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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散의 ‘에스니시티’ 조명 본격화 … 방법론은 어디 있는가'
離散의 ‘에스니시티’ 조명 본격화 … 방법론은 어디 있는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11.09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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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_ 2009년도 학회 및 연구소 연합 학술대회 ‘한국 문학 연구와 디아스포라’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동국대 다향관, 만해관 두 곳에서 진행된 2009년도 학회 및 연구소 연합 학술대회 ‘한국 문학 연구와 디아스포라’는 분명 주제면에서 눈길을 끌만한 대회였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최측으로는 국제비교한국학회(회장 손종호 충남대, 국문학), 한국비평문학회(회장 전정구 전북대, 국문학), 현대문학이론학회(회장 김동근 전남대, 국문학),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가 이름을 내걸었다. 주관은 동국대BK21 한국어문학에서의 ‘전승’과 ‘번역’ 연구인력 양성사업단(단장 정우영, 국문학)이 맡았다. 문학을 주제로 국문학, 영문학, 일문학 등 각 분야 연구자들의 집합체가 한 자리에 모인 셈이니, 일단 외연 면에서는 화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표출됐을까. ‘문학연구와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내걸었다면, 이는 분명 ‘디아스포라’라는 현상을 문학연구의 대상으로 적극 호명해내자는 발상이 전제됐을 것이다. 나아가 ‘디아스포라’를 명명함으로써 이를 한국문학의 외연 확대와 주제의식의 전화 계기로 만들자는 방법론 측면에서의 문제의식이 읽힐 수 있다. 

디아스포라는 탈식민주의와 관련, 일찍이 연구자들의 시선을 끈 주제였다. 이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그 어원은 그리스어 ‘διασπορa’’(播種을 의미함)에서 유래한다. 특정 인종(ethnic) 집단이 기존에 살던 땅을 (자의건 타의건 간에) 떠나 외부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자어로는 ‘離散’이라고도 하지만, 遊牧과는 의미가 다르며, 난민 집단 형성과 일정한 관련성이 있는 말이다. 난민들은 새로운 땅에 계속 정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디아스포라란 낱말은 이와 달리 본토를 떠나 항구적으로 나라밖에 자리잡은 집단에만 쓴다(위키백과).

문학연구의 외연 확대와 문제의식
이런 사전적 설명을 따른다면, 식민지 기간 만주, 하얼빈, 블라디보스톡, 그리고 미국이나 브라질 등 세계 각지로 이산하게 된 우리의 민족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강조될 수 있다. 초청강연 연사들이 발표한 내용들, 예컨대 「한국문학 연구와 디아스포라-한중일의 전통사상과 에스니시티 문제」(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 「한국 소설에 나타난 디아스포라」(우한용, 서울대), 「해외 한인들의 디아스포라 문학」(김종회, 경희대) 등은 모두 이 같은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에스니시티’(소수집단이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정체성과 자신이 이주해 온 인종적 기억 사이 어디에도 거주하지 못하는 ‘이방인’ 의식을 집단화해 표현한 용어)의 문제를 디아스포라와 연결한 홍기삼 교수는 동아시아의 문화전통 속에서 ‘和’의 사상에 주목, 이것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물음을 던졌다. 이른바 ‘동아시아적 가치’의 발견을 디아스포라라는 현상과 연결짓는 독법을 제시한 셈인데, 두 틀이 어떻게 스며들 수 있는지는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로 보인다. 실제로 홍 교수의 기조 강연은 이날 학술대회의 테마가 놓인 현주소를 드러내는 것으로 읽힌다.

일제의 전시동원정책이 된 ‘국민징용’은 디아스포라의 비극적 경험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100년.

이번 학술대회의 전체적인 모습은 첫날 기조발표와 주제발표, 이튿날 두 개의 분과별 일반발표로 진행됐다. 김경훈 중국 연변대 교수는 「디아스포라 삶의 공간과 정서-백석, 이용악, 윤동주의 경우」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유이민의 삶의 정서는 곧 디아스포라적인 정서’라고 전제하고 출발했는데, 사실 이러한 출발은 좀더 끈질긴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할 부분이다. 그가 소재로 택한 백석, 이용악, 윤동주가 어떻게 ‘디아스포라’라는 문제의식에서 서로 얽힐 수 있는가를 따지기위해서는 그가 분석의 틀로 활용한 ‘공간과 시간’이란 매트릭스 외에도 더 많은 논거점이 필요하다. 만일 이런 측면을 소홀하게 되면, 논의는 밥상만 바꾼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좀 더 눈여겨봐야 할 발표는 신철하 강원대 교수의 발제였다. 신 교수는 「분단, 혹은 도주에 대하여-황석영의 『바리데기』의 경우」를 통해 은근하면서도 집요하게 한반도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試論을 제기했다. 디아스포라를 문학연구에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면, 분명 디아스포라는 이런 것이 디아스포라 현상이다, 이것이 디아스포라적인 정서다, 라는 설명과 정의내리기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것은 ‘소재’의 차원을 넘어서면서, 문제의식의 확장을 요망하는 아주 예민한 문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현단계 한반도 체제를 생태적 사유와 관련해 궁리할 때 『바리데기』는 분단체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그 비전을 암시할 수 있는 미학적 모티브를 제공한다. 그 모티브의 핵심 키워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주와 디아스포라이다.” 신 교수에게 ‘도주’ 그리고 ‘디아스포라’는 미학적 모티브 그 이상의 의미로 내면화돼 있다. 그러나 그가 ‘도주’ 모티브를 매우 공들여 증거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을 지 모르겠지만, ‘디아스포라’는 여전히 자리를 맴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토론자로 나선 고명철 광운대 교수 역시 ‘디아스포라’를 건들지 못하고 지나간 데서도 ‘맴도는 느낌’은 거듭 확인됐다.

문학 외부의 시선은 불필요했을까

‘디아스포라’ 문제는 식민주의와 이의 극복 문제틀에서 접근할 수 있는 광범위한 과제다. 문학이라는 예민한 촉수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 꽤 있겠지만, 여전히 큰 틀에서는 과학적인 접근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기조 강연 부문에서 이런 점을 의식, 문학 진영 외부 특히 사회과학자를 초청해 그들의 접근틀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면 하는 아쉬움을 준다. 또 하나는 학술대회의 주제로 표방한 ‘문학 연구’라는 분석틀이 여전히 애매하고 모호한 형체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학술대회의 주제가 대개 매크로한 것이 일반적이지만, 연합 학술대회이고보면 이 점을 좀더 고려했어야 했다. 그간 국내 연구자들의 디아스포라 연구 현황도 문학 외부 영역까지 포함한다면 꽤나 진척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생략한 것은 학술대회가 지나치게 ‘외연’에만 치우친 것 아니냐를 비판을 피해갈 수 없게 만들었다. ''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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