을 설명하고, WHO가 권장하는 위기관리 방안의 연장선에서 치유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현실적 요구를 충족하고 있다. 반면, 강 교수 논의의 파급력은 전염병을 퇴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우리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문명사적 진단에 힘을 실었다. 두 글의 주요 맥락을 상호 보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사고의 틀을 확대해보자는 취지에서 주요 논의를 발췌한다.

◆ 성백린 연세대 교수
신종플루가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 발전할 것인가. 세 가지로 점쳐볼 수 있다. 첫째, 몇 개월 지속되다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다. 10여년 전 갑자기 등장했다 사라진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와 비슷한 시나리오다. 둘째, 인체 감염은 확산되나 점차 병원성이 감소되고 약독화가 진행돼 사망률이 낮은 바이러스로 천이된다. 즉 매년 겨울에 유행하는 유행성(계절형) 독감으로 정착한다는 시나리오다. 셋째, 현재의 인체 대 인체 감염으로 확산되면서 병원성이 증대돼 전파력과 사망률이 높은 펜데믹(pandemic)으로 발전한다는 시나리오다.

신종플루를 포함한 팬데믹에 의한 인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국제적인 현안과 이의 위기 관리 방안에 대해 WHO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하고 각국에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첫째, 기존 주사제로 사용하는 백신 대신 코에 스프레이 형태로 사용하는 약독화 백신 개발이다. 둘째, 기존 백신의 효능을 증강시킬 수 있는 면역증강제(adjuvant)의 사용이다. 셋째, 세포배양법에 의한 백신 생산 기술을 독려하고 있다. 일단 유사시 H5N1형 같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농가에 발생해 양계의 폐사 시 수정란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 이는 수정란을 사용하는 독감 백신 생산에 치명적인 적이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수정란 대체 세포 배양에 의한 백신 생산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

세 가지 시나리오와 국가 R&D 문제
예방 백신을 사용하는 선제적 대응 외에도 감염자의 치료에 사용되는 항바이러스의 사용도 필수적이다. 문제는 내성 바이러스 출현이다. 근본적으로 인플루엔자의 경우 항바이러스제 내성 출현을 최소화하기 위해 2~3개 이상의 항바이러스제의 병용 투여를 진행해야 한다. 독감 바이러스의 경우 이러한 병용 투여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타미플루, 릴렌자 외에 추가적인 독특한 항바이러스 약제를 개발해야 한다.

신종플루 백신의 조기 생산과 비축에 관한 사회적인 코스트-베너핏에 대해 논란도 예상된다. 해외의 경우 아직 확산되지 않은 질병(예: H5N1형 AI)에 대한 백신 비축의 코스트-베너핏 분석은 기본적으로 보험료 산정 기준에 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정부의 고민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전 국민 접종이 가능한 백신의 비축에는 장기간의 시간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이 확산되지 않을 경우 필요 이상의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난을 직면해야 한다. 신종플루 관련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국가가 큰 비용을 들여서 백신과 치료제를 비축하고 장기간의 연구 개발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이 확산되지 않아서 그동안 대비에 들어간 모든 비용이 손비 처리되고 백신과 치료제는 쓸모없어지는 것이다. 국가가 대책 마련에서 가지는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신종 플루를 포함한 감염성 질환에 대한 국가R&D의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플루엔자는 그 유전자의 특성상 현재의 H1N1형 신종플루 외에도 또 다른 신종플루가 발생될 것이다. 이미 지난 10년간 고병원성 H5N1 바이러스와 H9N2형, H7N7형 조류 바이러스, 그리고 최근 H1N1형 신종풀루 등을 미뤄볼 때 이는 예측 가능한 것이다. 플루의 확산 속도는 이미 이 지구촌에서 사람의 이동 속도가 증가함과 비례해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백신 비축과 항바이러스제 내성 문제는 내년, 내 후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이제 국가는 초동 대응 차원을 넘어서는 선도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국내 전문가 집단을 모으고 구성해 효과적인 백신, 차세대 치료제 후보를 발굴하고 R&D연구기반을 구축해야할 시점에 온 것이다.

◆ 강윤재 한양대 강의교수
국내에서 이뤄진 신종플루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는 신종플루 확산 방지(예방)와 치료에 집중돼 있다. 예방과 치료에 대한 논의는 크고 작은 소동을 거쳐 결국 예방백신과 항바이러스제의 확보 및 효과문제로 수렴됐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신종플루의 예방책과 치료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사회구조적 접근은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주기는 하지만, 예방과 치료의 관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관점들은 신종플루를 무서운 ‘적’으로 보고 있으며(따라서 우리는 현재 신종플루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고), 현재의 위기를 넘기는 것이 급선무이며,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과학기술(그 산물인 백신과 항바이러스제)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백신과 항바이러스제는 위기 탈출을 도와줄, 거의 유일한 지원군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사방이 온통 지뢰로 널려 있는 지뢰밭 한가운데 서 있는데, 과학기술이라는 ‘지뢰 탐지봉’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신종플루를 분리된 하나의 실체로서가 아니라 전염병과 인류문명이라는 거시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느닷없이 출현한 ‘적’의 공격 때문에 궁지에 빠진 것이 아니라, 수없이 겪어 왔던 일을 조금 색다르게 다시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서,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서 생태적 차원에서 신종플루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인류문명과 전염병은 공진화(coevolution)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신종플루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적’의 이미지에 기초해 퇴치를 강조하는 위생학이나 전염병학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순환과 작동원리라는 보다 근본적 시각을 제공하는 생태학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멸이 아닌 공존 전략 모색
신종플루 사태는 우리에게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신종플루를 단순히 외부의 침입자이자 ‘적’으로 보고 괴멸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다. 세균과 바이러스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생존과 번식(번영)에 관심이 있다면 그들 또한 그렇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의 박멸(사생결단)전략이 아닌 공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병균과의 공존이라니 선뜻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서로가 상대방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 전략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산발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전략의 기본적 성격은 과학-의료적 접근은 물론이고 사회문화적 접근, 더 나아가서 생태적 접근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 될 것이다. STS의 관점과 연구성과는 이를 위해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염병에 대한 과학 연구와 더불어 우리의 삶과 사회구조, 더 나아가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전문가들은 물론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전염병의 귀환’과 관련, 하나 더 고려할 문제는 기후 변화이다. 기후변화의 가속화는 기존의 기후패턴을 뒤흔들어 생태계의 안정성을 크게 해치고 있다. 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류문명과 전염병의 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다시한번 신종플루 사태가 개별 사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환경-인간-문명의 관계망 속에 놓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걸맞게 우리의 인식의 지평도 관계망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정리 최익현 기자bukhak64@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