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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3중 나선』 (R.르원틴 지음, 김병수 옮김, 잉걸刊)
[깊이읽기] 『3중 나선』 (R.르원틴 지음, 김병수 옮김, 잉걸刊)
  • 권오길 / 강원대 ·생물학
  • 승인 2002.04.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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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3 16:47:43

학은 뱀과 같아서 앞으로만 달려가고 절대로 뒷걸음질을 못하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날뛰는 야생마 같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인 ‘과학’에 대한 우려가 한껏 부풀어 있는 것이고, 말해서 다들 ‘과학의 위기’를 걱정한다. 그놈의 과학이 없는 세상에도 다 살아왔건만, 못 먹고, 짧은 명에, 좀 불편하게 살았을 뿐. 사실 과학을 무소불위, 전지전능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고, 또 생명과학 덕에 永生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착각은 자유라지만.

리차드 르원틴(Richard C. Lewontin)의 ‘3중 나선’에서도, 작가는 첨단 과학인 분자생물학 전공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신랄하게 반박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하버드대에 연구교수로 있으며, 전공은 초파리(Drosophila)로 집단유전학과 진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며 또한 많은 저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선출되었지만 과학아카데미의 정치성을 이유로 사임했고, 인간게놈프로젝트와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을 갖고 비판에 힘을 쏟고 있다. 하여, 유전자가 생명체의 핵이라는 유전자 결정론을 부정하고 반박하고 있으니 바로 그것이 이 책의 골자다.

책의 주제는 ‘3중 나선’이고 부제는 ‘유전자, 생명체 그리고 환경’이다. 이 책을 손에 드는 순간, ‘삼중나선’이라니 하는 어색한 거부감을 느낀다. 왜? 하도 ‘이중나선구조’란 말이 눈과 귀에 익어 있었으니 그렇다. 핵산 하면 DNA고, 그놈은 두 가닥으로 꼬인 이중으로 나선 꼴을 하는 놈이 아닌가. 누구나 비슷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하여 제목이 틀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책 꺼풀에도 DNA 그림이 들어있으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 나중에야) 필자는 제목이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 부제를 보면 그렇다. 저자는 같은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강조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유전자(DNA)는 이중나선을 하지만 환경이라는 줄(strand)이 하나 더 그것을 감는다고 생각하면 멋드러진 제목이 아닌가. 유전자는 생명체를 결정하고 그 생명체는 환경의 영향하에 놓이게 돼 서로 복잡하게 얽혀 매이는 것이니 ‘3중 나선’도 제목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책제목에 대한 거부감이 많아서 새 것으로 바꾼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하는 말이다.

책은 크게 네 토막을 내어서, ‘유전자와 생명체’, ‘생명체와 환경’, ‘부분과 전체’, ‘원인과 결과’, ‘생물학 연구의 방향’ 등으로 나눠놨다. ‘유전자와 생명체’에서는 주로 발생생물학을 중심으로 논하면서, “충분히 거대한 컴퓨터만 있다면 생명체를 계산할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학자를 경멸하고 있고, 여러 복잡한 도표를 인용하면서 생명체의 결정에 유전자를 무시하지 못하지만 환경 또한 중요하다는 것(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제2장인 ‘생명체와 환경’에서는, 생명체는 ‘적응값’(adaptive value)이 낮아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기본적인 이론을 제시하고, 극단적으로 “생명체 연구는 실질적으로 환경적 공간의 형상에 관한 연구”라고 못을 박고 있다. 한마디로 생명체는 환경의 산물이라는 주장에는 필자도 동의하는 바이다. 공룡 골격, 달팽이의 껍질 등의 예를 들면서 모두가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들게 하는” 생물간의 경쟁을 논하고 있다.

제3장 ‘부분과 전체’에서 드디어 저자는 숨겨둔 발톱을 들어낸다. “단백질 구조에 관한 모든 정보가 DNA 염기 서열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一喝한다. “단백질의 정확한 최종 구조는 외부적 조건(환경)들이 적당치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고 유전자 결정론을 반박하기에 이른다. 환경의 중요성을 필자도 거들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마지막 장 ‘생물학의 연구 방향’에서는 “비판자는 되기 쉽다”는 자책의 말과 함께 앞에 이야기한 모든 내용은 “생물학자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생명체를 통틀어 말할 수는 없으나, DNA는 자기 복제를 하지 않으며, 단백질조차도 특징을 규정하기엔 부족하고, 생명체의 환경은 끝임 없이 변한다”로 끝을 맺는다. 분자생물학자들에 대한 정면 도전인 셈이다.

앞에서 생물학자는 다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생물학의 지식이 없이는 이 책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자도 읽는데 애를 먹었다. 과학이 뜨고 따라서 책도 읽혀져야 하지만 어려운 책은 되레 흥미를 잃게 한다는 점에서 번역서의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할 것이고, 번역은 창조라고 하듯이 참 어려운 것이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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