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6:00 (금)
[문화쟁점] 미대사관 이전 부지로 전락한 덕수궁터
[문화쟁점] 미대사관 이전 부지로 전락한 덕수궁터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4.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4-08 15:45:53
물론, 지금은 옛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덕수궁의 돌담길, 옛날의 돌담길’은 지금도 여전히 서울에서 사색에 잠겨 걸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개나리 만발한 봄과 낙엽 흐드러진 가을이 아니라도, 돌담 사이사이 새겨놓은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며 걷는 맛은 그런대로 운치 있어 사계절 사랑을 받는 길이다. 그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 이 지역이 품고 있는 역사가 하나 둘 밝혀지면서 지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논란이 일고 있는 선원전터(전 경기여고 자리). 왼쪽위에 멀리 덕수궁이 보인다. 현재는 미국'보안관'의 이름으로 출입을 막고 있다.

김정동 목원대 교수(건축사)는 최근 서울학 연구소(소장 홍대형 서울시립대 교수. 건축학)에 제출한 논문에서 “옛 경기여고 자리는 우리 덕수궁의 한자리였는데 (미국대사관 이전 예정지가 되면서)이제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버렸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격분했다. 김 교수의 논문을 살펴보기에 앞서 논란이 일고 있는 옛 경기여고터의 최근 약사를 되돌아보자.

말로 주고 되로 받은 불평등 거래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서울의 핵심지역 곳곳을 무상으로 점유해왔다. 그 동안 개정된 한미협정 등을 통해 한국정부는 미군 점유지의 반환을 촉구해 왔고, 결국 1980년대 무상점유지 가운데 하나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을 반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1986년에 미국대사관측은 미국문화원 등 미국이 소유하고 있는 땅과 서울시 소유의 정동 경기여고터를 맞교환하는 대사관 이전을 계획한다.

서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세종로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미대사관 땅을 돌려받음으로써 한국정부는 미국에게 잃었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내세울 수 있게 됐다. 미국 또한 15층 규모의 신축건물을 지어 옮김으로써 부족한 공간문제를 해결하고, 그 동안 대사관이 대로변에 노출돼있어 반미시위의 표적이 돼 왔던 문제도 해결하는 등 몇 가지의 실리를 한꺼번에 챙겼다. 외교통상부와 서울시 그리고 미대사관을 통해 확인된 최근 정동일대의 약사는 미국의 신식민지라는 오명을 얼마간이나마 벗어나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김정동 교수의 논문과 시민단체의 주장을 검토해보면, 미대사관 반환과정에서 한국정부는 오히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민족의 자존심을 영원히 묻어버린 꼴이 되고 만다. 김 교수의 논문에 따라 정동과 경기여고 터의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1897년 황제로 등극한 고종은 경운궁(현재 덕수궁)을 신궁으로 정하고 선원전을 세웠다. 선원전은 당대왕의 4대조 전왕들과 태조의 영정을 모셔놓고 왕이 수시로 다례를 올리던 장소인만큼 신성하게 모셔져야 할 곳.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정동 일대에 러시아 공사관을 비롯한 외국 공사관들이 들어서면서 선원전은 덕수궁 중심에 자리잡지 못하고 궁 북서쪽으로 옮겨졌다. 대한제국 황실은 덕수궁 지역을 ‘寧의 공간’으로 보고 5백 미터 이내 지역에 대해 개발을 제한하고 집의 높이도 제한했다. 조선왕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1910년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일본은 임의대로 덕수궁 부속건물을 일반에게 팔아버리고 궁을 일개 공원으로 전락시킨다. 이 과정에서 일제가 조선 왕실의 성지인 선원전을 그대로 놔둘 리는 만무한 일. 선원전을 무너뜨리고 덕수궁의 수많은 유적들은 그대로 땅에 묻어버린 채 그 자리에 경성제일여고를 세운다. 경성제일여고는 해방 후 경기여고로 이름이 바뀐 채 쓰이다가, 1988년 경기여고가 강남 개포동으로 이사가고 난 뒤 공터로 남게 된다. 구한말 조선황실의 정신적 지주였던 선원전 자리가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채 공터로 방치돼온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는 이에 앞서 이 땅을 미국이 소유하고 있던 미국문화원 등과 바꾼다.

결국 미국이 무상으로 점유하던 토지를 반환 받아 자존심을 되찾은 듯 보였던 정부의 성과는 역사적 유물을 영원히 묻어버리는 ‘엄청난 실수’로 귀착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논문을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제기한 김정동 교수는 “대사관 건립계획을 철회시키고 다시 덕수궁 지역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미대사관 자리로 정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공사에 들어가지 않고 공터로 남아 있는 지금이 덕수궁을 복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

역사와 문화에 앞서는 치외법권

그 동안 정동지역의 문화유산 발굴에 노력해왔던 강찬석 문화개혁시민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도 “원래 덕수궁은 현재의 3배정도의 규모로 경희궁과 연결됐었다.

 ◇ 최근 복원된 금천교. 경희궁 옛터에서 발굴됐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덕수궁 돌담길’이 바로 그때 일본이 두 궁궐 사이를 가로질러 낸 도로”라며, “선원전 자리에 미국대사관이 세워진다면 1백년 전 일본이 파묻은 것을 영원히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강 위원장은 또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을 세울 당시에도 공사 과정에서 묻혀있던 경희궁터를 발견해냈다. 역사박물관 앞에 복원된 금천교는 그때 발견된 것이다. 또한 임금이 사용하는 우물인 ‘어정’이 발굴된 바 있다.”며 “아마도 선원전 자리에는 경희궁 터보다 훨씬 더 많은 유구들이 발굴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문화재 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 발굴조사를 지시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미국대사관 이전 예정지는 치외법권지역이기 때문에 상호협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대사관 신축계획은 설계과정에서 교통영향평가에 적합하지 않아 서울시가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