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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이어 인기 원작 소설들, 무대에서 반짝거리는 이유
‘남한산성’이어 인기 원작 소설들, 무대에서 반짝거리는 이유
  • 우주영 자유기고가
  • 승인 2009.11.0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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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계에 등장한 ‘노블컬’ 바람

지난달 29일 막을 올린 뮤지컬 「남한산성」의 바람이 심상치 않다. 공연 시작 전부터 티켓 예매 순위 1위를 석권하더니 11월 4일 공연이 막을 내릴 때까지 연일 매진 사례였다.
이는 창작 뮤지컬 초연작이란 점을 고려할 땐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뮤지컬 「남한산성」의 원작이 소설가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이라는 것이다.

이에 소설이 무대 위에 오르는 일명 ‘노블컬(Novel+Musical)'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남한산성」 외에도 정이현과 김영하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잇따라 초연을 앞두고 있다. ‘무비컬(Movie+Musical)’에 이은 ‘노블컬’의 열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의 무대에 오르는 정이현 원작의 「달콤한 나의 도시」(오른쪽 포스터)와 원작 소설(사진 아래 왼쪽). 김영하의 『퀴즈쇼』(사진 아래 오른쪽)도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노블컬’의 약진이 시작됐다. 포스터제공=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의 역사= 사실 소설이 뮤지컬의 원작이 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양한 예술 장르가 복합적으로 구현되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뮤지컬은 기존의 장르에서 조금씩 소스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연극평론가인 이진아 숙명여대 교수(국문학과)는 “한 장르에서 성공한 것을 다른 장르로 옮기는 것 자체가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뮤지컬이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다 보니 소설 원작의 뮤지컬도 함께 이슈화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는 해외 뮤지컬의 역사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라 일컫는 「레 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은 각각 빅토르 위고와 가스통 노와의 소설이 원작이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과 「노틀담 드 파리」의 원작 역시 셰익스피어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다. 국내의 경우 1991년, 국내 최초의 전문 뮤지컬 프로덕션인 에이콤인터네셔널이 이문열의 소설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뮤지컬 「명성황후」를 히트시킨 사례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소설 원작의 뮤지컬이 늘어난 데엔 앞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들의 성공사례가 본보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뮤지컬학과)는 “기존 소설에서 이야기를 차용하는 건 이미 연극에서 시작한 흐름이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자 뮤지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라며,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유= 뮤지컬이 소설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 소설이 가진 이야기의 힘이다. 베스트셀러 작품이라면 탄탄한 이야기 구조는 물론이고 대중성까지 검증받은 것에 다름없다. 정소혜 신시컴퍼니 기획실장은 “뮤지컬 각색을 위한 작품을 고를 때, 원 장르에서 얼마나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이는 올 상반기,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뮤지컬 무대에 올리는 이른바 ‘무비컬(Movie+Musical)’이 대거 제작됐던 상황과 유사하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뮤지컬의 경우 영화든 소설이든 이미 완성도가 검증된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그만큼 위험부담도 적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이 가진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통해 뮤지컬 소재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도 꼽힌다. 현재 국내 뮤지컬 시장은 대극장 위주의 라이선스 작품이 전체 뮤지컬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이때 소설을 통한 이야기 소재의 확장은 궁극적으로 국내 창작뮤지컬 시장의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언뜻 활자매체인 소설을 무대 위로 재탄생 시키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이슬비 신시컴퍼니 홍보담당은 그 어려운 과정에서 도리어 더 많은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를 뮤지컬로 옮기는 것은 두 장르가 모두 시각매체이고, 러닝타임도 비슷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다. 하지만 소설은 방대한 양을 줄여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시각화해야 하므로 더 많은 각색과정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 작품 현황과 평가= 올해 소설을 뮤지컬로 올린 첫 작품은 핀란드 소설가 아르토파실린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기발한 자살여행」(3월 12일, 두산아트센터)이었다. 최근 막을 내린 「남한산성」외에 지난해 TV드라마로도 제작됐던 정이현의 소설을 무대에 올린  「달콤한 나의 도시」(11월 13일, 국립중앙박물관), 이철환 원작의 「연탄길」(11월 28일, 조아아트레온시어터), 김영하 소설 원작의 「퀴즈쇼」(12월 6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등이 초연을 앞두고 있다.

 이미 완성도가 입증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뮤지컬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호의적이다. 특히 「명성황후」는 1995년 초연된 이래 올 연말 1천회 공연을 앞두고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로 지금까지 전 세계 20여개 나라에서 공연됐다.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를 원작으로 한 「내 마음의 풍금」 역시 2008년 ‘제14회 한국뮤지컬대상’ 6관왕을 휩쓸며 ‘진정성이 느껴지는 수작’이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해서 원작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뮤지컬을 바라보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유리 교수는 “각 장르의 특성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소설이 원작이라 할지라도 뮤지컬로 재창조되는 순간 이미 다른 작품이 된 것이다. 작품을 관람할 때 소설과 뮤지컬을 단순 비교하기보다 뮤지컬로의 각색과정에서 어떤 상상력이 발휘됐는지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남한산성」의 경우 원작의 정신은 살리되 소설에선 주변인물에 불과하던 ‘오달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원작과는 사뭇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퀴즈쇼」는 주인공의 암울한 현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시원이란 원작의 배경을 관으로 바꾼다. 「달콤한 나의 도시」 역시 주인공의 독백으로 전개되던 원작을 고려해 무대 위에선 ‘Which’란 사회자를 새롭게 설정했다.

◇ 한계와 전망 =  2000년 대 초, 국내 뮤지컬이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제작되는 작품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질적 성장을 담보하지 않는 양적 성장은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화려한 무대와 스타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는 작품이 늘자 뮤지컬 시장이 거품에 불과하단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일련의 뮤지컬들은 뮤지컬계가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이유리 교수의 지적대로 본격적인 ‘노블컬’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노블컬이 단순한 유행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장르로서 국내 뮤지컬계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할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우주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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